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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특별 기고] 진리와 자유, 연세, 그리고 나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9-05-01

- 글 : 상경대학 윤석범 명예교수(2009년 재상봉 50주년 대표) 무악산 밑에 자리 잡은 연세의 아름다운 교정과 숲은 이미 이양하의 「신록예찬」에서 널리 소개된 바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신록예찬」은 여러 해 전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여 많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였다. 필자도 고등학교 때 이 글을 읽고 연세를 흠모하여 왔을 뿐만 아니라, 연세에 입학한 뒤에도 이 숲에 파 묻혀 고민하며, 명상하며 삶을 설계 하였고, 연세를 졸업한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매일 같이 한 시간 이상을 이 숲속과 교정에서 걸으며 계절의 바뀜과 그 바뀜에 따른 자연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감상하면서 살고 있다. 그것은 누구도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며 특권이다. 그러나 연세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못지않게 연세가 우리에게 주는 특권은 바로 연세의 정신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는 교훈이다. 확신하건데, 진리이면 모든 것을 연세에서 가르치고 배우기 때문에 연세인이면 누구나 자유를 숨쉬며, 자유를 만끽하면서 살 수 있게 된다. 다른 어떤 대학의 졸업생보다도, 따라서 연세인은 바로 진리인이며 자유인이다. 연세인처럼 진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또 연세인처럼 자유스럽게 사고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없다. 여기에 바로 연세의 정신이 샘솟고 널리 그리고 멀게 세상 속으로 퍼져나가는 힘이 있게 된다. 19세기 말 동양의 작은 은둔국에 들어오기 위하여 한강을 배타고 올라와서 다시 가마를 타고 서울로 들어온 원두우, 아련, 그리고 어비신에 의하여 세워진 연세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서양식으로 교육을 시작한 학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최초의 의사를 길러내어 배출시킨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그래서 1985년 창립 백주년이 되던 해에는 나라에서 기념우표를 찍어주면서, 연세의 창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주었다. 그 해에 할 일은 다 마치셨다는 듯이 백낙준 박사도 돌아가셨다. 교육과 연구에는 언제나 엄격한 규율과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통례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학창시절에는 엄격하신 교수들도 많이 계셨다. 지금의 연희관을 새로 짓고, 그 연희관을 너무 소중하고 든든하게 생각하셨던지, 징을 박은 구두를 신고 들어가면 꾸중을 하시던 장기원 교수, 상과 학생들이 도이치어를 공부하겠다고 하니까 장사나 하는데 그 말이 왜 필요하냐고 나무라시던 당시의 문과대학장 정석해 교수, 단성사가 서울의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시던 신과대학의 지동식 교수, 교내에서 담배를 피우면 연세학생의 여부를 막론하고 따귀를 때리시던 문상희 교수, 이분들은 얼핏 보기에는 고집스러운 영감님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나름대로의 진리에 기초한 원칙이 있었고, 그 때문에 남을 배려하는 자유가 무엇인지를 몸소 가르쳐주신 연세인들이다. 124년이 흐르면 세상은 물론 바뀌게 마련이다. 가치체계가 바뀌고, 사고방식이 바뀌면서 사람도 바뀌고, 학교도 바뀌고, 교수도 바뀌고, 학생도 바뀐다. 서대문까지 전차를 타고 와서 북아현동 복지 웃물을 지나 이화여대 기숙사 옆으로 걸어서 오던 시절에는 어차피 큰 고개도 포장이 되지 않은 좁은 길인데다가, 그 털털거리고 버스도 신촌기차역이 종점이어서 거기까지 밖에 오지 않았다. 학교를 오기 위하여 걷는 데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 무성하던 솔밭이 없어지고, 수경원에 잠들고 있던 영빈 이씨도 서오릉으로 옮겨지고 그 자리에 루스채플이 생기면서 연세도 물리적으로 크게 바뀌었고, 이에 따라 정신적으로도 많이 변화 하였다. 학과도 늘고, 대학도 늘고, 대학원도 늘고, 또 캠퍼스도 늘어났다. 진리의 폭과 깊이도 커지고, 자유 영역도 확대 되었다. 그렇게 금기시 되었던 흡연도 교내에서 자유롭게 허용되고, 그렇게 금기시 되었던 술도 자연스럽게 수용되면서 창립 120주년에는 연세 휘장이 붙여진 포도주도 판매 촉진되어 그 수익의 일부가 장학금 기금으로 전용되기도 하였다. 가치관과 사고 체계의 변화에 따라 진리와 자유의 정의도 바뀌고, 연세의 정신도 바뀌지만 그 본질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본뜻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까만 머리의 숱이 빽빽하게 들어찼던 나의 머리도 하얗게 바뀌고, 숱도 뜨문뜨문 셀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우리를 야단치시고, 한자라도 더 가르쳐 주시려고 애쓰시던 은사들은 대부분 타계하셨고, 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가 이제 물러난 지도 벌써 10년이 가까워진다. 해맑은 웃음과 젊음의 생동감을 가지고 가볍게 학교로 걸어 들어오는 젊은이들을 보면 우리도 마음만은 따라서 젊어진다. 연세는 그래서 해가 거듭할수록 우리들의 영원한 안식처로 남는다. 진리와 자유가 있고, 이 속에서 영글어가는 지성과 낭만이 있어서 연세는 또한 영원할 수밖에 없다. 세월이 흐를수록 연세는 더욱 젊어지는 샘인 진리와 자유의 물이 있다. 연세라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은 진리와 자유라는 꿀과 젖이 있어서 우리를 영원히 젊게 한다.

 

vol.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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