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시선과 선택을 담은 지금 이 시대의 무대를 만들다
뮤지컬 <헤드윅>, <젠틀맨스가이드>, <그레이트 코멧>의 프로듀서 쇼노트 송한샘 부사장(중어중문학 93)
도전적, 그리고 웰메이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쇼노트의 작품들
2월 11일,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개최된 ‘제5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400석 미만)은 쇼노트가 제작한 뮤지컬 <리지>에게 돌아갔다. 쇼노트의 프로듀서 송한샘 부사장은 수상소감을 통해 “<리지>는 세상을 향해 통쾌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우리가 계속 이런 작품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사회가 미성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는 <리지>를 올리지 못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시기상조의 모험이 아니냐는 우려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공연계의 손꼽히는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뮤지컬 <헤드윅>, 최근 극장가를 힘있게 달군 <젠틀맨스가이드>, <제이미>, <알앤제이> 등 송 부사장과 쇼노트가 만들어온 뮤지컬과 연극들은 언제나 ‘웰메이드’라는 격찬과 함께 ‘도전적인 메시지’라는 수식어가 함께 했다. 이렇게 두 마리 토끼를 잡아온 내공과 함께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으로 또 하나의 거대한 도전을 준비 중인 송한샘 부사장(중어중문학 93)을 만나봤다.
노래패와 함께 보낸 연세의 캠퍼스, 자율과 혁신의 DNA를 새기다
“고3일 때가 1992년이었는데 그때 한중수교가 이뤄지면서 중국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죠. 언어를 좋아하기도 하고,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문학을 공부하면 향후 진로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세대를 택한 이유는요? 멋있잖아요, 가장 세련됐고. (웃음)”
그가 들려주는 대학 생활은 노래패 동아리와 가족 같던 중문과에 대한 기억이 주를 이뤘다.
“동아리 활동을 엄청 열심히 했습니다. ‘노래사위’라는 중문과 노래패, 또 문노련(문과대 노래패 연합)에서 민중가요를 불렀죠. 군 휴가를 일부러 노래패 행사에 맞춰 나올 정도였어요. ‘노래사위’와 함께 제가 곡을 쓰고 대동제의 진달래 노래제에 나가서 2년 연속 우승을 했어요. 총학생회 강당에서 역시 곡을 써서 음악극을 올리기도 했는데 그게 소문이 나서 타 대학 총학생회와 노래패분들까지 찾아와 관람하셨어요. 굉장히 즐거웠던 기억이죠.”
“저희 과에 중국어를 가르치시던 이강범 교수님과 김선자 교수님, 두 분 부부 교수님이 계셨는데, 실제로 부모님 혹은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처럼 저희를 가르치고 챙기셨어요. 캠퍼스 공터에서 족구를 하다가 수업을 놓치기도 했는데, 그럼 이 교수님께서 나와 잡아가기도 하셨죠. (웃음)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 특별한 기억이죠.”
그가 지금 가장 그리워하는 우리 대학교의 공간도 친구들과 함께 노래하던 캠퍼스의 구석구석이다.
“문과대에서 법대로 가는 골목에 사실 인적이 드문 언덕 같은 작은 숲이 있었어요. 거기가 저와 친구들의 아지트 같은, 거기서 술 마시고 취해서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나누고. 아직 남아 있을까요… 꼭 그곳뿐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통기타 하나 둘러매고 잔디밭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던 곳들이 기억납니다.”
공연업계에서 송 부사장은 과감하고 혁신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스타일의 프로듀서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우리 대학교의 학풍, 구성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규칙과 전통, 그리고 창의성과 혁신, 얽매이지 않는 자율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상존한다면 저는 상대적으로 후자 쪽에 가까운 듯한데, 그것이 아무래도 우리 대학교의 학풍과 관련된 것 같아요. 제 안에 일종의 DNA죠. 선배들, 교수님들도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는 강요하기보다는 설명하고, 밀어붙이기보다는 설득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자율이라는 가치를 중요시하고, 선후배 사이도 엄격한 규율보다는 친구 같은 편안함이 있었습니다. ‘연세’가 저에게 굉장히 많은 영향을 끼쳤죠.”
