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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나보다 더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겠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0-03-16

하반신 마비 장애를 딛고 최초로 검사된 양익준 동문 지난 2월 8일, 과천시 정부종합청사 지하대강당에서 신임검사 임관식이 열렸다. 식이 진행되는 중간, 한 신임검사가 이귀남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받자 1분 넘게 큰 박수가 이어졌다. 그 주인공은 바로 휠체어를 탄 채 연단 위에 오른 양익준 검사(법학 01학번)다. 양 검사는 하반신 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임관한 최초의 검사가 됐다. 일반인도 힘들다는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거쳐 검사에 임용된 양 검사. 우리나라 법조계에 새로운 역사를 쓰며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서 법조인생을 시작한 자랑스러운 연세인이다. “어려운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눈물 흘리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검사가 되고 싶다"는 양익준 검사를 만나 역경을 이겨낸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양익준 검사가 휠체어를 타게 된 것은 1997년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불과 100일 앞둔 어느 날 집안 난간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서 하반신 마비(척수장애 1급)가 됐다. 재활치료에만 2년.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양 검사가 다시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데에는 신앙의 힘이 큰 버팀목이 되었다. “장애를 입기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기존에 꿈꿔왔던 것들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내 존재가 가치가 없는 것 같고.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힘도 들고. 그런데 신앙을 갖게 되면서 ‘아, 내가 가치가 있는 존재구나’ 다시금 느끼게 되면서 내게 주어진 모습으로 사회에 기여도 하고 내 가치도 발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위에 계신 분들도 공부를 계속하라고, 그러면 길이 좀 더 넓어질 거라고 응원해주셨어요.” 법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 보듬어주고자 다시 시작한 공부. 쉽지만은 않았을 터지만 양 검사는 2001년 당당히 우리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하게 된다. 처음에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려고 하였으나 김은경 학사지도교수의 권유로 법학과로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다. “지도교수님께서 결국 네가 꿈꿔왔던 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사회에 기여하면서 보람도 얻는 일이라면 법조인이 되는 게 네 꿈이 닿을 수 있는 폭을 훨씬 넓혀줄 수도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보통 남들은 대학교 생활과 고시 준비를 병행하지만, 양 검사는 대학 시절 학교 공부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등록금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졸업 후 고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에도, 비싼 고시 학원 강의를 듣는 대신 좀 더 저렴한 대학 내 고시 강의를 반복해서 들으며 공부했다. “꾸준하게 그렇게 한 건 아니지만, 매일 12시간 정도를 목표로 했어요. 아무래도 저는 남들보다 공부양이 적을 수밖에 없었거든요. 저는 몸이 베길 때까지, 몸이 힘들어서 쉬어야 할 때까지 안 쉬고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 정도 해야 남들이 하는 거 따라가거든요.” 힘든 상황 극복하는 버팀목은 아버지 ‘뛰어난’ 검사보다 ‘좋은’ 검사가 되길 힘들게 공부하는 아들을 항상 옆에서 지켜주었던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 양추일 씨는 양 검사가 대학에 입학하자 고향인 경남 마산시의 살림을 정리하고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로 올라와 학교와 가까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반지하 월세방을 얻었다. 