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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말라리아 치료제 아테미시닌 연구 30년, 정만길 교수(화학과)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5-12-15

말라리아 치료제 아테미시닌 연구 30년

 

정만길 교수(화학과)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개똥쑥(黃花蒿 : 황화호)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성분인 아테미시닌(Artemisinin)을 발견한 투유유(Tu, Youyou) 교수와 기생충 치료제 애버멕틴 발견자 일본 사토시 오무라 교수, 이의 추가 개발자인 미국 윌리엄 켐벨 교수 등 3인에게 공동으로 돌아갔다. 특히 투유유 교수의 노벨상 수상은 여전히 말라리아로 고통 받는 이들이 많은 가운데, 그에 대한 관심과 치료제 연구가 미비한 오늘날 우리에게 말라리아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말라리아의 역사

 

모기에 의해 감염되는 말라리아는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알렉산더 대왕, 링컨 대통령의 아들 윌리엄이 그 중 하나이며, 세종의 모후인 원경왕후도 이 병으로 희생됐다고 한다. 말라리아는 남북전쟁이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참전 군인들을 괴롭혀 맥아더 장군은 “일본군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말라리아” 라고 말했다. 월남전에서는 약 80만 명의 미군들이 말라리아로 고통 받았다.

 

 

오늘날에도 말라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퇴치가 가장 어려운 질병이 될 수 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말라리아 치료제 키니네(Quinine)가 있었기에 퇴치에 큰 문제가 없었으나 현재의 아열대성 악성 말라리아는 기존 치료제에 대한 내성이 커져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선진국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지만, 현재도 100여 개 이상 나라에서 말라리아 환자가 보고되고 있으며 전 세계 인구의 40%가 말라리아 감염지역에 살고 있다.

 

매년 3억~5억 명 이상이 말라리아에 새로이 감염되고 있고, 그 중 150만 내지 270만 명이 사망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해 빌 게이츠 등 많은 이들이 말라리아 백신 개발에 힘쓰고 있지만 백신의 개발은 어려울 뿐 아니라 매우 더디게 진행 중이다. 그런 가운데 현재 열대성 악성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유일한 치료제는 아테미시닌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약값이 매우 비싸 UN과 선진국들의 도움 없이는 아테미시닌 공급을 통한 저개발국 환자들의 치료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아테미시닌 연구 30년

 

1971년 중국 중의학연구원 투유유 교수는 개똥쑥으로부터 추출해 발견된 아테미시닌을 발표했으나 중국어로 되어 있어 서방에 알려지지 않았다. 투 교수는 지금까지 발표한 아테미시닌 관련 논문 33편 중 2편을 제외한 31편을 중국어 저널에 발표했다. SCI논문은 단 한편도 발표하지 않았다.

 

서방에서는 1984년 필자가 미시시피대학교 의약화학과에 부임하면서 미국에서 처음으로 아테미시닌 연구가 시작됐다. 당시 학교 약초원에서는 서양 최초로 개똥쑥을 실험 재배했는데, 여기에서 아테미시닌을 추출해 WHO에 계약 공급하고 있었다. 이 쑥은 노란 꽃이 피며 우리나라에도 자생하나 예부터 불쾌한 냄새 탓에 식용으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또한 미국 우주선에 실려 우주정거장 내 무중력 상태에서의 대사변화를 위한 연구가 진행된 식물 중 하나다.

 

1980년대 말 필자의 초기 연구는 개똥쑥에서 대량 추출되나 약효가 전혀 없는 생전구체 ‘아테미시닉산(Artemisinic acid)’을 원료로 한 아테미시닌 전환 합성 연구였다. 1990년 2개의 아테미시닌 관련 미국물질특허를 등록하고 이를 미국 저널(J. Org. Chem. & J. Med. Chem.)에 발표했다. 이후 아테미시닌 관련 국제 SCI 논문을 20편 이상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삼일열(Plasmodium vivax라는 원충이 발병시킴)이라는 말라리아는 현재 경기 강원 북부지역에 매년 2,000명 이상 자연 발생하고 있다. WHO 발표에 따르면 2013년 북한 지역에는 말라리아 환자가 매년 15,000명가량 자연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환자 수가 매우 적어 비교적 관심이 없는 질병인 탓에 정부의 연구지원도 거의 전무한 상태다.

 

20년 전 미시시피대학교에서 연세대로 이전한 필자는 기존 항말라리아 연구와 더불어 정부로 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기 위해 아테미시닌을 원료로 한 새로운 항암제 발견과 개발에 몰두했다. 이는 정부 연구지원 정책 방향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아테미시닌을 원료로 글리코당과 결합된 하이브리드를 합성해 전 세계적으로 치료제가 없는 구강암 치료후보분자로 특허등록했다.