업으로서 공연예술과 만남, 그리고 <헤드윅>의 전설
졸업 후 그는 대기업 전자회사에 입사했지만 맞는 옷이 아니라는 느낌에 6개월 만에 퇴사, 오리온그룹 계열의 공연예술회사인 ‘제미로’에 입사하면서 다시 공연예술과 마주하게 된다. 음반 사업부로 재직하던 당시 전사적인 프로젝트였던 <오페라의 유령> 한국 초연에 지원 업무를 하게 돼 뮤지컬을 접하게 됐다. 이후 뮤지컬 사업부로 옮겨 <캣츠>, <미녀와 야수> 등 대작을 거쳤고, 회사가 뮤지컬 사업에서 철수하는 시점에 팀장 3명이 함께 쇼노트를 만들었다. 이때 잭팟을 터뜨린 작품이 바로 뮤지컬 <헤드윅>이었다.
“트랜스젠더라는 파격적인 소재의 <헤드윅>이 과연 대한민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업계 모두가 관심을 보였죠. 하나같이 하는 말은 ‘모 아니면 도’였습니다. 과연 이 작품의 진심과 가치가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는데,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매진행렬이 시작됐어요. 그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습니다. 전석매진에 표가 하나도 없어서 뮤지컬계의 대선배이신 남경주 배우께서 극장 뒤 에어컨 옆 구석에 서서 관람하시고, 나오시면서 너무 재미있게 봤다고 해주실 정도였습니다. 원작자인 존 카메론 미첼이 애정을 가지고 방한할 만큼, 한국의 <헤드윅>은 세계에서도 가장 성공한 프로덕션 중 하나로 꼽힙니다.”
하지만 <헤드윅>의 성공은 그에게 창작 뮤지컬에 대한 도전 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쇼노트를 시작하고, 창작에 대한 욕심이 커졌어요. 당시에는 창작 뮤지컬이라고 하면 무조건 망한다는 분위기라 다른 임원들은 시기상조라고 말렸는데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래서 ‘쇼팩’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기발한 자살여행>이라는 창작 뮤지컬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최선을 다해 만든 첫 창작 무대는 쓰디쓴 실패를 경험했다.
“작품 제목에 ‘자살’이 들어가니까 모든 홍보가 제한적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보고 한 사람이라도 슬픔과 절망에서 빠져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작품이었는데, 제목에 대한 반발이 심했어요. 참여하신 분들의 열정과 노력, 도움에도 큰 실패를 겪었고, 저한테 약간의 트라우마 겸 반면교사 겸… 이렇게 저를 단단하게 해주는 나이테로 남아 있어요. 그 작품이 정말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굳은살, 여전히 아프지만 저를 단단하게 한 굳은살이죠.”
큰 실패를 겪었지만 쇼팩에서도 그는 <이블데드>, <레인맨> 등 전형적이지 않은 신선한 작품들을 잇달아 올리면서 작품을 보는 안목과 감각, 탄탄한 프로듀서의 기본기를 인정받았고, <조로> 등 대형 뮤지컬의 흥행을 성공시키며 상업적으로도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젠틀맨스가이드>와 <알앤제이>, 그리고 <그레이트 코멧>의 도전
송한샘 프로듀서와 쇼노트는 지금 한창 뮤지컬 <젠틀맨스가이드>와 연극 <알앤제이>를 공연 중이고, 동시에 3월 20일 개막을 앞둔 대작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을 준비 중이다.
