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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정현종 퇴임교수 - “교정의 나무 한 그루가 희망이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7-03-01

아무리 문학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정현종 퇴임교수의 시를 한번쯤은 암송해 보지 않았을까?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짧고 강렬한 시 ‘섬’을 비롯해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등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는 정현종 시인. 따스한 봄볕에 땅이 부풀고 새싹이 돋아나는 새봄, 새내기들과 함께 활력이 넘치는 새 학기를 맞아 정현종 시인을 찾아 희망의 메시지를 들어 봤다. * 퇴임 이후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 글 쓰는 것은 평생의 일이니까 별다른 근황이랄 것이 있나요. 다만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하는 생활을 벗어나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니 너무 좋습니다. 그렇게 좋다고 하니까 제자들이 서운하다고 말할 정도였지요(웃음). * 최근에 노벨 문학상 수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 시인의 시집을 번역해 발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네루다(Pablo Neruda)의 시를 번역해 두 권의 시집을 내놓았어요. 한 권은 네루다의 첫 시집이자 남미에 그의 이름을 처음 알린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완역한 것이고, 다른 한 권은 네루다의 시들을 추려 묶어 1989년 발간했던 시선집을 ‘네루다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한 번 다듬어 펴낸 것이에요.” 정현종 교수는 ‘네루다 시선’ 말미에 수록한 해설에서 ‘네루다의 시는 언어라기보다 그냥 하나의 생동이다. 그의 살은 제 살이 아니라 만물의 살이요. 그의 피는 자신의 피가 아니라 만물의 피이며, 그의 몸 안팎의 분비물은 자기의 것이라기보다 만물의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네루다는 만물이다. 그의 시를 통해 자신들이 드러날 때 사물은 마침내 희희낙락하는 것 같고, 스스로의 풍부함에 놀라는 것 같다’라며 네루다의 작품에 대해 예찬하고 있다. 또한 후기에서 ‘마치 옮긴이 자신이 쓴 것처럼 으스대고 싶기도 하다’고 썼다. 이 문구만으로도 정 교수가 네루다 작품에 얼마나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또한 이번 시집 번역에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 * 거실 한쪽에 상당히 많은 그림동화책들이 쌓여 있네요. - 얼마 전까지 동아일보에 ‘정현종 시인의 그림 읽기’라는 걸 12회에 걸쳐 연재했어요. 그림동화에서 그림을 하나 골라서 그림에서 연상된 글을 짤막하게 쓴 것이었죠. 그 난에 글을 싣는 동안 출판사에서 그림동화를 많이 보내 주어서 100여 권의 그림동화를 봤는데 실제로 쓸만한 것이 별로 없었어요. 이거 참, 우리나라 동화책 시장이라는 것이 너무하구나. 아이들을 상대로 아무거나 파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제력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이 국가의 명예와 품격을 결정한다”
* 시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주십시오. - 시는 영혼의 지리학입니다. (기자가 지리학을 전공했다고 밝히자 정 교수는 대번 지리학과 문학을 연결지었다.) 바깥의 물리적인 지리가 아니라 인간의 영혼과 정신의 지리를 연구한다면 어떻겠어요? 그것이 바로 문학입니다.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준비하면서 독일을 여러 차례 왕래했는데 릴케(Rainer Maria Rilke)의 작품이 독일 안내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중의 한 명인 릴케의 작품은 그 어떤 관광안내 자료보다도 강력하고 가치 있는 안내서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문화와 예술은 한 나라의 명예와 품격을 높이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잘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단순히 돈이 많은 것만으로 무엇이 그리 자랑스럽겠습니까. 독일의 문학, 철학, 음악이 있기 때문에 독일이 위대해 보일 수 있는 것이지 독일의 경제력 때문에 위대해 보이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경제만을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겁니다. * 새봄, 새 학기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맞아 ‘희망의 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 - 희망은 우리를 속이는 것이기도 하죠. 우리는 희망에 속아 삽니다. 그러면서도 갖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바로 희망이고. 희망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희망은 구체적인 것이에요. 국가적 차원에서 희망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정치 현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정치적으로 우리나라는 후진국이예요. 우리는 한번도 흐뭇한 정치를 본 적이 없어요. 정치인들이 흐뭇한 정치를 해 줘야 희망이 생기는데. 또한 북한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우리의 운명은 짐이기도 하고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해요. 