 

 

천연물로부터 신약 개발하기

 

현재 1,200종류에 달하는 세계 임상약의 92%는 분자량 1,000 미만의 작은 분자로서 그 기원은 천연물인 약용식물, 미생물로부터 발견해 유도체화하거나 합성해 개발됐다. 천연물은 수천 년간 이미 임상적으로 안전과 약효가 입증되었기에 현대 과학적 연구를 도입해 유효성분을 분리하고 구조 확인, 작용기작과 임상을 통한 독성 및 효능을 확인해 상품화한 것이다. 독일 바이엘사가 버드나무껍질에서 진통성분을 분리해 유도체 합성으로 110년 전에 개발한 것이 아스피린이다.

 

20세기 원더 드럭(wonder drug)중 하나인 페니실린을 비롯해 주목나무에서 처음 추출한 여성암 항암제인 택솔 등 그 기원이 자연이 아닌 의약품이 거의 없다. 신약 개발의 지름길은 천연물인 셈이다. 현재 아무리 뛰어난 치료약도 시간이 지나면 내성이 생기므로 다른 분자구조의 신약후보분자가 다시 필요하게 되는데, 내성을 피할 분자의 새로운 구조를 발견하는 데는 무한한 구조적 다양성을 품고 있는 자연만한 금광이 없다. 이를 통해 신약 발견에 드는 엄청난 비용과 10년 이상의 개발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현재 정부의 연구비 지원 규모나 국내 제약사들의 빈약한 매출력 및 연구투자력 등 국내 사정으로 볼 때 명실상부한 글로벌 신약개발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천연물을 기원으로 한 신약후보분자의 발견 혹은 유도체합성 후 임상 1상을 거친 신약후보분자를 해외 글로벌 제약회사에 기술이전(라이센싱 아웃)함으로써 추후 기술료 수입을 얻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실현 가능한 신약 개발 전략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한의학과 의약학 간의 상호 이해와 협조가 필요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두 분야가 협조할 때 신약 발견 및 개발에 대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공동연구가 불가능하므로 우리로서는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투 교수의 아테미시닌이 좋은 본보기 중 하나다. 그가 1,600년 전 기술된 동진시대 고문헌인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에서 보물지도에 해당하는 열병 치료제 기록을 찾아 현대 화학기술인 분석법과 분자구조 결정을 통해 아테미시닌을 발견하면서 금년도 노벨의학상을 받게 된 것이다.

 

 

천연물로부터 현재 치료제가 없는 치매 치료제를 발견 및 개발해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다면 노벨의학상 수여 역시 가능할 것이다.

 

노벨상 전략

 

박대통령은 지난 11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2025년까지 노벨상 후보가 될 수 있는 톱클래스 과학자들을 양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과학자의 연구 목표가 상을 받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연구에 한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일생 동안 천직으로 삼고 노력하면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 연구 결과가 많은 인류의 삶을 가난과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때 비로소 노벨상이 주어질 수 있다. 노벨과학상 수상을 위해서는 심오한 자연현상의 과학적 원리를 발견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연구 결과가 인간의 평화, 복리 증진에 크게 기여해야 한다. 투유유 교수의 노벨상 수상은 아테미시닌 발견 자체보다는 이 천연 약물이 매년 수백만 명에 달하는 저개발국 어린이의 생명을 악성 말라리아로부터 구하는 인류 구제의 공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향후 노벨상 수상을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인기 있는 연구 분야보다는 희귀약 분야 혹은 궁극적으로 인류 복지에 크게 기여할 최초의 원천 연구 분야에 선택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과학 기술선진국들의 엄청난 연구 지원과 우수한 연구 인력이 수반되는 기존 인기 연구 분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노벨과학상 수상을 꿈꾸며

 

필자는 지난 30년간 연구한 아테미시닌 분야에서 최초 발견자인 투유유 교수에게 노벨의학상이 주어진 것에 큰 만족과 보람을 느낀다. 아울러 향후 한국에서도 노벨과학상이 나올 가능성이 한층 높아져 이에 대한 희망을 걸어본다.

 

현재 말라리아는 지구온난화에 따라 북반구로 이동하고 있다. 악성 말라리아의 한반도 유입 가능성에 대한 향후 의료 및 연구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미국이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말라리아 치료제 연구를 계속하는 까닭은 말라리아 지역의 해외 파병과 지구온난화에 따른 말라리아의 미국 내 유입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밖에도 저개발국 내 빈곤한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아테미시닌보다 경제적인 저가의 말라리아 치료법 개발이 향후 요구된다.

 

오늘날에도 “과학을 통해 인류의 4대악 - 질병, 가난, 전쟁, 무지를 제거해야 한다.”는 마담큐리의 말은 모든 과학기술자, 의학자, 약학자들의 숭고한 의무를 일깨워 주고 있다.

 

vol. 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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