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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개

연설문

제17대 총장 취임사 2012.02.07

‘제3의 창학’을 위한 도전
 
  존경하는 방우영 이사장님과 이사님, 역대 총장님! 친애하는 연세가족 여러분, 그리고 내외귀빈 여러분!
 
  저는 오늘 127년 전 이 땅에 근대 고등교육을 최초로 도입한 자랑스러운 연세대학교의 제17대 총장으로서, 제게 주어진 책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서약하고자 한없이 겸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연세의 신임 총장으로서, 연세를 지으신 하나님과 연세를 위해 헌신하신 여러분 앞에 서게 되니, 영광에 앞서 무한한 책임과 사명감을 느낍니다.
 
  저는 그동안 총장직을 준비하면서 오래 전 연희학원을 여는 데 젊음을 불살랐던 Underwood 선교사를 줄곧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고집스럽고, 얼룩진 어둠뿐인” 조선에서 연희동산을 일군 그의 심정과 다짐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그렇게 시작한 연세의 역사를 어떻게 읽고, 또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하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을 여전히 안고 오늘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저와 연세의 첫 인연은 41년 전인 1971년 경제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백양로를 오르내리며 꿈을 키웠던 평범한 한 학생이 1986년부터는 모교의 교수로 부임하여, 제자들에게 꿈을 가르치는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교수로서 지난 26년을 돌이켜보면, 저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연세 구성원들이 제게 보여 주신 신뢰와 열정, 그리고 따뜻한 배려 덕분에 교무처장과 원주 부총장 등의 중책을 원만히 수행할 수 있었고, 나아가 그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오늘 여러분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 연세는 창학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근대사와 함께해 온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이 땅에 진리와 자유의 기독교 정신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발전을 선도하는 사명을 다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대내외 여건의 급속한 변화와 함께 고등교육의 환경도 크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구조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가운데 대학경쟁의 세계화와 학문의 융합화도 날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구조적 변화 속에서 우리 연세의 명성과 위상도 크게 위협받고 있어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고등교육의 패러다임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등록금과 입학제도 등에 대한 정치 사회적인 논란이 지속적으로 야기됨으로써 사학의 자율성과 정체성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대학 교육의 수월성과 글로벌 경쟁력은 물론 사학 육성의 정당성 자체가 시험대에 올라 성찰의 대상이 된 상황입니다.
 
  이러한 변화와 도전 속에서 연세는 지금 ‘제3의 창학’이라는 새로운 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제중원과 세브란스, 그리고 연희전문이 이 땅에 처음으로 고등교육의 터를 마련했던 근대 초기를 연세의 ‘제1 창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연희와 세브란스 의전이 연세대학교로 통합되고, 원주 캠퍼스를 설립하는 가운데 이어진 창립 100주년의 역사, 한국 사회의 근대화와 민주화를 주도했던 20세기 후반기를 연세의 ‘제2 창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의 개교와 더불어 글로벌 연세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제3의 창학’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전임 총장님과 재단 이사님들, 그리고 연세의 구성원 모두가 심혈을 기울인 인천 국제캠퍼스의 개교는 단순히 공간의 확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갯벌을 메운 천지개벽의 터전 위에, 디지털 문명을 창조적으로 수용하고, 글로벌 시대에 선도적으로 대응하여, 연세를 아시아의 세계대학(Asia's World University)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역사적인 도약의 과정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어두운 조선 땅에 빛을 비추기 위해 첫발을 내디뎠던 바로 그 인천에서, 연세가 다시 ‘제3의 창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연세가 언더우드의 정신을 찾아서 기본으로 돌아가는(Back to the Basics) 과정의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연세가족 여러분, 
  저는 자랑스러운 연세의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대학의 기본 사명인 교육을 강화하고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여, 교육 명문으로서의 연세의 세계적 위상을 재정립하겠습니다. 특히 인천 국제캠퍼스에 하버드, 예일, 옥스퍼드 등 세계 명문대학이 학부 교육에 도입하고 있는 Residential College(RC)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생활공간과 교육의 장을 한데 결합하는 RC는 다양한 성장 배경과 문화적 차이를 지닌 학생들이 공동체 생활을 통해, 서로의 같음과 다름을 이해하고,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을 체득하여 글로벌 인재로서의 리더십을 배우는 교육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고, 사회통합을 이끌며, 세상을 섬기는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대학의 모습입니다. 연세는 어두운 곳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은은하지만 강렬한 빛의 힘으로 세상을 밝힐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해야 합니다. RC는 바로 지성과 덕성, 영성이 조화된 전인교육의 시스템으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양성의 핵심장소가 될 것입니다. 동시에 RC 시스템은 연세가 한국 대학에 선도적으로 제시하는 또 하나의 선진 명문형 교육 모델이 될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성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가 덕성이며, 그 덕성은 곧 ‘탁월함을 추구하는 능력’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도덕성이 뒷받침되는 지성적 탁월성(academic excellence)”이 윤리학에서 추구하는 덕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시대에 한국 사회가 연세에 요구하는 시대적 사명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부응하는 지성인을 배출하는 교육의 소명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를 위해 연세가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는 라틴어로 “엑셀렌티아 쿰 디그니타테(Excellentia cum dignitate)”, 곧 “위엄을 갖춘 탁월함의 추구”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학문과 교육의 ‘탁월성(excellentia)’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대학의 ‘위엄(dignitate)’을 지키는 자세 또한 중요합니다.
 
