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대한제당 ‘3無 경영’의 주역, 고 설원봉 회장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0-11-01

대를 이어 연세사랑의 발자취 남겨 우리나라 기업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고 더불어 모교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자랑스러운 연세인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이 10월 20일 오전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62세. 고인은 우리대학교 법학과(67년 입학, 71년 졸업)와 미국 브루클린공대 대학원을 나와 1983년부터 대한제당을 경영하고 1991년 대한제당 회장에 올랐다. 또한 우리대학교 재단법인 이사,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대한제당협회 회장,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대한핸드볼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설 회장은 ‘인화(人和) 우선의 경영’을 통해 1956년 창업 이후 단 한 번의 노사분쟁도 없는 무분규 전통을 잇는 데 성공했다. IMF 당시 무감원, 무감봉, 무분규의 ‘3무(無) 경영’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기도 했다. 또한 설원봉 회장은 남다른 연세사랑으로 지속적으로 모교의 발전을 지원했다. 1999년 법과대학 건물 신축을 위해 20억 원을 쾌척하기도 했으며, 2009년 5월부터 작고하기 전까지 우리대학교 재단이사로 역임하면서 재정관재위원회, 의료위원회 등 이사회 분과위원회 위원, 국제캠퍼스 소위원회 등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헌신했고, 연세우유, 동문회관 등 법인수익사업체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무엇보다 인화(人和)를 중시한 경영철학 설원봉 회장은 고 설경동 대한전선 창업주의 4남으로 맏형은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 셋째 형은 고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이다. 창업주 고 설경동 회장은 해방 이후의 국내 대표 기업가로서 대한제당, 대한전선, 대한방직을 창업했으며, 특별히 우리대학교 백낙준 총장과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우리대학교 발전에도 크게 공헌했다. 1958년 강당 신축에 재정 지원을 했고, 70년엔 법현학사 신축을 도왔다. 설원봉 회장은 이러한 부친의 기업경영철학을 이어서 훌륭한 경영을 실천했다. 설 회장의 경영 철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큰 기업론’, ‘지붕론’, ‘3무(無) 경영론’이 그것이다. 첫째로 ‘큰 기업론’은 사업의 근본적인 틀을 지탱해주는 관념이다. 1992년 대한제당이 신규 사업들을 모색할 때 설 회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돈이 된다고 해서 아무 사업이나 하면 안된다. 큰 기업은 큰 기업이래야 할 수 있는 사업들을 해야 한다. 우리가 설탕제조업을 하는 이유도 설탕이 식품사업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기간산업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붕론’은 최근 모든 기업들이 중요시하는 위기관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 설 회장은 “비 오는 날에는 지붕을 고치지 않는 법이다. 물이 새지 않도록 미리미리 방비를 단단히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예상되는 위기를 앞두고 갑자기 조직이나 시스템을 바꿔서는 안된다. 혼란이 생기기 때문이다”라고 항상 강조했다. 세 번째 ‘3무 경영’은 ‘무감원, 무감봉, 무분규’의 원칙이다. 설 회장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영환경이 악화됐을 때도 ‘3무 경영’을 실천했다. 2003년에는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IMF위기 당시, 다른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발표할 때 그가 “돈이나 기계보다 중요한 것이 기술이고,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모든 것은 사람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어렵다고 해서 사람 몇 명을 내쫓아서 경영수지를 맞추는 짓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IMF 때문에 회사가 어려울 정도라면, 우리 직원들은 지금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감원도 감봉도 하지 말자. 어려울수록 서로 참고 함께 이겨내 보자”라며 사원 모두를 격려한 일화는 유명하다. 모교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통해 연세의 발전을 꿈꾸다 설원봉 회장은 또한 우리대학교 재단법인 이사를 맡으면서 모교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우리대학교 부동산개발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대학의 발전 방향을 여러 방면에서 모색했다. 당시 학교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는 대부분 각종 개발제한사항으로 묶여 있어 오랫동안 개발에 대한 논의 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부정적 상황에서 전·현직 기업경영인, 내·외부 전문가(교수) 등 9명으로 구성된 위원들은 설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여 법인 부동산개발위원회를 꾸려 2009년 10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부동산개발위원회에서는 묶여 있던 각각의 부지에 대한 분석을 실시하고, 개발가능 업종을 제시하여 제한 내에서의 개발 또는 부지에 대한 제한사항 해제 방법 등을 모색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부지를 개발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 것으로써, 이전에 비해 큰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계속적인 성과를 거두어 나가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 대학의 교육재원 마련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모교에 대한 설 회장의 열정과 사랑, 그리고 헌신이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랑과 인화의 지도력 정병수 법인본부장은 올해 1월 우리대학교 부동산 문제를 풀기 위해 직접 현장 곳곳을 누비던 설 회장의 모습을 생생히 들려줬다. “공교롭게 전날 눈이 많이 내렸고, 기온도 크게 떨어져 현장답사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설원봉 이사는 이를 강행했다. 특히, 인천 장수농장에서는 눈이 발목까지 빠지는 상황에서도 위원들을 이끌고 현장을 일일이 둘러보셨다. 마지막으로 국제캠퍼스 공사 현장을 방문하였는데, 영하 20도가 되는 체감기온 속에서도 아직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건물 옥상에 올라 앞으로 펼쳐질 연세의 미래에 대해 설명을 하시고, 이를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재차 강조하셨다. 그 뿐만 아니라, 저녁에는 만찬을 직접 마련하셨고, 헤어질 때는 진한 포옹으로 격려하시고, 모든 실무진들에게도 일일이 ‘수고했어, 담에 봐!’하시며 친한 형님과 같이 다정다감하게 인사를 해주셨다.” 고인의 사랑과 인화의 지도력이 이 단편적인 일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봄, 김한중 총장은 설원봉 회장을 비롯한 위원회의 열정과 노력을 치하하고자 총장공관 초정 만찬을 계획했다. 하지만, 행사 당일 설 회장은 몸살로 인해 참석하지 못한다는 통보를 해 왔다. 그동안의 열정에 비추었을 때, 모교 초청행사에 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의외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몸살이 아니라 고인의 지병으로 인한 것이었다. 끝내 지병을 감추고 모든 일에 열성을 다했던 설원봉 회장은 올가을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하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조용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인화(人和)를 중시했으며, 모교에 대한 헌신과 사랑, 그리고 열정으로 더 나은 연세의 내일을 준비했던 고 설원봉 회장. 연세인들은 그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의 빈자리를 더 큰 사랑으로 채워갈 것이다.

 

vol. 510

연세소식 신청방법

아래 신청서를 작성 후 news@yonsei.ac.kr로 보내주세요
신청서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