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년, 놀이의 본질과 가치를 통한 ‘가족의 재발견’
김명순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장(아동가족학과 교수), 호모 루덴스의 이해
코로나19 현황이 연일 주요 뉴스에 올라 있다. 이맘때면 떠나던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이 됐고, 회사는 재택근무에, 교육 현장은 온라인 수업에 계속 적응 중이다. 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난 지금, 가족과의 일상에도 적응이 필요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 시대에 마스크를 벗고 만나는 가족 안에서의 행복과 정서적 안정에 관한 주제로 김명순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장(아동가족학과 교수)을 인터뷰했다.
코로나가 바꾼 일상, 가족의 관심과 이해
그동안 우리는 가족이 공유하는 시공간의 가치에 무지했고 무관심했다. 놀이와 대화보다는 직장, 학업의 성취와 성공에 매여 외부에서 정한 표준화된 방식을 좇으며 살았다. 코로나 1년은 그동안의 익숙한 방식을 깨트렸고 집밖의 비대면과 집안의 대면, 그 낯설고 서투른 지점에 우리를 세웠다. 김명순 교수에게 코로나를 기점으로 달라진 가족의 풍경에 대해 들어봤다.
“가족 안에서 이뤄져야 할 친밀감의 대부분을 외주로 해결해 왔어요. 내가 있는 공간과 시간을 가족과 공유하지 않고, 바깥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노력해 왔죠. 가족은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이고 그 단위가 단단해야 사회가 건강해진다고 얘기하면서도 관리와 지원의 기능 외에는 주요 기능들이 멈춰 있었어요. 나이와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관심사에 교감할 여유가 없다가 이제 가장 신뢰하며 대면해야 할 대상이 됐죠.”
코로나로 인해 ‘집콕 생활’이 대폭 늘어났지만, “이거 해라.”, “저거 달라.”는 대화 외에 소통이 없던 가족에게는 낯선 시간의 연속이기만 하다. 가장 편안하게 대면하는 대상이 마스크 없이 만나는 가족인데 말이다.
함께 시공간을 공유하는 즐거움을 찾아…
“우리가 가장 신뢰할 공간은 이제 집이 됐죠. 그동안 외부에서 정한 기준과 목표를 좇기 위한 ‘관리와 지원의 가족’에서 ‘놀이가 필요한 가족’이 됐어요. 놀이는 친숙하고 익숙한 관계에서 가능해요. 낯선 곳에서 찾고 도달해 가는 것은 놀이가 아닌 학습이에요.”
김 교수는 외부에서 학습하고 성공을 지향하며 살다가, 신뢰의 관계로 가족을 만나 새로운 일상을 보기 시작한 것이 코로나가 안겨준 가족의 변화라고 설명한다.
“각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기 시작했고 친숙함을 공유해야 하는 현실을 맞이했죠. 물론 시행착오도 있고 자연스럽지 않을 거예요. 학대와 폭력도 일어나지만 그런 부정적인 현상은 내재해 있던 문제예요.”
김 교수는 대학원생 제자의 예를 들어 가족과 공유하는 시간의 유익을 설명했다. 코로나로 남편과 아이와 함께 집에 머물면서 저녁에 사람들이 별로 없는 산책로를 찾아 걷기 시작했고, 새로운 일상의 반복을 즐기고 창조적 유익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의 이해와 친밀한 행복
친숙함을 나누는 중요한 공동체로서의 가족의 기능을 잊고 살다가 코로나로 함께하는 가치를 되찾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그것이 놀이로 나타나 즐거움으로 드러나면서 여러 유익을 안겨준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은 전쟁과 IMF를 겪으면서 뚜렷한 가치 없이 외부에서 정한 표준화, 대중, 대량이라는 개념에 따라 움직였어요. 경제 발전과 의무교육이 따랐지만, 여전히 2인칭 관점이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죠.”
2인칭 관점은 “너는 목표를 달성해야 해.”, “너는 이 기준에 맞춰야 해.” 하며 외부의 기준에 따라 나 자신을 맞추는 방식이다. 1인칭 관점의 균형을 생각해 볼 여유 없는 이러한 경쟁의 우위와 성공을 좇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가 맞물리면서 사람들이 ‘아이는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할까’ 하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우리 가족을 위한 맞춤형 일상에 대해 고민하며 유희를 즐기는 인간의 본질을 찾아간 거죠.”
김 교수는 코로나가 안겨준 긍정적 의미로 대중 속에서 표준화된 것이 아닌 개인의 특이성을 장려하는 방식으로의 빠른 전환을 들었다.
“가족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면서 삶의 새로운 패턴이 보이고, 그동안 성공, 성취, 표준화에 대한 사회적 압력에 시달리다가 놀이를 통한 유익과 친숙함을 누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놀이가 이뤄지려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해요. 시간, 공간 그리고 놀이의 중요성에 대한 신념이죠. 그런데 이 세 가지가 있어도 놀이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친숙함이 없기 때문이죠.”
놀이를 하려면 가족이 친밀해지는 과정이 필요하고, 놀이의 반복성이 있어야 유익이 따른다고 설명한다.
놀이가 주는 유익과 보상
“놀이의 가장 큰 유익은 사람이 스스로 찾고 만들어 내는 즐거움에 있어요. 그로 인해 자기 조절 능력과 상상력이 길러지죠. 놀이를 즐긴 인간이 꿈을 발견하면 열정이 따르고 창의적 방법으로 자신이 주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코로나 1년에 창의적 놀이를 통해 마음을 열어 친숙함을 얻은 가족이 꽤 늘어났어요.”
