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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영원한 젊은 시인' 기형도 (1960~1989)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4-04-01

29세의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난 시인이자 기자였던 기형도...

올 봄은 기형도 시인이 서거한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1989년 3월 7일은 시인 기형도(1960~1989)가 스물아홉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한 날이고, 그 이후로 2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윤동주 시인이 있었다면, 20세기 후반에는 기형도 시인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시에 드러나는 깊고 투명한 절망과 우울함, 고뇌와 사색이 한국 문학계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며 유고 시집인 『입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은 1989년 초판을 찍은 이래 지금까지 50쇄 26만 5,000부가 팔렸다. 그의 10주기인 1999년에 그의 시와 산문·소설 등을 묶어낸 『기형도 전집』(문학과지성사)도 24쇄 6만여 부나 팔렸다. 두 권의 책은 지금도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순위 2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려 ‘기형도 신드롬’을 만들었다. 스페인과 프랑스에서도 그의 시집이 번역 출간되었다. 청춘의 우울과 허무를 시적 경지로 끌어올린 기형도의 시는 특히 젊은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의 요절과 그의 작품세계에서 보이는 죽음과 상실의 이미지 때문이다. 그의 삶과 작품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매혹으로 다가오는 기제가 됐다.

기형도 시인은 옹진군 연평도에서 공무원인 부친의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65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로 이주했다.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여 문학 동아리인 ‘연세문학회’에 입회한 것을 계기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 당시 ‘연세문학회’ 회원이자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은 법학과의 성석제였다. 그는 연세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정치부, 문화부, 편집부 기자로 일하며 지속해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85년 우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안개〉가 당선되었다. 그러던 중 1989년 3월 7일 새벽 종로에 있는 파고다극장에서 ‘뽕2’라는 심야 영화를 관람하다가 뇌졸중으로 숨진 채 발견된다. 향년 29세. 같은 해 5월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발간되었다.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죽음이나 가난 등 비극적인 세계를 직시하면서도 항상 따뜻한 시선을 견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기형도 시가 가지는 탁월성이며, 기형도 시에 등장하는 비극과 죽음이라는 어둠이 갖는 힘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은‘엄마 생각’이라는 시에 잘 나타난다.

엄마 생각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이처럼 그의 시에는 죽음과 상실의 이미지가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이미지와는 다르게 실제의 기형도는 따스하면서도 예술적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가 중앙일보 기자로 일할 때, 사보에 실은 글을 보면 ‘인간 기형도’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사보에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로 당선한 시인이자, 유머 감각이 탁월한 독설가…. 문화부의 가수이며 만화가. 순발력 있는 공상가.”

연세문학회에서 함께 지냈던 절친한 친구인 소설가 성석제는 그에 대해 “실제로는 따뜻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노래를 잘 부르고 그림도 잘 그렸다.”고 말했다.

 

기형도 25주기 추모 문학제 열려

지난 3월 6일 경기도 광명시민회관에서 수많은 문인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인의 삶과 문학을 되돌아보는 ‘기형도 25주기 추모 문학제’가 열렸다. 경기도 광명은 옹진군 연평도에서 태어난 기형도 시인이 5살 때 이사 와서 짧은 생애 대부분을 살았던 곳이다.

광명시는 고인을 기리는 문학공원 조성을 내년까지 마무리 짓고, 2017년에는 문학관도 건립할 계획이다. 또한 고인의 시 '안개'의 배경이 된 안양천 주변에 산책로를 조성할 예정이다. 이번 추모 문학제는 아들이 집을 나서던 25년 전의 그 날을 떠올리는 어머니 장옥순 씨의 떨리는 목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지면서 시작되었다. 기형도는 어머니의 배웅을 받고 집을 떠난 다음 날인 1989년 3월 7일 새벽, 서울 종로의 한 심야영화관에서 세상을 떠난다.

이날 추모제는 대학 시절부터 연세문학회에서 함께 습작 시절을 보내며 절친한 친구였던 소설가 성석제와 이영준 문학평론가가 고인에 대한 추억담을 나누는가 하면, 최근 주목받는 후배 작가인 김행숙, 황정은 작가의 시, 소설을 김상현 성우의 산문 낭송으로 듣는 맛을 더해줬다. 이번 추모 문학제의 부제는 그의 시 제목인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였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중략)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들이여.

 

시인은 자신을 찾지 말라 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자취가 너무 짙은 탓에, 그 부탁을 들어주기는 어려울 듯하다.

<<입 속의 검은 잎>> 이라는 단 한 권의 유고 시집으로 청춘에 깊은 울림을 남기고 요절한 기형도 시인, 이렇게 사후에 시인과 작품이 사랑받는 경우도 드물다. 이름 기형도는 필명이 아닌 본명인데도 ‘이름마저 시인 같은 시인’, ‘죽음마저 극적이었던 시인’, 그의 작품과 함께 영원히 사랑받는 시인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vol.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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