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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카메라로 영혼을 훔치는 작가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4-01-23

카메라로 영혼을 훔치는 작가

한국 현대 사진의 아이콘, 구본창 사진작가(경영학 71)


 (사진 제공: 구본창 스튜디오)


구본창 동문은 현대 사진의 거장으로 대한민국 사진의 위상을 높인 대표 사진작가다. 2023년 12월 13일부터 올해 3월 1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구본창의 항해>라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첫 작품인 〈자화상(Self-Portrait)>(1968)부터 최근 작품까지 500여 점의 사진과 600여 점의 자료가 전시돼 구 동문의 사진 인생 45년을 펼쳐 놓았다. 국공립 미술관에서 이례적으로 개최되는 한국 사진작가의 개인전이자 대규모 회고전이라는 점에서 그의 저력과 위상을 알 수 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구본창 동문을 만나 사진과 함께해 온 인생을 들어 봤다.



렌즈에 영혼을 담는 작가


“내가 시선을 두고 있는 사물의 영혼을 붙잡는 것이 사진에 담고자 하는 이야기예요. ‘영혼을 훔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죠.”


사진작가로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작품에 영혼을 담는 것이라는 그의 말대로 전시된 작품 중에는 자유를 얻고 싶어 하는 듯한 독특한 관점의 사진이 많다. 하나같이 고독한 심정을 위로하는 말을 걸어오고, 영혼을 담으려는 열정을 보여 준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다양한 나라에서 전시를 열었던 구 동문에게도 한 예술가의 인생이 담긴 작품과 자료를 모아 전시하는 일은 생소한 경험이다.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에요. 살아 있을 때 내 작업을 정리하고 돌아보는 것은 뜻깊은 기회입니다. 앞만 보고 작업해 왔는데, 지금까지의 다채로운 작업을 모두 펼쳐 놓을 수 있으니 감사하죠. 영혼이 깃든 곳은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어요. 인물과 풍경만 찍지 않았죠. 작은 소품, 사소한 물건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구 동문은 인생에서 여러 파도를 만나듯이 자신의 사진도 파도를 만나고 파도를 일으키기도 했다고 표현한다. 그의 유년 시절부터 대학 재학 시절, 독일 유학 생활까지 삶의 커다란 물결을 함께 돌아봤다.



모퉁이에서 살아온 성장기


구본창 동문은 어린 시절 내성적이었고 친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비 오는 날 도랑에 떠내려온 사금파리나 조약돌 등 작은 사물과 소리 없이 대화하며 놀았다. 모퉁이 구석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고 자기 의견은 감추고 자랐다. 수집벽(癖)도 대단해 자신이 모은 잡동사니와 메모들을 수십 년 동안 간직했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이 하찮게 보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사소한 것에 마음이 끌렸다. 사진작가가 된 후 그 사소한 것들에 더욱 시선을 뒀다. 스쳐 지나는 것에 주목했고 그런 처지인 사람들이 그의 사진에 위로를 받았다.


“주목받지 못하고 버려진 존재들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 왔습니다. 소외된 자리에서 소외된 대상에 관심을 가져오다 성공했으니 행운이라 할 수 있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계속 모퉁이에 있는 이들에게 그곳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만류로 원하는 공부를 선택하지 못하고 경영학을 공부했다. 우리 대학교 재학 시절 평범한 모범생이었으나 행복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사그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술 동아리 화우회에 가입해 그림을 그리며 열망을 삭혔지만, 전공을 바꿀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아무 일탈 없이 졸업해 대기업인 대우실업에 입사했지만, 직장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년 만에 사직서를 냈다.


“회사에서의 생활이 저를 옥죄어 오면서 행복하지 않은 직장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스트레스였어요. 고교 시절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공부한 경험을 살려 학비가 들지 않는 독일 유학을 결심했죠. 1979년 당시 학생 여권을 받기가 어려워 작은 회사에 들어가 독일 주재원으로 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독일에서 발견한 사진작가의 길


독일로 떠난 그는 낮에는 회사 업무를 하고, 야간에는 학원을 다니며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당시 로고 디자인을 배웠는데 평생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곧 그만두고 국립 대학인 함부르크조형미술대학에 진학했다. 같이 입학한 독일 친구가 사진을 공부하고 있어 사진디자인학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다양한 미술을 배우다가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직접 피사체를 택하고 결과를 빨리 확인해 볼 수 있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독일에서 내가 가진 소심하고 섬세한 성격이 재능임을 알았어요. 남들과 다른 걸 눈여겨보는 관점이 독특한 결과물을 만들었죠. 독일에서 사진을 접하고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평생 뒤처진 인생으로 살았을 겁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발견하고는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초기에는 거리 스냅 사진을 많이 찍었다. 프랑스 작가로 사진계의 톨스토이라 칭송받는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을 닮고 싶었고 그 이상을 찍고 싶었다. 그의 작품을 따라 해 보다가 갈증을 느껴 독일 현대 사진의 거장 안드레 겔프케(Andre Gelpke)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 유학생인데 내년에 귀국하기 전에 꼭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소심한 그였지만, 사진과 관련된 부분에서만큼은 용기를 내는 게 가능했다. 안드레 겔프케는 무작정 걸려 온 그의 전화에 친절한 조언을 해 줬다.


