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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화제의 인물] 잊혀가던 씨름의 희열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0-03-23

잊혀가던 씨름의 희열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다

KBS 예능 <씨름의 희열> 기획한 최재형 동문을 만나다




한때 안방극장을 점령한 전통 스포츠 씨름은 ‘전통’이라 불린 많은 것과 함께 ‘한물간’ 취급을 받아왔다. 노년층을 제외하곤, 프리미어리그와 메이저리그를 실시간으로 즐기는 젊은 세대의 대부분이 씨름과 스모를 구별조차 못하는 형국이다. 명절 천하장사대회의 텅 빈 객석을 보며 이제 씨름은 회생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가운데 여전히 씨름에 몰입하고 젊음을 걸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KBS 예능국 CP인 최재형 동문(정치외교학과 90)은 그들의 땀과 도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다. 참으로 오랫동안 침체된 씨름이 긴 겨울잠을 마치는 순간이었다.




화려한 기술 씨름의 재미,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다


“기획 과정에서 직접 씨름장에 가봤어요, 관객이 얼마 없는데도 선수들의 경기에서 전율이 느껴지더군요. 엄청난 찰나의 희열이 있는 스포츠였어요.” 씨름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경량급(금강, 태백) 장사들을 무대로 끌어내 ‘태극장사’를 뽑는 과감한 도전으로 시작했다. 본격 제작을 준비 중인 시점에 SNS에 올린 경량급 장사들의 경기 장면이 백만 뷰를 기록하는 행운도 따랐다. 선수들은 오랜만에 모래판을 오롯이 비추는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 스펙터클하고 긴장감 넘치는 기술 씨름을 마음껏 펼치며 명승부를 이어갔다.


KBS 예능 프로그램 <씨름의 희열>이 만들어낸 영향력은 결코 시청률만으로 환산할 수 없다. 멸종 직전의 스포츠로 여겨온 씨름이 이제 온 가족이 즐기는 훌륭한 프로 스포츠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공개 방송에 ‘밭다리’, ‘들배지기’ 등을 머리띠에 붙인 팬들의 뜨거운 함성과 아이돌 가수 부럽지 않은 ‘대포 카메라’들이 객석을 채웠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무관중 진행으로 변경되었으나, 최종 결승전 티켓은 티켓 오픈 5분 만에 6천 석이 매진되었고 출연 선수들은 물론 지역 씨름단마다 팬레터와 선물이 빗발치고 있다. 스타덤에 오른 선수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내가 조명을 받는 것보다 씨름이 다시 조명 받는 것이 더없이 기쁘다. 관중과 조명이 없는 모래판에서 땀을 흘려온 씨름 선수들을 기억해달라.” 진심을 담아 만든 콘텐츠가 전통 문화산업을 재발견하는 기둥을 세운 것이다.




가려진 곳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탄생하는 재미와 감동


<씨름의 희열>을 이끈 최재형 동문이 그간 제작한 프로그램들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높은 시청률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욱 진한 잔상과 파장을 일으켜 왔다. 발에 공을 간신히 맞추는 수준의 유치원 꼬마들로 구성된 어린이 축구팀을 만들어 하나의 팀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 <날아라 슛돌이(이하 슛돌이)>가 그랬고, 축구 인생에서 큰 좌절을 겪은 축구 미생들을 모아 그들의 재도전을 담은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이하 청춘FC)>와 말장난을 주로 하던 예능인이 모여 그라운드를 누빈 <천하무적 야구단>이 그랬다. 화려한 CG나 서로에 대한 디스(야유) 없이 그야말로 대화에만 집중하며 감동과 재미를 이끌어낸 <대화의 희열>도 그가 진두지휘한 프로그램이다. 최재형 동문의 프로그램은 두고두고 따뜻하고 기분 좋게 하는 깊은 맛이 있다. 그의 손과 함께 다시 ‘핫’하게 세상으로 등장한 <씨름의 희열>이 안겨준 희열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슛돌이>의 감동이 프로그램 종료 후 6년 만에, 최재형 동문에게는 14년 만에 다시 <날아라 슛돌이 뉴 비기닝>으로 돌아오게 된 것처럼.


<슛돌이>, <청춘FC> 등과 이번 <씨름의 희열>까지 스포츠 예능은 방송국으로서는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소요되는 아이템이다. 매번 그는 회사를 설득하며 걸어왔다.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니까, 어려워도 계속 설득했죠. <씨름의 희열> 같은 경우는 KBS만이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시청률이 안 나와도 계속해서 장사 씨름대회를 중계해왔고 씨름 경기 촬영을 잘하시는 감독님들도 KBS에만 있으니까요. 씨름협회도 굉장히 기뻐했어요. 씨름의 부활을 위해 애써온 분들은 하늘의 준 기회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스포츠 예능은 기획 방향과 출연자는 정해지지만 어떻게 흘러갈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제작진도 예측할 수 없는 박진감과 결말이 있다. 이 역동성이 만들어내는 상상불가의 감동을 알기에 쉽지 않은 시도를 계속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연출한 예능에서 한 편의 장편 드라마를 보는 감동이 따르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실패가 실패에 머물지 않도록 질문을 던지다


최재형 동문은 실패와 약자를 보듬고 성장을 이끌어내는 뚝심에 대한 공을 함께하는 팀에게 돌렸다. “함께하는 제작진 후배 PD들, 작가와 스탭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실패가 과연 꼭 실패일까, 실패를 딛는 성장은 어떤 것일까 질문을 던져보는 거죠.”


그는 1990년 우리 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큰 누나가 연세대학교를 다녔어요. 제게는 누나들만 있거든요. 누나들이 고대는 안 된다고 절대 반대를 해서(웃음).” 그리고 백양로에서 ‘자주 연락은 못하지만 지금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참 좋았어요. 저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줬어요. 사회과학대 극회를 했는데, 연극보다는 모여서 술 마신 기억밖에 없지만 그 방에서 PD, 기자, 광고인이 많이 나왔죠.” 교수님들의 뜨거운 강의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정외과에 좋은 교수님이 많으셨어요. 특히 문정인 교수님이 새로 부임하시고 첫 강의인 <중동정치론> 수업을 들었는데 열 명 남짓 모인 그 수업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넓어져야겠다고 생각한 기억이 나네요.” 친구들과 하릴없이 모인 연희관 뒤편도 추억이 많은 장소다.


그는 학창시절 한 친구가 건넨 “우리 적어도 민주적인 시민으로 살아가자.”는 말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한다. 실패의 명찰을 달게 된 청춘을 보듬고, 동네 꼬마들에게 실력보다는 팀을 이야기하며,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지 않던 곳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선수들을 따뜻하고 우직한 시선으로 이끌어낸 그의 예능 드라마. 연세의 친구가 전해준 작은 소망의 울림처럼 그가 손에 든 조명은 주류와 비주류를 구별하지 않는 인간의 삶, 민주적인 삶을 향해 계속 비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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