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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인문학이 해 온 일과 할 일, 영문학과 윤혜준 교수 (인문학연구원장)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4-08-01

‘영문도 모르고 영문학을 공부한다’. 필자가 영문학을 전공하기로 작정했던 대학원 석사과정시절부터 늘 들어온 농담이다. 이후에 영문학을 가르치며 먹고 살게 된 후에는 대학 밖에서 돈벌이에 매진하던 친구들한테, ‘너는 취미생활을 하며 월급 받잖아!’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필자는 세 번째 직장인 연세대학교에서 어느덧 10년 넘게 즐겁고 보람 있는 교수생활을 하고 있고 작년부터는 인문학연구원장으로 봉사를 하고 있으나, 요즘 들어 영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이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서 도무지 실생활에는 쓸모가 없는 짓거리가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직·간접적으로, 학내·외에서 종종 의식하게 된다.

인문학에 대한 막연한 존중이 남아있던 시절에 성장한 필자로서는 기계와 계산이 세도를 부리는 요즘 시대에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전공하라고 권하기가 못내 꺼려진다. 총명한 제자들이 오히려 아까운 젊음과 자금을 희생하며 위험한 학문의 길에 들어서겠다고 찾아올까봐 걱정이 앞서기까지 한다. 사회적인 수요가 없는 학문이라면 쇠퇴하고 위축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금부터 9백여 년 전 이탈리아의 볼로냐(1088년에 태동)나 파리(1160경에 태동)에 대학이 생겨났을 때, ‘학문을 위한 학문’을 하러 학생과 학자가 공동체를 이룬 것은 아님을 인문학도라면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라져가고 없어진 것들을 재구성하고 기억해내는 것이 인문학의 업이니 말이다. 중세대학은 교회의 고위급 사제 및 군주들의 비서로 활동할 법률가와 행정가를 키워내는 기관이었다. ‘인문학’은 ‘법학’이나 ‘신학’, ‘의학’ 등의 심화 전공으로 가기 전에 거치는 기초 교양학부였다.

오늘날 자주 듣는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들은 실상을 들여다보면 인문학이 대학 내에서 심화 전공으로서 존립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토로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러나 서구 대학의 유구한 역사를 되돌아보면 인문학은 심화전공을 뒷받침해왔지 그 자체가 최종적인 전공은 아니었음을 발견한다. 인문학은‘법학’이나 ‘의학’ 등 현실에 바로 연결되는 학문이 아니면서도 ‘법학’이나 ‘의학’이 누리는 수준의 사회적인 존경과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소지가 늘 있었다.

중세 대학과 현대 대학의 주요 전공을 비교하자면, 중세 때는 없던 공학이나 자연과학 전공이 가장 눈에 띠긴 하겠으나 ‘법학’과 ‘의학’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중받는 전공이란 점도 지적해야 한다. 반면에 중세 대학, 특히 최초의 대학 중 하나인 파리대학의 ‘특화’된 전공이었던 신학은 권위와 위상을 점차 상실했다. 그렇게 된 것 자체가 ‘인류의 진보’라고 믿으며 뿌듯해 하거나, 아니면 여전히 옥스퍼드나 하버드 등 오래된 서구 대학에서는 신학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위안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서구 대학의 역사는, 특히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 신학을 쫓아버리고 그 자리에 ‘인문학’, 정확히 말하자면 철학을 갖다 앉히려는 시도와 노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신학은 아니면서도 신학적인 보편담론의 권위를 세속 ‘인문학’인 철학이 주장하면서 거기에 준하는 대우와 인정을 주장했다. 반 기독교 세속화를 강력히 추구했던 프랑스 공화국에서는 오늘날에도 ‘철학’이 인문학 및 국민교육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고담준론을 펼치던 인문학의 위세가 오래 가지는 못했다. 신학을 내몰고 들어앉은, 그리고 심심치 않게 ‘신은 (아마도) 없으니 인간 맘대로 해도 좋다’는 무신론의 (복음아닌) 복음을 선포해 온 ‘철학적 인간학’은 실용적인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공학이라는 막강한 적수를 만난다. 이제껏 학문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였다. 중세부터 18세기까지 신학이건 법학이건 심지어 의학이건 언어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고 외우는 것이 공부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겪으며 고급학문의 언어가 수학으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계문명의 무시무시한 효용성 앞에서 할 말을 잃고, 수학의 언어 앞에서 말문이 막힌 인문학이 그래도 완전히 추방되지 않은 것은 대학이라는 제도에 묻어있는 역사성 덕분이다. 대학에는 늘 ‘문과’가 있었다는 전통 덕분에 인문학자들은 연구실을 지키며 월급을 받았다. 또한 ‘철학’과는 아무 상관없는 분야의 최고 학위도 ‘철학박사’(PhD, philosophiae octor)라고 불렸다.