  물질과 자본의 영향력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연세는 아카데미아로서 순수한 이성과 철학, 그리고 역사적 안목을 간직하면서 대학 본연의 위엄과 자긍심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구성원 모두가 대학의 위엄과 수월성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으며, 학교 발전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시너지도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양극화가 심화되고, 이념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혼돈의 시대에, 연세가 리더십을 발휘하여 우리 사회에 새로운 담론을 제공하고, 미래를 제시하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연세의 새로운 역사는 결코 교육의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학 내 연구 생태계를 활성화시키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연구 역량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이며, 연구 성과의 산업화를 활성화하는 제도를 구축할 것입니다. 대학시설의 획기적인 개선과 혁신을 통해 교육, 연구, 문화 공간을 환경 친화적이고 미래 지향적으로 재창조할 것입니다. 행정 체제의 혁신과 전문화는 물론, 미래 지향적인 재정 전략을 수립하고 연세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하여, 활력이 넘치는 대학문화가 피어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연세는 또한 국내에서 유일하게 4개의 캠퍼스를 운용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촌과 의료원, 원주, 국제 캠퍼스 등 모든 연세의 지체가 자율과 융합을 기반으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운영 시스템을 정착시켜야만 합니다. 이를 통해 멀티 캠퍼스의 운용에서도 한국 고등교육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21세기 한국 사회의 선진화를 주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세인 여러분, 
  55년 전(1957년) 연희전문과 세브란스가 합쳐 연세(延世)가 되었을 때, 연. 세. 그 두 글자의 의미는 곧 우리가 바깥 세계(世)를 향해 뻗어나가겠다(延)는 각오의 다짐이었습니다. 오늘 저희가 꿈꾸는 ‘제3의 창학’은 연세가 이제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도약하겠다는 또 하나의 다짐입니다.
 
  저는 연세 구성원들의 뛰어난 역량과 잠재력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그 원심력의 가능성을 믿고 있으며, 또한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는 비상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확신합니다. 그러나 세계를 향해 높이 뻗어나가고자 하는 열망의 강도만큼,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에 대한 내부의 결집력도 함께 강화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번에 총장 선출과정을 거치면서 연세의 변화와 도약을 기대하는 구성원들의 열망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열망에 부응하여 저는 초심을 잃지 않고, 여러분과 함께 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학의 발전을 이룩하고, 우리 사회에 빛과 소금의 소명을 다하는 연세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실제로 ‘빛과 소금’은 연세의 학교 색깔인 푸른 바다색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바다는 모든 빛깔의 물을 받아들이면서도 또한 뚜렷한 자기 색을 갖고 있으며, 생명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인 소금을 품고 있습니다. 거기에 바다의 본질이 있습니다. 특히 심연으로 갈수록 바다는 모든 생명들을 머금은 채 자기만의 오롯한 색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연세는 하나의 거대한 바다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분명한 사명을 인지하고 있는 진리의 오롯한 보금자리이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연세가족 여러분, 
  끝으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지고 가야 할 총장이라는 책임의 무거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자는 것입니다. 물론 저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연세에 맡겨진 하늘의 사명이 너무나 크고 귀하며,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위엄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연세의 중흥을 이끄셨던 백낙준 총장님께서는 “사람은 왔다가 가지만, 연세의 정신은 영원하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고등교육의 선도자로서의 연세 정신을 이어 받아, 연세의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벅찬 감동을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 섬김의 정신과 자유롭고 창의적인 캠퍼스 문화를 정착시켜, 사랑과 열정이 넘치는 세계적 명문, 연세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이 꿈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있는 이곳은,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는 곳, 바로 연세대학교이기 때문입니다.(Yonsei, where we make history!)
 
  지금부터 저와 여러분이 함께 가는 길이 곧 새로운 연세의 역사, 대한민국의 역사, 그리고 세계의 역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127년 전 하나님의 뜻으로, 한 선각자의 꿈과 헌신을 통해 시작된 연세, 이제 우리 모두의 열정과 힘을 모아 다시 한 번 연세의 새로운 역사를 준비합시다. 여러분의 가정과 하시는 일에 하나님의 보살핌과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2월 7일
 
연세대학교 제17대 총장    정 갑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