“사실은 작년에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공연 며칠 전에 취소가 됐죠.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스탭부터 연습하시는 모두 정말 뜨겁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없었던 형식이고 혁신적인 이머시브(관객몰입형) 콘텐츠가 코로나19 시대에 오히려 약점이 돼버렸지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관객분들도 극장에서 누구보다 안전하게 즐길 준비를 하고 오시겠죠. 이 작품이 또 성공하면 공연업계에 작품의 선택에 있어서 또 하나의 지평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쇼노트가 작품 선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다양성’이다.
“저희는 관객에게 다양한 선택을 제공해드리고 싶어요. 예를 들어 소위 세계 뮤지컬 'Big 4'로 꼽히는 <오페라의 유령>은 누가 거부하겠어요. 하지만 다른 스타일의 작품도 많거든요. 또 특히 소수자를 소수자로 바라보고 도우려고 하는 그런 게 아니라 ‘그들과 애초에 출발선이 같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 좋습니다. 장애라든지, 성적 지향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단순한 감동이나 흥미의 도구로 쓰지 않는 것이죠. 예전의 작품들은 그런 문법, 방법들을 많이 썼지만, 지금 시대는 달라요. 시대가 달라질수록 문화 콘텐츠의 주제의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작품상을 받은 <리지>는 전통적인 남성우월주의와 백인우월주의의 뒤통수를 때리는 작품이고 정말 통쾌하죠. 게다가 그 서사가 너무 맘에 드는 건 주제의식에 대한 교조적인 언급이 전혀 없어요. 주제의식이 충만하지만 ‘이건 이래야 해’ 하면서 입 밖으로 발화하지 않죠. 한마디로 관객을 가르치려 들지 않기 때문에 감동이 더 큽니다.”
매번 신선한 작품으로 무대에 질문을 던지는 송한샘 프로듀서. 프로듀서로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인문학이라고 봅니다. 프로듀서는 자기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계속 쇄신해야 하는데 결국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문학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요. 새로운 소재를 보는 눈도 길러지고 누군가가 어떠한 메시지를 나한테 보냈을 때 저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받아들일 수가 있잖아요. 제가 메시지를 발신할 때도 어렵게 발신하면 안 되겠죠. 그러려면 역시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로듀서로서의 또 하나 중요한 덕목은 오지랖이 아닐까요. 프로듀서는 기본적으로 소통을 해야 하는 사람이거든요. 어쩌다 보니 저도 이쪽저쪽 다양한 분야를 배웠어요. 음악도 공부하고, 가사나 희곡도 써보고, 무대나 음향 같은 테크닉과 메커니즘을 두루두루 얕게 배웠죠. 그래서 한 우물만 파온 스페셜리스트, 한 분야의 장인들을 존경하고 부러워할 때도 있지만, 프로듀서는 여기저기의 스페셜리스트들을 잘 연결하고 소통하는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해요. 그래서 좋은 제너럴리스트가 되자는 마음으로 계속 이것저것 공부하고 있습니다.”
2021년 졸업하는 후배들에게, 나와 동기들의 현시점을 비교하지 마세요
“지금 특히 졸업하는 동기들과의 비교에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지금은 너무 짧은 순간이에요. 누가 어떤 성과를 이뤘는지를 비교하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평균 수명이 얼마나 길어졌어요. 지금 1, 2년의 차이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내 분야를 찾고 내 분야의 자신감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길게 보면 당장의 토플 점수보다는 단단한 체력과 지구력이 레이스에서는 더 중요할 거예요. 자기 자신과 소통하고 내면을 다지면서 자신감을 키워갔으면 좋겠습니다.”
송한샘 부사장은 <그레이트 코멧>이라는 또 한 번 모험의 항해를 앞두고 있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암초가 눈앞에 있지만, 그는 작품과 작품을 만드는 팀워크에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눈부시게 변화하는 오늘, 지금 이 시대에 적합한 작품으로 관객과 소통해온 그의 진심과 열정이 또 한 번, 그 암초를 넘어 관객과 뜨거운 만남을 갖게 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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