에너지가 보전되고 물질이 순환하는 자연의 세계에서도 그렇지만 인간이 살아온 역사의 세계에서도 무엇이건 완전히 사라지는 법은 없다. 이는 무엇보다도 인간은 여전히 인간이기 때문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부터 세계 전쟁과 학살로 점철된 20세기까지, 인간에게 영혼이 있는지, 양심이 있는지, 인간의 이성은 믿을 만한지 등에 대한 의심은 인문학 안팎에서 다양하게 제기됐었고, 실제 현실을 둘러보니 영혼이건 양심이건 믿을만한 이성이건 ‘아마도 없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게 만들 끔직한 일들은 계속 누적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이다’는 명제만은 살아남았다. 20세기 후반부를 풍미한 ‘구조주의’나 ‘기호학’ 및 여기에서 파생된 각종 ‘포스트모던’ 이론들은 언어적 존재로서 인간을 규정하는 ‘언어학적 패러다임’에 매달려 인문학의 자리를 지켜냈다. 물론 그 안에서는, 언어도 믿을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서 온갖 사회문화 현상들도 일종의 언어나 ‘이야기’라는 팽창주의까지 다양한 입장과 태도가 출몰했다. 그러나 이 모두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또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전제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인문학의 패러다임은 이제 다시 조용히 바뀌고 있다. 언어학이 아니라 ‘역사학’이 그 모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포스트모던 시대의 후반부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아날학파(L'Ecole des Annales), 신역사학, 신역사주의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역사연구는 동양적인 의미의 (텔레비전 사극이나 일본의 역사왜곡 등을 연상시키는) 역사와는 그 느낌과 분위기나 관심사가 다르다. ‘미시사’ 또는 ‘사회사’ 연구자들은 ‘민족’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대사건이 아니라 일상적인 평범한 삶의 자질구레한 변화들을 추적하고 재구성한다. 이러한 연구는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 신역사주의자들처럼) 특정 ‘이론’에 맞추려한 시도도 없지 않으나, 대체로 거창한 ‘철학적’ 야심과는 거리를 둔 채, 미미한 사실들과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조사한다. 신학을 대체했다고 주장한 철학적 패러다임에서 다시 언어학적 패러다임으로 바꿔 타고 수명을 유지해온 인문학은 이제 좀 더 확실한 학문적 대상과 방법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는 필자가 보기에는 매우 반길만한 흐름이다.왜 그런가? 그 대답은 필자가 모 정부기관에서 한 강연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인문학은 신학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시중에서 잘 팔리는‘인문학’ 베스트셀러들을 읽는다고 ‘힐링’이 될 리 있나요? 이러한 책들이 삶의 고민에 대한 ‘상담’을 해줄 말이 정작 별로 없거든요. 병은 의학이 고쳐야할 것이고 구원은 예수님을 믿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인문학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역사학입니다. 과거의 현재됨과 현재의 과거됨을 상기하고 입증한다는 의미에서.”

이와 같은 ‘역사학적 패러다임’을 ‘영문 모르고 하게 된’ 영문학 연구에 적용한다면? 쉽게 말해서, 위대한 작가 아무개 씨의 ‘정신’을 멋진 말로 대변하는 것이 ‘철학적 패러다임’이었다면, ‘언어학적 패러다임’은 작가의 ‘정신’보다는 ‘텍스트’그 자체의 행태를 분석하거나 텍스트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 ‘해체’하며 해석자의 기교를 뽐내는 식의 연구를 장려했다. 반면에, ‘사회사적 패러다임’은 작가의 정신이나 텍스트의 행태가 아니라 ‘페이지 구성’(mis-en-page) 및 책의 인쇄, 출판, 유통 등 책과 출판의 역사를 연구한다. 필자의 최근 저서는 「블랙우즈 에딘버러 매거진」(Blackwood's Edinburgh Magazine)이라는 19세기 영국의 월간지의 특징과 기능, 역할 등을 연구한 것인데,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등 유명한 작가들이 이 책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들은 작가의 ‘위대한 정신’이나 작품의 ‘글쓰기 전략’을 분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잡지를 축으로 재구성해 놓은 당대 문학장(또는 ‘문단’)의 역사를 조명하는 실증적인 연구의 초점으로 삼았을 뿐이다.

필자가 원장 겸 사업단장으로 있는 인문학연구원 ‘HK 문자연구사업단’도 이와 같은 ‘사회사적 패러다임’의 작지만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인간은 언어를 쓰는존재라는 말을 20세기 후반부에 질리도록 들었으나 정작 언어를 담아내고 지탱하는 ‘물질’인 문자 그 자체에 대해서는 연구가 소홀했다. 이 점에 착안해서 우리는 ‘문자인(人), homolitteratus’라는 개념을 연구의 주제 겸 ‘구호’로 제시했다. 이에 맞춰 동과 서, 과거와 근세에서 문자가 발생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부터 문자가 필사본이나 인쇄매체로 유통되는 역사,하이퍼텍스트와 문자예술까지 총망라한 연구를 훌륭한 연구교수들과 함께 수행하고 있다.또한 내년 2015년에 연희전문 문과 창설 100주년 기념 학회에는 독서와 출판의 역사연구를 선도해 온 세계적인 석학 로제 샤르티에(Roger Chartier) 교수를 본 사업단이 초빙하게 되었다. 우리 사업단의 연구활동 내력을 연구원 홈페이지에 들러서 훑어보거나, 로제 샤르티에 교수의 저서를 읽거나 강연을 듣는다면, ‘인문학’이 알듯 모를 듯한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 가짜 처방을 남발하며 오히려 시대의 야만을 부추기는 거짓 선지자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글_윤혜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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