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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진심이 깃든 글을 짓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3-11-23

진심이 깃든 글을 짓다

전 세계를 무대로 브랜드의 목소리를 내는 박솔미 카피라이터(영어영문학 06)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의 힘을 일찍이 깨달았던 박솔미 동문(영어영문학 06). 그는 제일기획과 애플을 거쳐 현재 LG전자 글로벌 마케팅 센터의 헤드 카피라이터를 맡고 있다.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광범위한 제품군을 소개하기 위해 카피를 직접 쓰는 것은 물론이고, 각지의 마케팅 담당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에세이 <오후를 찾아요>, <오래 머금고 뱉는 말>, <글, 우리도 잘 쓸 수 있습니다>를 출간한 작가이기도 한 박 동문을 만나 연세와의 인연과 카피라이터로서의 삶,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연세에서 뿌린 글쓰기의 씨앗

유년 시절부터 글을 써야겠다는 꿈을 가졌던 박 동문은 작은 기회도 흘려보내지 않는 학생이었다. 백일장이 열리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참여했고, 교회에서 팸플릿을 만들 때도 자원했으며, 교내에서 행사가 열리면 나서서 포스터를 만들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일념 아래 세운 ‘카피라이터’라는 목표는 우리 대학교 진학으로 이어졌다. 


“열일곱 살부터 목표가 명확했어요. 재치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글을 쓰고 싶은데 ‘카피라이터’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카피라이터가 일하는 곳은 광고 회사였고요. 광고처럼 세련된 일에는 우리 대학교가 어울려 보여서 가고 싶었어요(웃음). 어린 시절의 철없는 계획이었지만 목표한 바를 이뤄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연세는 작은 씨앗들을 키워 나갈 수 있는 곳이었다. 대학 생활은 광고와 관련된 활동들로 더 즐겁고, 뜨거워졌다.


“1학년 때부터 중앙 광고 동아리에 바로 들어가서 공모전에 마구 지원했어요. 뽑힐 확률은 희박했지만요. 또 동아리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귄 덕에 나중에는 총학생회에 들어가 홍보국장으로도 일했어요.” 


당시 총학생회에서 기획했던 대통령 추모 콘서트는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참여한 큰 규모의 행사에서 홍보를 담당하면서, 글쓰기의 사회적 효용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교는 언제나 당대의 사회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앞장섰던 역사가 있고, 지금도 그런 사명감을 지닌 학교라고 생각해요. 저도 연세에서 한 사회의 일원인 학생으로서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내가 가진 특기인 글을 통해서 기여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 세계 소비자를 설득하는 카피라이터로


대학 졸업 이후 저명한 광고 회사 중 하나인 제일기획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한 박 동문은 일을 하면서 점점 더 카피라이터가 천직이라는 확신을 얻게 됐다고 고백한다.


“프로의 세계에 진입했지만, 신입 카피라이터 시절에는 아무래도 작업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당시 함께 일하던 유종희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님께서 언제나 제 글에 담긴 씨앗을 보시고 광고에 담아 주셨어요. 제가 쓴 글이 어떻게 실제로 광고가 되는지 지켜보면서 ‘내 글에 힘이 있구나’를 느꼈어요.”


제일기획 입사 전 TBWA코리아에서 인턴으로 일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진심이 짓는다’라는 카피를 내세운 획기적인 아파트 광고의 티저 영상에 그의 아이디어가 그대로 쓰인 것이다.


“당시 업계에서 최고라 불리셨던 박웅현 CD님께서 제가 정리한 캠페인 기획안을 보시고는 ‘천재 아니냐’며 엄청난 응원을 해 주시면서 광고에 써 주셨어요. 그때 글 쓰는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최초의 느낌이 맞았다는 걸 실감하게 됐죠.” 



날개를 단 글쓰기는 결혼 후 육아휴직으로 잠시 쉼표를 찍었지만, 이내 그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작가로 등록해 자신을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출판사의 제안으로 2017년, <오후를 찾아요>(빌리버튼)를 출간했다.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는 시대이지만, 아무나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출간 제안을 받고 ‘정말 신중하게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카피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의 글을 쓸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어요. 아주 유명한 책은 아니었지만, 출간 경험은 이후 애플로 이직하는 기회를 가져다줬습니다.”


첫 책의 출간으로 입증된 ‘작가’로서의 자질은 애플코리아로의 이직에 큰 힘이 됐다. 애플의 앱스토어를 매거진 형식의 재밌는 플랫폼으로 만드는 새로운 일을 맡았다. ‘투데이’라는 페이지에 매일 좋은 퀄리티의 앱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그는 전 세계 애플 동료들과 협업할 수 있었다. 


“동료들이 미국에도 있고, 유럽에도 있었어요. 서로 요즘 재미있는 기사는 없는지 묻고, 해 보고 싶은 기획들을 공유하면서 진행하는 일들이 정말 재밌더라고요. 내가 활동하는 무대가 커진 느낌이었어요. 제가 가진 걸로 신나게 일을 할 수 있게 서포트를 잘해 주는 회사였죠.”


