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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연세 뉴스] 백자청화 영빈이씨 묘지·명기 및 석함 문화재 지정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0-11-01

영조가 직접 지은 묘지…. 수경원에서 출토 후기 왕실 관련 유물로 역사적·서지학적 가치 커 우리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한 <백자청화 영빈이씨 묘지·명기 및 석함(白磁靑華暎嬪李氏 墓誌·明器 及 石函)>이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11호로 지정됐다. <백자청화 영빈이씨 묘지·명기 및 석함>은 연세역사의 뜰과 루스채플 일대에 있던 영빈이씨(暎嬪李氏:1696년~1764년)의 묘인 수경원(綏慶園)을 1970년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西五陵)으로 옮긴 후 출토된 유물이며, 부속건물인 정자각과 비각은 연세역사의 뜰 안에 남아 있다. 영빈이씨는 영조(英祖:1694년~1776년)의 후궁으로 사도세자(思悼世子:1735년~1762년)의 어머니이자 정조(正祖:1752년~1800년)의 할머니인데 아들인 사도세자가 사망한 2년 뒤인 1764년 7월 26일에 경희궁(慶熙宮) 양덕당(養德堂)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이듬해 ‘의열(義烈)’이란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뒤에 사도세자가 장조(莊祖)로 추존되면서 그의 묘인 의열묘(義烈墓)는 원(園)으로 승격되어 ‘수경원(綏慶園)’이라는 이름이 내려지고, ‘소유(昭裕)’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묘지(墓誌:돌아가신 분의 나고 자란 연대, 가족관계, 성품, 활동상을 적어 무덤 속에 함께 묻는 유물로 도자기 또는 돌로 제작)는 청화백자로 제작한 2벌이 출토되었다. 묘지명 제목에 ‘御製暎嬪李氏墓誌’라 쓰여 있어 묘지문을 영조가 직접 지은 것을 알 수 있고, 글씨는 영조와 영빈 사이의 맏딸 화평옹주(和平翁主)와 혼인한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1725년~1790년)이 썼다. 묘지문에는 영빈이씨의 가계와 그가 영조와의 사이에서 낳은 1남 6녀에 관한 내용, 성품, 영조가 애도의 마음을 표한 글 등이 적혀 있다. 명기(明器)는 모두 20점으로 보(?), 작(爵), 향로, 호(壺) 등 제기(祭器)를 본뜬 소형 부장품이다. 새하얀 태토(胎土)와 유색(釉色)이 매우 정갈하고 바닥 또한 고운 모래로 받쳐 구운 후 갈아내어 역시 정갈하다. 석함은 모두 3개로 각각 2벌의 묘지와 명기를 담았던 돌함이다. 석함 내부에 홈을 파고 묘지와 모래를 번갈아 놓은 상태로 출토되었다. 이번에 지정된 유물은 조선 후기 왕실 관련 유물로 묘주(墓主)가 확실하고 1764년이라는 절대연대를 가지고 있어 역사적·서지학적 가치가 크다. 또한 묘지와 명기, 석함까지 잘 남아 있는 드문 예이면서 청화백자의 발색과 번조상태가 좋아 제작수준이 높고,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어 미술사(도자사) 연구에도 가치가 커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지정 유물들은 박물관(백주년기념관) 3층 민속실에 전시되고 있다.

 

vol.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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