현실이니까 받아들여야 하고 지혜롭게 풀어야 희망이 있을 겁니다. (정 교수는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실험을 비판하는 시 ‘무엇을 바라는가’를 발표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기 위해서는 정치집단이든 크고 작은 조직이든 혹은 개인이든 간에 공공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수, 직원, 학생이 학교를 먼저 생각하는 것, 정치인이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것과 같이 공익을 위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보다 큰 것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욕만 좇아서는 그 자신도 잘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자기비판도 해야 하구요. 남의 탓만 하면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참 어려운 일이지요. 말은 이렇게 해도 제 자신도 참 어려워요. 그래도 노력은 해야지요. 공공의식이 이렇게 없어서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을까 걱정스런 때도 많습니다. 좋은 일을 한다든지 올바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볼 때 이 사람들 때문에 희망이 있구나하고 느낍니다. 결국은 사람이 희망이고 우리 자신들이 희망을 만들어 가는 거 아니겠어요? 각자 자기가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겠지요. * 우리대학교 차원에서 희망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 연세대학교는 그 어느 학교보다도 캠퍼스가 아름다운 학교예요. 택시를 타고 캠퍼스에 들어가다 보면 운전기사분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어요. 연세대에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복받은 사람들이라고. 하루 종일 숨 막히는 서울의 도로를 달리다가 우리 교정에 들어서면서 아름다운 자연과 환경에 감탄하는 것이지요. 누가 제게 연세대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전 서슴없이 ‘숲’이라고 말합니다. 젊을 때는 숲이나 자연에 대해 잘 못 느껴요. 어쩌면 그것이 젊은이의 특징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연세의 숲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못 느껴요.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차츰 자연의 소중함, 나무 한 그루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지요. 4년 동안 우리 학생들이 숲에서 받는 기운이 엄청납니다. 숲이 없어지면 연세대의 정신과 영혼이 없어지는 것이에요. 나무 한 그루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희망을 만듭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희망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무 한 그루가 우리의 희망이에요. 그런데 몇 가지 예 중에 하나를 들자면 송자 교수가 총장 재임 시절 무악(毋岳)의 가장 깊은 계곡을 쓰레기 매립장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지금은 무슨 창고가 들어앉아 있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상식만 있어도 할 수 없는 일이예요. 재정을 튼튼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돈을 끌어오는 것은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자연과 전통의 가치와 의미를, 숲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대학을 운영해야 합니다. 또한 문화와 예술이 한 나라의 명예와 품격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과학, 인문학은 대학의 명예와 품격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치가 없다면 대학이라는 게 기술학교나 취직준비 기관에 지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인문적 소양을 갖추고 인문적 가치를 아는 분들이 대학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연세인들을 위해 더 남기실 말씀이 있다면 해 주십시오. - 그동안 좋은 말이 없어서 세상이 일그러진 게 아닐 거예요. 좋은 말은 넘치는데 자기 것이 안 됐기 때문이지요. 스스로 겪고 깊이 느끼고 깨달아야죠. 자각을 통해 육화(肉化)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정현종 퇴임교수는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4년 우리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신문, 잡지 등에 기자로 재직하였고, 1982년에 우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취임하여 2005년 2월까지 봉직했다. 그는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쉬임없는 창작열과 언제나 자신의 시세계를 갱신하는 열정으로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견딜 수 없네』등의 시집과 『고통의 축제』, 『이슬』 등의 시선집을 냈다. 또한 ,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네루다 시선』을 비롯해, 『백 편의 사랑 소네트』, 『강의 백일몽』 등을 우리말로 옮겨 네루다와 로르카를 국내 독자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그는 한국문학작가상, 연암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4년에는 칠레 정부에서 전 세계 100인의 시인, 소설가에게 주는 ‘네루다 메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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