가장 의미를 느낀 프로젝트는 부모로서 가진 경쟁력을 살려 기획했던 ‘슬기로운 아이패드 사용법’이라는 기사였다. 엄마의 입장에서 평소 했던 고민과 소비자들의 필요가 맞물려 탄생한 참신한 작업물은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저는 교육 앱을 주로 맡아서 소개했는데, 아이 엄마로서 ‘아무리 교육 앱이어도 스마트폰을 계속 보여 줘도 될까’하는 고민이 있었던 차였어요. 독자들도 분명 같은 생각을 할 것 같았죠. 그래서 최고의 교육 앱을 만드는 회사의 개발자들에게 직접 어떻게 하면 앱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을지 인터뷰를 진행해서 기사를 만들었어요. 동료들과 독자들에게 모두 반응이 좋아서 감사했습니다. 카피라이터로 일을 한 지 8~9년 차에 접어든 시점이었는데, 더 의미 있는 일에 욕심내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어요.”



올라운드 브랜딩 전문가를 꿈꾸다


애플 싱가포르 지사에서 시리(Siri) 데이터 애널리스트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온 박솔미 동문은 LG전자 글로벌 마케팅 센터의 헤드 카피라이터로서 브랜드의 목소리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헤드’라는 타이틀을 달았음에도 부단히 글쓰기를 훈련한다.


“지금 맡은 직책은 ’브랜드의 각 제품에 대한 매력을 살리되 동일한 목소리가 느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생겼어요. 원래는 지역마다 마케팅을 따로 진행하거든요. 소형 가전부터 디스플레이, 전기차 기술에 이르는 제품군을 잘 이해하고, 다양한 언어로 카피를 쓰는 마케팅 담당자들을 교육해야 하다 보니 매일 공부를 하고 있어요. 현지 원어민들에게 카피에 대한 피드백이나 지침을 주는 게 부끄럽지 않도록 저도 언제나 잘 쓸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계속 연습하죠.”


10년 이상 카피라이터로 활동해 온 박 동문은 에세이 출간에 도전했던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에 자신을 열어 놓고자 한다. 브랜딩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전문성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카피라이팅은 마케팅, 마케팅은 브랜딩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 있어요. 최근에는 LG전자라는 브랜드를 세상에 소개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브랜드북’을 제작했는데,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돼요. 에세이나 브랜드북을 만들었던 것처럼 앞으로 꼭 광고나 마케팅을 위한 카피가 아니더라도 영화, 박물관, 메타버스, 음악, 게임 등 글이 들어가는 모든 종류의 활동으로 제 일을 키워 보고 싶어요.”



매력적인 글의 비밀

직업으로서 날마다 글을 짓는 사람에게 ‘좋은 글’은 무엇일까. 언제나 간결하게 핵심을 전달하기 위해 고민해 온 카피라이터답게 그는 답했다.


“결국 ‘이해하기 쉬운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멋져 보이기 위해 힘을 준 글이더라도 읽는 사람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느낀다면 실패한 글이죠.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이거 정말 좋다’는 감상을 이끌어 내는 ‘매력’이 있으면 좋아요.”


매력 있는 글이 나오려면 그만큼 풍부한 인생의 경험이 필요할 터. 박솔미 동문은 사회 초년생 때부터 지금까지, 삶에서 터득한 인사이트들을 많이 쌓아 두는 편이다.


“처음에는 세상을 잘 모르니 다른 사람의 글을 정말 많이 봤죠. 제일기획에서 일할 때는 당시 부사장이셨던 최인아 선배님께서 매달 사보에 기고하시는 칼럼을 좋아했어요. ‘마음에 와닿으면서도 세련된 글은 이런 거구나’ 하며 필사를 열심히 했죠. 그렇게 하나하나 따라 써 보는 게 제게는 글을 쓰는 근육과 몸을 만드는 운동이었어요. 지금도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수시로 적어 놓습니다.”



“지금 주어진 작은 일을 힘껏 해 보세요.”


전문 카피라이터로서 단단히 구축한 박 동문의 커리어는 오늘의 작은 과업들을 소중히 여긴 결과다. 


“돌아보면 조그마한 일들도 마다하지 않고 신나게 했던 것 같아요. 포부를 크게 가지면 좋겠지만, 지금 해야 하는 소소한 글쓰기부터 열심히 하기를 추천해요. 지금은 전 세계에 나가는 광고의 카피를 쓰고 있지만 제가 썼던 최초의 글은 교내 백일장에서 썼던 글이니까요. 작고 작은 것들이 이어지면 꿈꾸지 않았던 만큼 커질 수도 있어요. 만약 제가 출간 제안을 받았을 때 ‘육아하느라 바빠서 책 못 써요.’라고 했다면 애플로의 이직 기회도 잡지 못했을 거예요.”


후배들의 대학 생활에 대한 조언 또한 일맥상통했다. 자주 보는 사람들, 자주 가는 공간에 주목해 보라는 것이다. 자신 또한 늘 동아리실과 총학생회실에서 친구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일을 도모했다고 했다. 먼 미래를 보기보다 이미 주어진 것들로부터 숨겨진 씨앗을 찾아보라는 박솔미 동문의 말에서, 일상의 모든 순간으로부터 영감을 차곡차곡 수집하는 이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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