김 교수는 이러한 놀이는 자신이 원하는 즐거움의 반복이며, 누가 시켜서 하는 목적성의 과제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지루해지면 자기 에너지를 각성해 즐거움을 찾으려는 동력이 있다고 한다. 경쟁으로 얻는 방식이 아닌, 오감을 사용하는 놀이는 무목적성, 자발성이 들어가는 1인칭 관점이어야 한다. 누군가 관리해서 목적에 도달하는 방식은 놀이가 아니라 지루한 학습이다.
그러다 보면 두 가지 고민이 생긴다. 놀이를 하고 있으면 남들보다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들기도 하고, ‘경제적인 고통 때문에 놀이를 즐길 여유가 없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3차 산업혁명의 지식사회와 4차 산업혁명의 미래사회는 결코 동일하지 않아요. 지금 시대가 강요하는 성공의 세팅이 변화하고 있고 2050년은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하죠. ‘앞으로의 30년이 지금까지의 가치와 맞을까’ 하는 질문을 해야 하죠.”
우리는 ‘내가 무엇을 잘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를 찾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미래사회는 놀이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은 아이가 성공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MIT미디어랩의 미첼 레스닉 교수는 그의 책 《미첼 레스닉의 평생유치원》에서 놀이를 통한 창의성 개발로 4P 모델을 설명해요. 창의성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놀이(Play)’하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동료들(Peer)’과 협력해 ‘프로젝트(Project)’에 ‘열정(Passion)’을 가지고 빠져들도록 지원하는 활동이라고 하죠. 레스닉 교수는 ‘평생유치원’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어요. 앞으로 모든 세대는 일생을 유치원에서 놀듯이 놀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아동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한 놀이혁신위원회
김 교수는 보건복지부가 구성한 ‘놀이혁신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책 아젠다에 놀이가 처음 등장한 것이 2019년이에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우리나라에 전달한 권고문에서 학업성적에 대한 사회적 압력 때문에 아동의 놀이가 매우 부족한 점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지적했어요. ‘모든 아동이 놀이와 오락 활동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시설을 보장할 것’을 강조했죠.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 길들이며 관리해 기성 세계가 작동하는 시스템의 그물에 잡아두고 틀에 박힌 사유를 하게 만드는 교육압력에 대한 반성에서 놀이혁신위원회가 만들어졌죠.”
김 교수는 보건복지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놀이 정책 관련 부처가 참여한 위원회에서 지역사회와 학교의 놀이 문화 정착을 위한 활동을 병행하며 놀이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일조하고 있다. 작년 코로나 상황에서 서울, 전주 등 10개 지자체를 놀이 선도지역으로 선정해 아동의 기본 권리로서 놀이에 대한 인식 개선을 선도했다. <지역에 아동의 놀이권을 채우다>라는 유튜브 영상으로 콘퍼런스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외부 강연에서 ‘바빠서 놀아줄 시간이 없는데, 얼마나 놀아주면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오감을 활용한 자유로운 일상 놀이를 2년만 해보라고 대답해 드린다. 놀이는 쭉 뻗은 기찻길 같지 않고 눈 뭉치와 같다. 처음 뭉치기는 어렵지만 일단 눈 뭉치를 만들어 굴리면 많은 눈이 뭉쳐진다. 우리는 수업을 받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익숙하지만, 놀이는 즐거움에 빠져들게 하고 계속 자발적으로 경험하고 싶게 이끈다. 그래서 김 교수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놀이할 권리 확산에 대한 사명을 가지고 어른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열정과 사명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의 역사
“우리 대학교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이 설립된 지 46년이 흘렀어요. 1975년 그 시절부터 이미 놀이가 인간의 삶에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세운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은 경쟁만으로 치닫던 우리사회와 가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중학교 진학부터 치열한 시험이 있던 시절에 놀이에 대한 가치를 추구한 거죠. 여기 온 아이들은 놀이 시간을 채우고 가요. 선생님이 집단 교육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시간이 거의 없고,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자기선택과 주도성, 호기심을 기르는 커리큘럼으로 운영돼요.”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장인 김 교수는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놀이 교육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45년 동안 졸업생이 2,500명에 달한다. 이곳에서 놀이의 유익을 경험하고 자란 아이들은 어디를 가든지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하며 살고 있다는 감사 인사를 듣고 있다. 놀이의 가치를 경험한 그들이 놀이의 기회를 확산하며 함께 사회를 바꿔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끝으로 아동의 놀이권 전도사인 김 교수가 추구하는 슬로건이 있는지 물었다.
“사람과 자연은 상품화하지 말라는 말을 좋아해요. 저는 여기에 놀이도 상품화하지 말라고 덧붙이고 싶어요. 놀이는 놀이재료를 많이 가지고, 잘 준비된 환경에서 멋져보이는 놀이 주제가 있어야 잘 이뤄지는 게 아니고 내 자신의 즐거움과 자발적 선택, 규칙과 목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참여만으로 수준높은 놀이 확대가 가능하죠. 놀이를 더 많이 할수록 인간은 상상력이 높아지고, 타인 조망이 잘 되고, 회복탄력성이 높아져요. 그리고 신체 활동이 늘어나 건강해지고, 친사회성도 높아지죠. 이 다섯 가지를 충족한 사람이 미래사회를 주도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리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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