아버지 양추일 씨는 아들의 사고 이후 생업을 포기한 채 대학교 4년과 사법연수원 2년 동안 아들을 뒷바라지해 왔다. 힘들 때마다 아버지가 해 주셨던 위로의 말이 있었냐고 묻자, “경상도 분이셔서 별 말씀이 없으셨어요. 그냥 ‘힘드나? 우짜겠노, 해야지’ 하셨다”며 양 검사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에도 항상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주시는 아버지의 존재는 양 검사가 대학 시절과 고시 준비 기간을 묵묵히 견디어내는 데 그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다. 양 검사의 아버지는 검사가 된 그에게 “뛰어난 검사보다는 힘든 사람들 보듬어 주고 감싸줄 수 있는 좋은 길로 갈 수 있는 그런 검사가 되라”고 당부했다. 학교 측과 교수들의 도움 커 공부는 ‘국가고시지원센터’에서, 휴식은 장애인 쉼터 ‘새움터’에서 양 검사와 그의 아버지는 학교의 지원에 감사드린다는 말을 꼭 빼놓지 말아 달라 당부했다. 몸이 불편한 양 검사가 수업을 듣고 고시를 준비하는 데에는 학교의 고시지원 프로그램과 장애인 학우를 위한 공간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 “제가 가정형편상 고시 공부를 대학졸업하고 나서 시작했어요. 1차를 붙고 2차를 준비할 때, 저희 집이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거든요. 그 때 당시 장애인 지도교수님이셨던 조재욱 교수님께 상황을 말씀드렸죠. 당시 장애인 기숙사에 졸업생은 들어갈 수 없었는데, 교수님께서 배려해주신 덕에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양 검사가 대학 시절 자주 들렀던 곳은 백양관에 있는 ‘새움터’다. 새움터는 이학종 퇴임교수(경영대학)가 출연한 1억원의 장학금으로 마련된 교내의 장애인 쉼터. “양일선 교수님(현 교학부총장)과 신영수 교수님(경영대학)이 새움터를 만드는 데 힘을 많이 써주셨어요. 학부 1학년 때 교양과목 들을 때도 그렇고, 법대과목 들을 때고 그렇고 학교 다니면서 중간중간 혼자서 공부하거나 쉬어야 할 시간이 있잖아요. 일반 비장애인들은 걸어 다니니까 풀밭 같은 데서도 쉴 수 있지만, 저희는 아니거든요. 거기 가면 침대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학교생활 하는 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도전정신을 불어넣어준 후배, 신형진 군 양 검사에게는 잊을 수 없는 대학 시절 친구가 하나 있다. 바로 신형진 군(컴퓨터공학 02학번)이다. 신형진 군은 ‘척추성 근위축증’이라는 희귀질환으로 목 아래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임에도 가족들의 간호와 지원에 힘입어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제가 형진이를 만난 게 대학교 2학년 때였죠. 형진이 보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힘든 상황인데도 형진이는 굉장히 밝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에요. 자기 스스로 뭔가 하려 그러고, 공부도 많이 해서 자기가 이루고 싶은 것도 많고.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 싶어요. 주위 사람들이 곧잘 그러거든요. 힘드니까 이제 좀 편하게 지내라고. 그런데 그런 말 오히려 듣기 싫어해요. 그 친구가 저한테 도전의식을 많이 불어넣어 주었죠. 형진이 어머니께서도 여러 가지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어요. 힘들 때 물질적으로 도와주신 부분도 있고. 살면서 어렵고 힘들다고 느끼는 때가 있잖아요. 그 때마다 전화하셔서 제가 걷는 이 길이 앞으로 후배들한테 그렇고, 어려운 사람들한테도 도움도 될 거니까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주셨어요.”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좋은 사회될 것 연세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묻자 “제가 다른 사람들한테 주목 받을만한 일을 한 건 아닌데, 일상적으로 남들 하는 것처럼 해왔는데, 제가 장애가 있다 보니까 주목을 받는 거 같아요. 어떤 말을 남기고 할 그럴 입장은 아니고. 그건 여러 가지로 사회 경험 많으신 선배들께서 하실 말씀이잖아요”라며 쑥스러워 머뭇거린다.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 양 검사는 “각자가 본인의 역할에 충실하면 사회가 좀 더 원활하게 돌아가고 훨씬 더 발전할 꺼라 생각해요. 학생시절에는 학생으로서 경험하고 배워야 하는 본연의 역할들,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어울리고, 읽어야 하는 책들은 읽고, 공부할 것은 공부하고 그 시기에 해야 하는 것들에 충실하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vol.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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