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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유토피아와 공동체 - 이종수 행정학과 교수 (국가관리연구원장)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6-06-30

 

유토피아와 공동체

 

<유토피아> 출간 500주년

이종수 행정학과 교수 (국가관리연구원장)

 

 

<유토피아>는 좋은 사회에 대한 사유의 원형질을 담고 있다. 좋은 사회에 대한 상상이란 것이 아무나 한갓되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현실은 그것이 현실일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현실을 많이 아는 지식인일수록, 예민한 감각을 타고난 사람일수록 낙관적 희망을 품고 살아가기 어렵다. 때로는 권력이 좋은 사회에 대한 사유를 금하기도 한다. 그 속에서 가슴을 뛰게 하는 '낙원에 대한 기억, 혹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유토피아다. 이것 없이 현실을 진단하고, 이것 없이 미래의 대안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1891)는 “유토피아가 없는 세계지도는 가짜다. 인류가 정박해야 할 그 나라를 빼놓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초기 <유토피아>에 실린 유토피아 지도 삽화

 

‘좋은 사회’에 대한 사유의 원형질

 

1516년 모어가 <유토피아>를 출간했을 때 그는 서른여덟 살이었다. 초간은 라틴어로 벨기에 루뱅에서 출판되었는데 원제가 <사회적 삶의 최선의 상태에 대하여-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한 유익하고 신나는 이야기>였다.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당초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라틴어 ‘누스쿠아마(Nusquama)’로 책에 등장했지만, 모어가 에라스무스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뜻의 그리스어 유토피아(ou + topos)라는 말로 교체되었다. 영국에서 영역본은 모어가 참수형을 당한 후 16년이 지난 1551년에야 출간되었다.

 

유토피아는 하나의 초생달 모양을 한 섬인데 가장 넓은 중앙부가 약 200마일(약 320km)이고 둘레는 500마일 정도다. 여기에는 54개의 훌륭한, 크고 장엄한 도시가 있다. 도시들은 하루를 걸어 갈만한 거리에 있고 사람들은 서로에게 선하다. 금은 화장실 변기나 죄수의 수갑을 만드는 데나 쓰여서 그런 걸 차지하려 다투는 법이 없다. 유토피아의 집들은 3층집이다. 사람들은 하루 6시간 일을 하며 나머지 시간에는 자유로운 생활을 즐긴다.

 

평범해 보이는 상상 속에 현실에 대한 모어의 치열한 고민이 담겨있다. 엔클로저 운동으로 농민들이 가난과 곤경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36세의 청원담당판사(Master of Requests)였던 모어는 또렷이 보았다. “가장 악한 부류의 사람들이 가장 좋은 것을 소유하는 건 정의가 아니며, 극소수 사람들만 온갖 풍요를 누리고 대다수 사람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는 건 행복한 세상이 아니다.”라고 모어는 외친다. 그리고는 “나는 솔직히 사유재산이 존재하여 모든 것이 돈에 따라 평가되는 사회에서는 진정한 정의나 번영을 실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유재산제를 완전히 철폐하지 않는 한, 공정한 재산의 분배나 인간 생활의 참된 행복을 맛볼 수 없다.”고 말한다. 칼 맑스가 태어나기 300년 전의 일이었다.

 

 

이상적 공동체를 말하는 안전한 방식

 

이상향을 말하는 방식에 직설법은 위험하다. 플라톤의 <국가>도 그랬지만, 대화체의 서술이 이상적 정치체제나 공동체를 말하기에 안전하다. 불시착, 꿈, 배의 난파를 모티브로 해서 그것도 대화체로 등장하는 화자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이 안전하다. 유토피아(no + place)라는 제목과 등장하는 인물 및 지명(地名)에서부터 모어는 의도적으로 모호성을 장치해 놓았다. 그리고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불편한 진실들을 이야기하게 한다. 심지어 “만일 왕이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어서 백성들에 대한 가혹한 취급과 약탈, 압수, 궁핍화를 통해서만 통치할 수 있다면 차라리 갈아치우는 게 낫지 않을까요?”라고 말하게 한다.

 

모어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순수한 영혼을 소유한 사람만이 좋은 사회에 대한 순수한 상상을 할 수 있다. 법관과 외교관, 국회의장에 오르도록 좋은 사회에 대한 순수한 꿈을 잃지 않고 현실에 무릎 꿇지 않았다. 그의 삶을 되돌아보고 <유토피아> 출간 500주년을 기념하고 싶어 국가관리연구원은 작은 세미나를 지난 5월 27일 개최했다. 공동체, 정치체제, 영문학, 신학, 건축의 측면에서 토마스 모어를 되돌아보고 그의 영향을 짚어 보았다. 50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그의 삶과 사유를 호흡하여 보았다.

 

vol.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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