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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찬 IFC 아시아태평양지역 인프라·자원개발 담당 국장

토목공학과 87학번

무한궤도 드러머 공대생에서 국제금융리더가 되기까지

한국인 첫 IFC 고위직 오른 조현찬 동문 

무한궤도 드러머 공대생에서 국제금융리더가 되기까지

조현찬 IFC 아시아태평양지역 인프라·자원개발 담당 국장



한국인 최초로 세계은행 그룹 국제금융공사(International Finance Corporation, IFC) 고위직에 오른 '여기연세인'이 있다. 지난 9월 17일 세계은행그룹은 조현찬 동문(토목공학, 87)을 IFC 아시아태평양지역 인프라·자원개발 담당 국장으로 승진 임명했다. 


IFC는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가의 민간 기업 혹은 사업에 자금을 투자하는 국제금융기구다. 이 가운데 아태지역 인프라·자원개발 담당 국장은 아태지역 15개 지역사무소를 이끌며 투자 결정 및 포트폴리오 관리 등 인프라·자원개발 관련 투자 및 자문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IFC 고위직에 한국인이 이름을 올린 것은 조현찬 동문이 최초다. 지난 10월 26일, 경영대학에서 주최한 리더십 특강에 강연차 우리 대학교에 방문한 조 동문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88 대학가요제를 누빈 드러머


그의 커리어를 논하기 전 무엇보다 대학시절 ‘무한궤도’ 멤버로 활동한 그의 특별한 이력이 먼저 주목을 끌었다. 1987년 토목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가수 고 신해철 씨와 함께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해 1988년 제12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대상을 거머쥔 바 있다. 당시 드러머로 무대에 오른 그는 “당시 해철이를 비롯해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 연습을 하고 대학가요제까지 나가게 된 것”면서 “우리가 모두 음악을 사랑하고 열심히 연습했지만, 대상을 받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이후 그는 정석원‧장호일 씨와 함께 공일오비(015B)를 결성해 1집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전공을 살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었다. 


“순수하게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대학가요제도 딱히 가수가 되기 위해 나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점에서 제가 전공한 분야에서 일하고 배워보고 싶은 호기심이 있었죠.”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자산이 된 까닭


졸업 후 그는 전공을 살려 쌍용건설에서 첫 커리어를 쌓았다. 충청남도 보령에서 수력발전 댐을 만드는 일을 2년 정도 했다는 그는 “당시에는 무척 고생스럽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 현장에서 일하면서 공사를 위한 자금이 어디서 나오고, 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지을 수 있는지 학문적 호기심을 많이 갖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네팔에서 가장 큰 수력발전소를 만들고 있어요. 예전에 했던 경험이 지금 많이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엔지니어였고 지금은 투자자문에 가깝지만 과거 경험 덕분에 그 지역주민의 애로사항이라든지,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현장에서의 경험은 토목공학이라는 학문적 탐구로 이어졌다. 건설회사를 떠난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와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각각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던 중 아시아개발은행(ADB) 출신인 동경대 지도교수의 권유로 1999년 IFC에 입사한 이래 IFC 최고경영자특별보좌관, IFC 중국‧몽골‧한국 수석대표, IFC 아태지역 인프라·자원개발 담당 본부장 등을 지냈다. 


“그 동안 중국, 인도, 파키스탄, 조지아, 터키 등 수많은 국가들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인프라 구축에서부터 석유화학 단지 개발, 오일 시추 파이프 라인 건설 등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무궁무진했죠. 현재는 아시아태평양지역 인프라‧자원개발 국장으로서 중국과 인도를 비롯해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등 더욱 낙후된 나라들의 민간 인프라 개발 사업 투자를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제기구에 더 많은 한국인 진출해야”


조 동문은 “국제기구가 전 세계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IFC를 비롯한 다양한 국제기구 고위직에 한국인들이 보다 많이 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등 한국인이 국제기구의 수장에 오르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저 또한 IFC 내 고위직에 오름으로써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국제기구 리더가 되었다고 해서 한국을 위해서만 일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위상을 높이고 전 세계가 한국의 문제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로 인해 한국 정부와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고요.”


그는 “대다수의 개발도상국들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길을 걸으며 성장하고 있다.”면서 “더 많은 후배들이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국제기구에 많이 진출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꿈


영향력 있는 국제금융기구에서 한국인 최초로 고위경영진의 위치에 오르는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조현찬 동문은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훨씬 많다고 말한다. “누구든 나이에 상관없이 꿈을 가져야 한다”는 조 동문은 다양한 방향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는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식견을 최대한 살려, 교육자로서 후학을 양성하거나 민간 분야에 진출하여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공헌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3년 전부터는 IFC 내 직원들과 함께 밴드를 꾸리면서 다시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그는 “대학가요제 이후 다른 길을 걷게 됐지만 해철이가 고인이 되기 전 종종 만나곤 했다.”며 “50대가 되면 같이 공연이라도 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많이 아쉽다.”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삶에 있어 “열정과 헌신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며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열정과 헌신을 버리지 않고 꿈을 향해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고 전했다.


“IFC에서 일하며 정말 낙후된 지역들을 많이 가보게 됐습니다. 전력도 없고 마실 물도 없는 나라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아요.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저도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 후배들도 살아가면서 힘든 점이 많겠지만, 희망을 갖고 꿈을 향해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