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ia]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의 임팩트 그리고 성공 조건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2-05-24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의 임팩트 그리고 성공 조건

생활디자인학과 백준상 교수



이 글은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이 지난 30년 동안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소개하고, 우리가 사회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전통적 디자인의 그것과 달라야 함을 이야기한다. 사회문제해결디자인에서는 장기적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고, 디자인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정책과의 강한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의 진화

디자인은 산업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환경문제 - 예컨대 노동자의 인권 문제, 생산과 소비의 분리로 인한 빈부 격차,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 - 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 비평가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은 디자이너를 ‘지구를 망치는 유해한 직업’이라고까지 말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난 30년 동안 디자인 분야에서는 사회문제의 해결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접근이 있었다. 


가장 먼저 등장한 접근은 ‘그린디자인(green design)’이다.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한 그린디자인의 목표는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환경문제를 줄이는 데 있었다. 유해 물질이 덜 들어간 색연필, 폐기물이 덜 나오게 디자인한 신발 등이 그린디자인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어서 등장한 ‘에코디자인(ecodesign)’은 그린디자인이 간과하고 있던 제품의 유통, 소비, 폐기 등 제품 수명 주기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문제를 다룬다. 예컨대 친환경 의류 브랜드로 잘 알려진 ‘파타고니아’는 친환경 소재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의류의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캠페인, 의류의 재사용과 재활용을 통해 기업의 환경 발자국을 줄이고 있다. 


‘지속가능한 제품·서비스 시스템디자인(sustainable product service systems design)’은 폐기된 제품을 재생 및 재활용하고 제품을 소유하기보다 공유하는 방식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선형경제에서 지속가능한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모색한다. 


2000년대 중반에는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social innovation)’이 등장하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긍정적인 임팩트를 강조한다. 여기에서 디자인의 역할은 사회혁신을 보다 가시적이고 매력적이며 확산되고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시스템디자인(systems design), 트랜지션디자인(transition design)이 등장하며 우리 사회가 당면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시스템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한다. 


그린디자인부터 시스템디자인까지 다양한 접근들이 진화해 온 방향을 살펴보면 디자인 객체가 단품에서 시스템으로, 디자인의 중심이 기술에서 사람으로 이동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Ceschin & Gaziliusoy, 2016). 또한 디자인이 다루는 문제가 점점 더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처럼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이 단품을 디자인하는 전통적인 디자인 분야와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특히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을 평가하고 실행하는 측면에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의 임팩트

얼마 전 KDI 정책대학원에서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의 임팩트를 어떻게 평가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지금까지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고 또 보면서 임팩트를 평가하는 사례를 본 기억이 없다. 


디자인 성과를 아웃풋(outcome), 아웃컴(outcome), 임팩트(impact)로 나누어 볼 때 아웃풋은 디자인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이너가 전달하는 결과물이고(예. 새로운 제품/서비스 디자인), 아웃컴은 디자인이 목표로 하는 단기적 성과(예. 사용자 만족도, 사용성 개선)이며, 임팩트는 디자인을 통해 발생하는 장기적 성과(예. 범죄율 감소, 행복지수 증가)이다. 


디자인 프로젝트는 아웃풋이나 아웃컴을 보여주고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디자인의 임팩트를 보여주기 어려운 이유는 임팩트를 측정하는 것이 어려운 것도 있다. 임팩트는 디자인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요인(예. 실행하는 주체의 의지/역량/자원, 관련 정책 및 제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교한 실험 설계가 필요하다. 또 다른 이유는 디자이너에게 임팩트를 측정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 디자인 프로젝트는 디자인 임팩트를 확인하기 전에 끝나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임팩트를 확인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과거에 디자인 객체가 비교적 단순하던(예. 단품) 시기에는 디자인의 아웃풋이나 아웃컴만 가지고도 디자인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매력적이고 사용하기 쉬운 제품은 시장에서 잘 팔리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디자인 객체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예. 복잡한 서비스와 시스템) 아웃풋과 아웃컴만으로 디자인의 효과를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 사용자에 의해 디자인의 완성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느 지자체에서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동네에 범죄예방 디자인을 도입했다고 가정해 보자. 알록달록 밝은 색으로 바뀐 담장, 후미진 골목에 설치된 조명, 동네 여기저기 부착된(디자이너의 손길이 들어간) 경고문과 안내 표시, 폐가에서 변신한 주민들의 쉼터, 학생들이 공연할 수 있는 무대 등 디자인의 아웃풋은 매우 인상적이다. 주민과 지자체 등 관계자들도 만족하고, 골목에 자주 나타나던 불건전한 사람들도 줄어들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범죄 발생률이 감소하고 더 나아가 안전하고 살기 좋은 커뮤니티가 되려면 이해관계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자원의 투입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지속적인 실행 의지와 노력이 없으면 일회용 결과물로 끝나게 된다. 디자인의 임팩트가 제대로 평가되려면, 디자인 고객이 임팩트 있는 디자인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디자인 요구서 안에 임팩트 측정이 포함돼야 한다.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의 성공 조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이 임팩트를 가지기 위해서는 디자인을 성공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디자인만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니고 디자인이 실행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역으로 얘기하면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에서는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은 꽃을 피우지 못한다. 디자인을 위한 환경은 정책, 제도, 문화, 시민의식, 가치관, 역사, 인프라를 포함한다. 


여기서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디자이너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다양한 접근을 시도해 왔다.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가 당면한 긴급하고 심각한 문제들(예. 기후 위기, 생태계의 다양성 파괴, 대기 오염)은 여전히 존재하고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감히 주장하건대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이 더딘 이유는 디자인 아이디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디자인 아이디어들이 실행되고 확산되지 않기 때문이며, 이들이 실행되고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덴마크디자인센터(Danish Design Centre)의 CEO 크리스찬 베이슨(Christian Bason)은 공공서비스가 잘 안 돌아간다면 관련 정책을 들여다보라고 말한 바 있다.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지원이 필수인 것처럼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베이슨은 정책을 위해서 디자이너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네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디자이너는 정책 입안자와는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재정의하고 해결의 기회를 찾는다. 둘째, 디자이너는 사람들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셋째, 디자이너는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개발 과정에서의 위험요인을 줄이고 실행 가능한 해결책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디자이너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함으로써 정책과 관련된 어려운 담론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낸다(Bason, 2020). 


이처럼 디자인과 정책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지만 서로의 필요에 대한 공감대가 크지 않은 것 같다.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책과 디자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즉 정책을 위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사회적 차원의 학습 과정이고(Manzini, 2014), 사회적 차원의 학습은 매우 느린 과정이다. 불행히도 우리가 당면한 어려운 문제를 푸는 데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정책을 위한 디자인은 그 학습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Ceschin, F. and Gaziulusoy, I., 2016. Evolution of design for sustainability: From product design to design for system innovations and transitions. Design studies, 47, pp.118-163. 

Bason, C. Ed., 2020. Design for policy. Routledge.

Manzini, E., 2014. Making things happen: Social innovation and design. Design issues, 30(1), pp.5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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