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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고무남 경비용역 대장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0-04-16

“이곳이 내 학교 같고, 학생들은 내 자식 같아요. 연세 마크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죠.” * 25여 년 간 연세를 지켜온 성실한 파수꾼 그 어느 학생보다 그 어느 교수보다 우리대학교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경비용역 고무남 대장. 매일 아침 7시 30분이 되기 전 교정에 들어서기를 25년, 그중 무려 22년 동안 학교정문을 지켰으니 연세인이라면 누구나 알게 모르게 그의 곁을 스치며 인연을 맺었을 것이다. 그를 단순히 경비아저씨 정도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연세에 대한 그의 헌신과 애정은 평범하지 않다. 최루탄과 화염병의 연기로 숨을 쉴 수조차 없을 때에도 교문을 지켰고, 한밤중 교정에 난입한 불량배들에게서 여학생을 구해냈으며, 교내로 들어오는 잡상인 차량을 막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교문 앞에 드러눕기도 했다. 이런 고초들까지도 모두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고 대장의 미소 띤 얼굴에서 연세를 향한 지극한 사랑이 느껴진다. 25년 간 반복한 일상이지만 올봄은 고 대장에게 특별하다. 내년 2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어 사랑하는 연세에서 마지막 봄이기 때문이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던 지난 4월 6일, 고무남 대장을 만나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연세를 사랑하도록 만들었는지 그 소박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주간에는 수시로, 야간에는 3교대로 교내 순찰 적극적인 일처리와 솔선수범으로 통솔력 인정받아 뿜어져 나오는 긍정의 에너지 고 대장이 있는 곳은 서문을 들어서면 바로 왼쪽 편으로 자리잡고 있는 서문 경비초소. 정문에서 근무하다 몇 년 전 서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근무 장소가 바뀌어도 달라지는 업무는 달리 없어요. 교내 순찰 돌면서 소방차, 순찰차, 구급차 오면 어디서 사고 났는지 빨리 출동해서 확인해서 총무처에 보고하고 뒤처리 하고 그러죠.” 인터뷰가 처음이라서 긴장했는지 자꾸 손으로 무릎을 문지른다. 교내 순찰이라는 것이 쉽게 보이지만 야간에도 2시간 간격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면 사정은 달라진다. 경비요원들은 주간에는 수시로, 야간에는 6명이 1조를 이루어 2명씩 3번 교내 전체를 순찰한다. 정문에서 시작해서 외곽으로 한 바퀴 도보로 순찰하면 총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야간 순찰은 저녁 9시부터 새벽 4시 반까지 이루어진다. “순찰키, 손전등, 그리고 무전기 등을 들고 가요. 순찰 돌면서 화재가 났는지, 수상한 불빛이 나는 곳은 없는지 등을 살펴보죠. 가끔씩 술을 먹고 쓰러져 있는 학생들도 있고, 차가 어디를 박아서 안전사고가 난 것도 있고 그래요. 그러면 바로 정문으로 무전을 쳐서 구급차를 불러 구급조치를 해요.” 고 대장이 맨 처음 우리대학교에 오게 된 것은 외부용역업체로부터의 파견 근무를 시작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적극적인 일처리와 성실함을 인정받아 그는 곧 경비업체의 책임자로 임명되고, 18년 동안 “대장”으로 불리며 경비용역직원들을 통솔하고 있다. 고 대장은 책임자라 해서 일을 시키기만 하지 않는다. 직접 자신이 몸소 시범을 보이는 리더 스타일이다. “삽질할 땐 같이 삽질하고, 쉴 땐 같이 쉬고. (같이 일하는 경비요원들도) 집에 가면 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인데 어떻게 시키기만 해요. 같이 해야죠.”라는 말에서 그의 통솔력이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밤중 순찰이나, 폭설이 내린 새벽 제설작업 같은 일까지도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고 대장. “이십 몇 년 하다 보니까 도가 터요. 재미있어요. 열심히 하니까 그만큼 학교에서도 신임해 주시는 거 같아요. 그렇다는 사실이 저에게도 의지가 되니까 힘을 내서 일하게 되는 거 같고요.”라는 고 대장에게서는 긍정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학교 내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건사고의 산 증인 최루탄, 화염병 가스 마시며 근무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 밤새 학생들은 불 피우고, 고 대장은 불 끄고 고 대장이 지금까지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일까. “에피소드라기보다 사건사고죠. 그나마 80년대 데모 한창 많았을 때, 매운 가스 속에서 근무하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피부병 같은 걸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80년대에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데모가 꼭 있었거든요. 화염병 던지죠, 최루탄 가스 날아오죠. 끝나면 저녁 6시 반이나 7시. 그러면 우리는 그때부터 청소를 해야 해요. 그 매운 가스를 마시면서 근무도 하고 밥도 먹었죠. 그때는 젊으니까. 추억이죠 뭐.” 슬슬 고 대장의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지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80년대 학생운동 시절의 이야기 외에도 학교에서 곧잘 일어나는 자잘한 일들을 고 대장은 함께 겪어왔다. 90년대 초, 공대에서 화재가 났을 때 재빨리 정문으로 달려가 방독면을 찾아 쓰고 남은 소화기로 불길을 잡았던 것도 고 대장이었고, 청송대에서 조각전을 열었을 당시 청송대 주변에 텐트를 치고 경비요원들과 함께 조각들을 지켜내기 위한 보초를 선 것도 고 대장이었다. 주기적으로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학교로 들어오는 잡상인들의 이야기도 예외가 아니다. “졸업식, 입학식, 외부행사 등에 들어오는 장사꾼들이 가스통을 싣고 다니잖아요. 위험하니까 못 들어오게 하거든요. 막으면 장사꾼 여자들이 얼마나 억센지, 우리 근무자들의 양쪽 팔다리 번쩍 들어서 바닥에 던져버려요. 막아놔도 부시고 들어가고. 지금은 좀 덜하지만. 예전에 어떤 근무자들은 다쳐 입원하기도 했어요.” 연세인들이 미처 눈길을 주지 못했던 곳곳에 고 대장과 같은 경비요원들의 고생이 있었다는 것에 새삼 고마워진다. 고 대장이 학생들과 겪었던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다. “고려대 학생 한 명이 우리 학교에 와서 데모하다가 전경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크게 다친 적이 있어요. 그것이 나중에 고려대 학생하고 경찰 사이에 소송으로 번진 거예요. 그 사건 당시 제가 정문에 있었거든요. 백주년기념관 풀밭에서 주위 사람들이 그 학생 피를 닦아주는 걸 본 거예요. 결국 제가 증인 서 가지고 학생이 소송에서 이긴, 뭐 그런 일도 있었어요.” 대동제나 연고전이 있을 때에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놀다가 밤이 되면 상경대 뒤쪽에 있는 목공소에서 몰래 나무를 가져다가 불을 피워 몸을 녹이곤 했단다. 학생들은 노느라고 잠 못 자고, 당신들은 화재 날까봐 주전자에 물 떠서 쫓아다니면서 불 끄러 다니느라 밤을 새웠다는 이야기에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디 갔을 때 연세 마크만 봐도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는 고 대장. ‘나에게 연세란?’이라는 질문에 ‘나의 보금자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25년 동안 정성을 다해 지켜온 보금자리에서의 마지막 한해가 그 어느 해보다 더욱 행복하기를 바래본다.

 

vol. 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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