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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연세 뉴스] 100년 만에 돌아온 의과대학 졸업장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8-06-16

세부란시병원의학교 1회 졸업사진 속 ‘7박사’ 모두 확인 김희영 선생의 후손이 졸업장 기증해 “100년 전 수여된 졸업장이 돌아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면허의사이자 의과대학 1회 졸업생 중 한명인 김희영(金熙濚) 선생의 손부인 장애자 씨와 증장손자 김용재 씨가 6월 3일 총장실에서 김희영 선생의 졸업장을 의료원에 기증했다. 김한중 총장은 “오늘부터 꼭 100년 전인 1908년 6월 3일 수여된 우리대학교 첫 졸업생의 졸업장이 모교로 돌아오게 돼 기쁘다”면서 가보를 기증해 준 후손들에게 사의를 표했다. 장애자 씨와 김용재 씨는 작고한 남편이자 부친인 고 김완철 씨가 할아버지의 유물을 가문대대로 보존할 것을 유언으로 남겨 이제껏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도중 지난 4월 김희영 선생의 외손자인 송덕근 씨가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가 면허의사 배출 100주년 기념 사진전에 전시된 의과대학 4회 졸업증서를 보고 외할아버지의 비슷한 유물을 기억하여 의료원에 연락을 취했고, 이에 박형우 동은의학박물관장이 후손들에게 모교와 후학을 위해 기증할 것을 간곡히 요청하여 이번 기증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번에 기증된 김희영 선생의 졸업장은 영어와 한글로 표기돼 있으며 수여기관은 ‘世富蘭?病院醫學校(세부란시병원의학교, Severance Hospital Medical College)로 표기돼 있다. 전문은 ‘오른쪽에 표기된 이가 內外科(내외과)와 産科(산과)의 의학 전 과정을 마치고 同(동)과정에 충분히 시험에 통과해 의학박사 칭호를 득하였으므로 이 증서를 수여 한다’고 명시했다. 이후 7명의 의대 1회 졸업생은 전문에 나온 의학박사 호칭에 따라 ‘7박사’로 불리게 됐다. 박형우 관장은 “한국 최초 면허의사들의 졸업장이 첫 공개된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한국의료사의 기록물로 큰 가치를 부여했다. 아울러 이번 졸업장 기증으로 1회 졸업생들의 사진 속에서 김희영 선생을 확인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 면허의사 7명 중 지금껏 얼굴과 이름을 모르던 2명의 신원이 밝혀졌다. 또한 졸업증서의 상단 좌우측의 대한제국 상징인 이화(梨花)무늬 및 상단중앙의 태극문양이 표기되어 있는 것은 당시 국운이 기우는 가운데 나라에 대한 충성과 사랑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고 박형우 관장은 덧붙였다. 실제로 세브란스병원의학교는 당시 몇 안되는 민족계 고등교육기관으로 많은 졸업생들이 훗날 독립운동과 3.1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나라 첫 면허의사이자 우리대학교 첫 졸업생 중 한명인 김희영 선생은 1879년 태어나 배재학당과 세브란스병원의학교를 졸업한 뒤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개업의로 활동하다가 강원도 춘천 예수병원장과 충남 직산 금광병원장을 역임하며 한국인 광부 및 미국인을 진료했다. 그러나 폐결핵이 발병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다가 1920년 11월 8일 4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한편, 이번 기증소식은 조선일보 6월 7일자 사회면에 크게 기사화 되었으며, 이 기사를 본 의대 3회 졸업생(1911년 졸업) 중 한명인 곽병규(郭柄奎) 선생의 셋째 딸인 곽연찬 씨가 6월 10일 연세의대 동은의학박물관을 찾아 부친의 졸업장과 당시 졸업사진 원판을 기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면허의사 7인의 이름·얼굴 확인돼 1908년 6월 3일 우리나라 최초의 면허의사로 배출된 세브란스병원의학교 1회 졸업생 7명 중 ‘김필순’(좌측 사진상 ①번), ‘홍석후’(②번), ‘주현측’(④번), ‘박서양’(⑤번), ‘홍종은’(⑦번) 등 5명을 제외하고는 2명의 졸업생은 각종 자료상의 얼굴사진과 이름이 남아 있지 않아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금번 ‘김희영’ 선생의 후손이 사진 상의 ⑥번이 김희영 선생이라고 확인함으로써 자연스레 ③번 인물이 ‘신창희’ 선생으로 확인되어 7명의 졸업생의 신원을 다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 상 가운데 외국인은 당시 세브란스병원의학교의 외과교수로 있던 허스트 박사이다. 이들 7명의 졸업생은 편안하고 부유한 개업의로서의 생활을 택하지 않고 모교에 남아 후학을 양성했으며 근대의학을 한국에 정착시키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의학교과서의 한글화 번역 및 편찬 작업을 진행했다. 또한 국권 침탈 전후로 김필순, 주현측, 신창희, 박서양 등은 중국 등지로 망명하여 이주동포의 무료진료활동과 독립운동 등을 지원한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사명을 다하기도 했다.

 

vol. 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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