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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윤동주 탄생 100주년] 소설가 한강 동문 특별강연 “윤동주는 사춘기 소녀의 눈부신 연인이었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7-11-03

“윤동주는 사춘기 소녀의 눈부신 연인이었다”

 

소설가 한강 동문 특별강연

윤동주는 계속 분투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세계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동문이 지난 10월 25일 우리 대학을 찾아 아주 특별한 강연을 펼쳤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기념사업회가 진행 중인 ‘윤동주와 나’ 강연시리즈 연사로 초청된 그는 윤동주와 광주,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한 동문은 “재학 시절 공부했던 공간에서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며 문과대학 100주년 기념홀을 가득 메운 500여 명의 청중에게 인사를 건네며 강연을 시작했다.

 

닳도록 읽고 외운 사춘기의 윤동주

 

 

한 동문이 윤동주라는 시인을 좋아하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부터였다. 사춘기 시절에는 누군가를 아주 깊이 사랑할 수 있다. 한 동문에게는 시인 윤동주가 그런 존재였다. 윤동주 시집과 산문집을 닳도록 읽고 외웠다. 윤동주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 볼 때마다 그의 인간 내면이 느껴졌다.

 

한 동문은 “사진 속 그는 너무나 깨끗한 사람이었고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기에, 저 깨끗함이 폭력에 저항을 가졌던 것을 알기에, 그 역사적 맥락에서 그의 사진들이 중첩되면서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사춘기 시절부터 그는 윤동주의 사진을 보면 아파왔고, 말하지 않는 무차별적인 잔인한 폭력에 대해 사진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닿을 수 없는 윤동주의 눈부신 세계

 

 

한 동문에게 윤동주는 닿을 수 없는 산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시 <자화상>을 낭독한 뒤 “아주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그리는 세계는 우물 속 풍경처럼 매우 밝고 눈부시다.”고 설명했다. 한 동문은 그 역시 윤 시인처럼 눈부시게 밝은 세계로 가고 싶었지만 오를 수 없는 꿈속의 높고 푸른 산처럼 다가갈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자화상> 중 -

 

항상 밝은 이야기를 상상하며 쓰지만 결과물이 항상 어둡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싶었던 그는 어린 시절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던 광주의 기억을 떠올렸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가 구해온 광주민주항쟁기록 사진집을 몰래 본 경험은 그에게 충격으로 남았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런 폭력을 저지를 수 있는가?’ 이것이 그에게 다가온 첫 번째 수수께끼였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사진집에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친 사람들을 위해 길게 줄을 서 헌혈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한 동문은 “봉쇄된 도시에서 피를 나누고 음식을 나누고, 매일 같이 장례식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공포와 폭력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일을 했을까”를 고민했다.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수수께끼는 미결로 남아 한동안 덮여 있었다. 밝은 곳을 향해 왜 나아갈 수 없는가를 고민할 때, 이 수수께끼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 동문은 “쓰레기를 눈으로 덮듯,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빛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회고했다.

 

실존적이고 근원적인 사건, 광주

 

“제게 광주는 정치적,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아주 실존적이고 근원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걸 쓰면 제가 원했던 파란 우물, 푸른 산의 세계에 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자료를 읽을수록 점점 미궁으로 빠져 들어갔어요. 인간에 대한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는 경험이었죠.”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을 때 우연히 시민군 박용춘 선생의 마지막 일기를 본 그는 벼락처럼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만 골몰했지만 그 앞에 두 번째 수수께끼처럼 폭력 앞에서 행동했던 인간이 있었다는 것. 그는 “나의 소설은 비록 인간의 폭력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지만 두 번째 수수께끼를 안고 나아가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죽은 자들의 도움으로 완성한 <소년이 온다>

 

 

하루 8~9시간씩 자료를 보며 석 달을 보낸 그는 고민과 좌절, 희망 속에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완성했다. 놀랍게도 주인공 ‘동호’의 얼굴을 생각했을 때 그는 윤동주 시인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했다. 외꺼풀 눈에 조용하고 예민한 소년의 모습. 그녀가 상상한 소년 윤동주는 ‘동호’로 형상화됐다.

 

“‘소년이 온다’ 속 묘비에 붙어 있었을 소년의 얼굴, 흑백사진은 제가 중3때 왜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들여다 봤던 윤동주 시인의 얼굴과 닿아 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느끼는 건 과거가 오히려 현재를 돕고, 죽은 자들이 지금의 저를 돕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포기하거나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죽은 자들이 저를 계속 밀고 끌고 가는 느낌이에요. 힘이 약해질 때마다 동호가 저를 밝은 쪽으로 이끌었던 거죠.”

 

그가 소설을 쓰며 떠올린 얼굴들은 묘비에 붙어 있었을 흑백 사진 속 얼굴들이었다. 중학교 시절 광주 사진집 속에서 왜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들여다봤던 그 얼굴들이 마음속에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기 위해 <소년이 온다>를 쓴 뒤에도 한 동문의 숙제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윤동주 시인의 눈부신 세계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희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제게 문학이란 인간과 근원을 연결하는 행위이기에 앞으로도 글을 쓰며 답을 찾아갈 겁니다.”

 

현재 ‘사랑’을 소재로 한 3부작 소설을 준비 중이라는 그는 “사랑이 어딘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면 인간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겠다는 윤 시인의 ‘서시’처럼 다음 소설이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취재 : 이은정 학생기자)

 

세계 문학계가 주목한 자랑스러운 연세인 한강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국어국문 89)은 1993년 문학잡지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단편소설 ‘붉은 닻’으로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면서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대를 이어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여수의 사랑>, <검은 사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 다양한 소설을 발표하며 섬세한 감수성과 비극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만해문학상·황순원문학상·동리문학상·이상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한국소설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휩쓴 그는 지난해 5월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맨부커상은 영어권 문학상 중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다. 지난해 우리 대학은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인한 동문에게 연문인상을 시상한 바 있다. 연문인상은 문과대학 동창회가 모교의 명예를 빛내거나 사회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졸업생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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