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구순구개열 수술의 최고 권위자 박병윤 명예교수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1-11-01

퇴임 후에도 중단 없는 서전의 열정 13년간 우즈베키스탄 어린이의 미소를 찾아준 구순구개열 수술의 최고 권위자 박병윤 명예교수 구순구개열(언청이)이라는 얼굴 기형은 신생아 600명 중 한명에게 나타날 만큼 흔하게 일어난다. 최근 의술이 발달하여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구순구개열 환자들이 일찍부터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위의 시선과 손가락질로 괴로움을 안고 살아갔다. 이번 연세소식에서는 구순구개열 수술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환자들의 새로운 삶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고 있는 성형외과전문의 박병윤 명예교수를 만났다. 박 명예교수는 국내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우즈베키스탄에서 400여 명의 어린이들에게 새 얼굴을 찾아 주는 등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 8월 정년퇴임 이후 압구정동에 위치한 개인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24시간 365일 환자 생각하는 ‘천상 의사’ “서전(surgeon: 외과의사)은 쉬면 안 돼요. 쉬면 손이 무뎌지거든.” 박병윤 명예교수는 퇴직 후 곧바로 병원으로 나와 진료를 보고 있다. 퇴직 후 어느 정도 쉬고 싶었을 법도 한데 그는 조금이라도 손이 무뎌져 환자를 보지 못할까 하는 걱정에 곧장 진료를 시작했다. 의과대학 교수 재직 시에도 안식년을 3개월 이상 갖지 않았다는 그는 24시간 365일 심지어 꿈속에서도 치료법을 고민했다는 ‘천상 의사’다. 박 명예교수의 열정은 최근 발간된 그의 저서 「연세 두개안면 성형외과학」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책에는 다양한 병증의 실제 케이스가 사진으로 상세히 나와 있을 뿐 아니라, 의료진들이 치료를 위해 그렸던 그림들까지 빼곡히 담겨있다. 실제 케이스만을 엮어 나온 의학용 책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다. 그가 이 책을 발간 할 수 있었던 것은 수십 년간 모아 온 환자 관련 기록 덕분이다. 그는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할 당시 연구실 한쪽에 한약방에서나 볼 수 있는 큰 나무 서랍장을 두었다. 그 속에는 자신이 진료한 환자들의 자료를 차곡차곡 정리하여 보관해 두었다. “지금은 컴퓨터로 많은 자료들을 모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자료를 모아두어야 했어요. 이 나무 서랍이 아니었다면 사진과 같은 자료들이 다 훼손됐을지도 모르지요. 제가 모았던 자료들이 우리나라 의학계에 발전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니 자랑스럽습니다.” 우즈베키스탄 두개안면성형 봉사 활동 13년 박병윤 명예교수의 환자를 향한 열정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1999년부터 퇴직 직전까지 우즈베키스탄에서 구순구개열 및 얼굴 손상 환자들을 고쳐주는 의료봉사활동을 이끌어왔다. 그가 해외봉사활동을 결심한 데에는 그의 스승인 유재덕 교수의 가르침이 컸다. “유재덕 교수님은 우리나라 성형외과의 개척자이셨어요.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재능을 사회를 위해 쓰셔야 한다고 생각하셔서, 오래 전부터 무료의료봉사를 진행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봉사활동에도 동참하면서 저 또한 전문의가 된다면 꼭 환자들을 위해 봉사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박 명예교수는 지난 1998년 학술대회를 통해 우즈베키스탄에서 의료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고세준 선교사를 만나게 된다. 박 명예교수는 우즈베키스탄의 상황을 듣자마자 자신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라고 판단하였고 곧장 일을 추진하여 이듬해에 그의 제자들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로 날아갔다. 낯선 오지에서 의료활동을 펼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우즈베키스탄의 열악한 시설뿐 아니라 문화 차이는 우리 의료진이 의료활동을 펼치는데 큰 장애물이었다. 사회주의 문화 배경의 영향으로 현지 의료진들은 느긋하고 소극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을 다하는 우리 의료진이 의아하다는 눈길로 바라볼 정도였다. 박 명예교수는 현지 의사와 간호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사심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점차적으로 현지인들도 우리 의료진의 노력에 변화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현지 의료인들도 열심히 환자를 돌본다. 박 명예교수팀은 열흘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수십 명을 수술하는 강행군을 하며 지금까지 400례의 수술을 했다. 대부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중 노동을 하다가 코가 거의 잘려나간 청년의 코를 이마에서 떼어낸 피부를 이용해 복원한 수술은 수많은 의사들이 몰려들어 수술과정을 지켜봤을 정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다! 현지인 전문의 양성을 통해 중앙아시아 성형외과학회 창설 매년 우즈베키스탄을 찾았던 박병윤 명예교수는 늘어나는 환자 수를 보며 ‘물고기를 손에 쥐여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기’로 결심한다. 현지에 의료 기술을 전수키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엄선한 우즈베키스탄 의사 자파로프 무랏 씨(작은 사진 왼쪽)를 한국으로 데려와 우리 의과대학과 세브란스병원에서 2년 동안 성형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통해 좋은 성형외과의로 훈련시켰다. 무랏 씨는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 왕성한 진료활동과 더불어 우즈베키스탄 성형외과학회와 중앙아시아 성형외과학회를 창설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지인 제자를 양성한 것은 그가 우즈베키스탄을 위해 실행한 봉사활동 중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로 남아있다. 나비넥타이는 자부심의 표현 압구정동 성형외과를 생각하면 미용성형만 떠오를 정도지만 박병윤 명예교수는 치료성형을 고집하고 있다. 흔한 미용성형 분야가 아니라 구순구개열과 같은 치료성형 분야를 한다는 것은 그의 자부심이자 경쟁력이다. 그의 자부심은 그가 자주 착용하는 나비넥타이에서도 표현이 된다. 처음에는 위생을 위해 나비넥타이를 선택했다고 한다. 긴 넥타이는 아무래도 이곳저곳에 닿아 오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비넥타이가 박 교수를 나타내는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나비넥타이를 매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죠. 눈에 띄잖아요. 제가 두려움 없이 나비넥타이를 맬 수 있는 것은 제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영원한 연세인,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환자 곁에 박병윤 명예교수는 “내가 통째로 ‘연세’라 여기고 살았다”고 말한다. 1966년 우리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 후, 45년간 연세와 항상 함께 했었기에 ‘연세’ 없는 자신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이제 박 명예교수는 교수직에서 내려와 세브란스병원을 떠나왔지만 영원한 연세인으로서 연세가 자신에게 가르쳐준 의사로서의 일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환자의 진료를 미뤄서는 안 되죠.”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박병윤 명예교수는 어린이 환자와 진료 약속을 잡는다. 진료시간은 일요일 오후 2시. 그러고는 젊은 간호사에게 주말에 병원에 나와야 하니 병원 열쇠를 자신에게 달라고 말한다. 휴일에 홀로 병원에 나와 돋보기에 확대경을 겹쳐 쓰고 진료실의 불을 밝힐 노년의 의사를 떠올리니 왠지 뭉클해진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끊임없이 서전으로서 노력하겠다는 박병윤 명예교수의 열정과 새로운 출발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vol. 529
웹진 PDF 다운로드

연세소식 신청방법

아래 신청서를 작성 후 news@yonsei.ac.kr로 보내주세요
신청서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