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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연세 뉴스] 이한열 열사와 6월 항쟁의 의미를 재조명하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8-11-28

이한열 열사와 6월 항쟁의 의미를 재조명하다
제1회 이한열 학술제 개최



1987년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됐던 이한열 열사를 기리고 6월 항쟁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특별한 학술 행사가 열렸다.


지난 11월 23일 이한열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회장 김용학)와 (사)이한열기념사업회(이사장 김학민)가 공동 주최하고 우리 대학교 경영대학(학장 엄영호)이 주관하는 ‘제1회 이한열 학술제’가 경영관 101호에서 개최됐다. 


이번 학술제는 연세대학교 이한열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발족을 계기로, 이한열 열사와 6월 항쟁의 의미를 학술적으로 고찰하고 현재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 그 동안 여러 단체, 학회 등이 6월 항쟁이나 이한열 열사를 학술적으로 다룬 적은 있었지만, 그의 이름을 딴 학술제를 개최하고 이를 정례화하는 것은 처음이다. 학술제는 올해부터 매년 가을에 열릴 예정이다. 



1987년 6월의 이한열 


첫 학술제의 토론 주제는 ‘1987년 6월의 이한열’에 대한 미시사적 접근과 객관적 관찰이었다. 가톨릭대에서 강의하는 김상숙 박사와 김대중도서관장 박명림 교수가 발제를 맡고 오세철 명예교수, 조성대 한신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이밖에도 이한열 열사의 모친인 배은심 여사를 비롯해 교내 구성원 및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해 학술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이날 김상숙 박사는 ‘1987년 6월 항쟁과 이한열’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이한열이 국가 폭력의 희생자라는 수동적 이미지와 달리 당시 주체적인 청년 학생운동가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한열의 삶을 당사자의 유고, 문헌 자료, 관련자 인터뷰를 통해 조망하며 "이한열은 이 시기에 조직활동가로서 성실하게 활동했으며 결국 육신 그 자체로 6월 항쟁이 됐다."면서 "그와 같은 많은 이한열들의 희생 속에 한국의 민주화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어진 발표에서 박명림 교수는 ‘이한열과 이한열들: 시대의 음성과 소명 사이에서’를 주제로 이한열이 보편적이고 거시적인 지평에서 세대의 영혼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내면을 어떻게 격동시켰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 교수는 “이한열은 자신을 바쳐 더 많은 유혈을 막은 희생이었다.”며 "백주대낮의 살인적인 국가 폭력성은 운동권과 일반 시민 사이의 경계를 일거에 무너뜨렸고 이한열의 피격 이후에야 시민들은 사회적 계몽과 각성을 거쳐 단일대오로 뭉치게 됐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이한열이 또 다른 수많은 이한열들로 확대 복제됐다며 이를 ‘이한열 현상’으로 설명했다.


학술제가 끝날 무렵에는 배은심 여사가 연단에 올라 “학술제의 내용은 모두 처음 들어보았지만, 세상의 많은 한열이들 속에서 아들이 놓친 꿈을 대신 꾸며 헛되이 살지 않겠다.”는 소감을 전달했다. 


우리 대학교 경영학과 86학번인 이한열 열사는 전국 22개 도시에서 벌어질 예정이던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하루 앞둔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앞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직격으로 맞아 쓰러졌다. 


이를 지켜본 시민이 분노했고 ‘넥타이 부대’가 조직돼 회사원까지 도로로 나서는 등 이한열 사건은 6월 민주항쟁이 전국민적 민주화운동으로 번지게 하는 도화선이 됐다. 이 열사는 피격 26일 뒤인 7월 5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숨졌다.


 

vol.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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