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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역사 속 연세] 5월, 다시 읽는 신록예찬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6-05-04

5월, 다시 읽는 신록예찬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오늘도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우리 연전(延專) 일대를 덮은 신록은 어제보다도 한층 더 깨끗하고 신선하고 생기 있는 듯하다. 나는 오늘도 나의 문법(文法)이 끝나자 큰 무거운 짐이나 벗어 놓듯이 옷을 훨훨 털며 본관 서쪽 숲 사이에 있는 나의 자리를 찾아 올라간다. 나의 자리래야 솔밭 사이에 있는 겨우 걸터앉을 만한 조그마한 소나무 그루터기에 지나지 못하지마는 오고 가는 여러 동료가 나의 자리라고 명명하여 주고, 또 나 자신이 소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솔잎 사이로 흐느끼는 하늘을 우러러볼 때 하루 동안에도 가장 기쁜 시간을 가질 수 있으므로 시간의 여유 있는 때마다 나는 한 큰 특권이나 차지하는 듯이 이 자리를 찾아 올라와 하염없이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신록예찬」 중에서

 

 

한 차례 꽃몸살을 앓던 캠퍼스는 5월이면 푸르름으로 가득하다. 꽃이 진 자리에는 어느덧 짙푸른 잎사귀들이 자라나 녹음을 더하고 담쟁이덩굴이 핀 언더우드관은 초록옷으로 단장을 마쳤다. 그 중에서도 온통 신록으로 빛나는 청송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답답했던 가슴마저 상쾌해지는 것만 같다.

 

1936년 숲으로 우거진 우리 대학의 모습

 

1937년대의 정경

 

대표적인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인 이양하(李敭河, 1904~1963.2.4.) 교수 역시 수필 ‘신록예찬’을 통해 5월의 연세대학교를 노래한 바 있다. 신록의 아름다움과 삶의 의미를 성찰한 ‘신록예찬’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여러 번 수록될 정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으로, 이 교수가 찬미하는 그 신록의 풍경은 바로 청송대를 비롯한 우리 대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부터 1941년까지 연희전문학교 문과교수로 재직했는데 “오늘도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우리 연전(延專) 일대를 덮은 신록은 어제보다도 한층 더 깨끗하고 신선하고 생기 있는 듯하다.”는 문구에서도 가늠할 수 있듯 당시 우리 대학의 모습을 바라보며 ‘신록예찬’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록예찬’은 1935년 9월 1일 연희전문학교의 학생신문인 『연전타임즈』의 창간호에 처음 실렸다가, 1947년 출간된 『이양하 수필집』에 다시 수록됐다.

 

윤동주 재학시절 문과과장을 역임한 이양하 교수 (1940년)

 

1941년 졸업앨범에 수록된 사진 중 하나. 솔숲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윤동주(오른쪽에서 두번째)의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다.

 

‘신록예찬’에서 언급된 대로 솔숲이 우거졌던 연희전문의 모습은 몇 장의 사진들 속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데, 비단 이양하 교수가 적은 본관 서쪽의 솔숲만은 아니었다. 일제의 식민교육, 전시교육이 확대되고 강화되는 가운데, 이 교수는 연희의 솔숲에서 학생들과 함께 문학과 민족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1938년에 입학한 윤동주 역시 이양하 교수로부터 영문학을 배웠고, 졸업 직전인 1941년 육필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출판을 맨 먼저 상의한 이 역시 이 교수였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 사람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 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 나의 모든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 ─ 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볕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말하자면, 나는 흉중(胸中)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眼前)에도 신록이다.

 

다시 5월, 청송대의 풍경은 1935년의 그것과는 제법 다른 모습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김없이 찾아온 5월의 신록은 시대를 거슬러 오늘날에도 우리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안겨주리라.

 

이양하 교수는 ‘신록예찬’에서 “이 시대는 신록에 있어서 불행히 짧다.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혹 2, 3주일을 셀 수 있으나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불과 3, 4일이 되지 못하여 그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지나가 버린다.”며 찰나의 아름다움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5월이 가기 전, 푸르름으로 가득한 청송대에서 “옷을 훨훨 털며” 소나무 우거진 “나의 자리”에서 신록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vol.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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