“안드레 겔프케가 ‘네 사진은 좋은데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이 찍었다는 것을 알 수가 없다. 한국적인 것, 너만의 것을 찍으라’고 조언했습니다. 그 조언이 제 사진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됐죠. 1984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헤어진 후 종종 연락을 주고받다가 2014년 스위스 개인전에서 만났고, 2019년 제 개인전을 보러 한국에 오시기도 했어요. 스위스 취리히대학교에 계실 때는 저를 초대해 특강 기회를 주시기도 했습니다.”



경영학 전공과 사진가의 삶


구 동문에게 우리 대학교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언론에 홍보 강점으로 작용했다. 독일에서 6년을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가 1985년이다. 당시 사진가로 데뷔하기란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 전시회를 열어 알려지기 시작하자 우리 대학교 경영학과 출신이라는 점이 기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왜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이 독일 유학까지 다녀와 사진작가가 됐냐’는 것이다. 그 당시 명문 대학 경영학과 출신의 사진가는 구 동문이 유일했다. 사진학과 또한 몇 군데 없던 시절로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들이 선택하는 학과로 알려져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학력이 오히려 자신만의 큰 무기가 됐다.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회고전 준비를 위해 12월 초부터 미술관에서 살다시피 했죠. 나는 경영학을 공부했기에 예술 자체만 생각하지 않아요. 대우실업에서의 경험도 적용해서 통섭적인 사고로 전시회를 준비하고 판단하죠. 예술만 생각하는 사람과 달리 경영학적 사고로 투자한 만큼 벌어야 한다는 기본 생각으로 전시회를 준비해요. 에너지를 쏟은 만큼 효과가 있어야 하니까요.”



한국의 정체성과 영혼을 고민하다


구 동문은 여러 권의 사진집을 출간했다.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쓴 책도 있다. 특히 1980년대 한국의 모습을 담은 《Korea; In the 1980’s》와 《DMZ 구본창 사진집》이 눈에 띈다.


“1980년대 아시아에서 온 학생이라면 중국인 아니면 일본인인지 물어요. 한국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독일에 살 때 박물관 구경을 많이 다녔는데 일본관, 중국관은 규모가 큰데 한국관은 골방에 적은 수의 유물만이 전시돼 있었어요. 한국의 정체성을 고민했죠. 그때 우리 문화재를 훔쳐 간 나라들의 발달된 문화를 처음 접했어요. 특히 밀라노에서 일본 문화를 새롭게 봤죠. 우리는 이순신 갑옷은커녕 구한말 갑옷도 볼 수 없는데 사무라이 갑옷들은 화려하게 원본이 전시돼 있었어요. 우리 문화의 위상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해 한국 문화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구 동문은 귀국 후 초기에 한국의 다채로운 색과 멋을 찍었다. 출사하러 갈 때는 항상 카메라 두 대를 메고 다녔다. 양쪽 어깨에 각각 칼라와 흑백 니콘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흑백은 침울한 세상을, 칼라는 키치한 색감의 작품을 찍었다. 한국 전쟁 60주년인 2010년 국방부 의뢰로 자유 주제 작품을 맡았는데 그는 군인이나 풍경이 아닌 유품을 찍었다. 전쟁기념관의 유품을 보고 영혼을 찾아내고 싶어 그 소유자의 흔적을 쫓았다. 국방부 협조로 전시관에 있는 전쟁 유품들을 꺼내서 찍은 DMZ 작품이 담요, 수통, 반합, 안경 등이다.



한국의 상징을 고려청자에서 백자로 바꾸다


조선 시대의 아름다움을 알린 대표작 ‘백자’ 시리즈는 그의 사진 인생에 큰 명성을 안겨 줬다. 고려청자에 비해 백자는 조선의 수수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면서 뭔가 부족한 듯한 모습이 매력적이다. 구 동문은 그 매력을 담았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구 동문의 작품으로 백자가 주목받기 시작하며 지금은 한국 문화재의 대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구 동문이 유물에 담긴 영혼을 찍었기에 우리 유물이 해외에서 더욱 대접받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사소한 것에 관심이 많아서 빛나는 것보다 빛이 없는 것을 좋아한 그는 떨어진 돌, 사금파리, 작은 식물, 유물 등에 말을 건넸고, 마음이 갇힌 사람에게 사진으로 위로를 전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는 구 동문에 대해 “구본창은 사물을 프레임에 가두고 사물의 고백을 듣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구본창의 사물 사진을 보는 사람은 사물의 고백을 함께 듣는 사람이 된다.”고 썼다.


구 동문의 앞으로의 소망이 독특하다. 그의 소망은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작품이든 삶에서 모은 것들이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지길 원해요. 내 삶의 흔적을 깨끗이 치우고 떠나고 싶습니다. 마치 여행을 마치면 숙소를 정리하고 돌아가듯이 지구에서 체크아웃할 때 깨끗이 소진하고 가고 싶습니다.”


주류가 관심을 두지 않는 작은 것들을 조명하는 남다른 관점을 가진 사진가 구본창 동문. 그가 보여 주는 카메라 렌즈 속 세상은 어떤 이에게는 용기를, 어떤 이에게는 따스한 위로를 건네고 있다. 앞으로도 굽이치는 파도를 헤치고 새로운 세계를 개척할 그의 항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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