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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서정민 신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5-10-31

언더우드의 비전 '섬김의 리더십'이 연세가 나아가야 할 길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 중심에 서는 연세 올해는 우리대학교가 창립 12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이다. 우리대학교는 지난 120년간 한국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서 발전해 왔다. 이러한 발전의 힘은 구한말 혼란스러웠던 시기 이 땅에 발을 디딘 언더우드 선교사의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는 연세정신에 있다. 이러한 연세정신을 듣기 위하여 신과대학의 서정민 교수를 찾았다. 서정민 교수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은 후 두 다리가 마비되어 2급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당시의 싸늘한 편견을 극복하고 우리대학교 신과대학을 졸업 후 일본의 도시샤(同志社) 대학에서 유학했다. 서 교수는 한국의 기독교, 종교에 대한 연구를 비롯, 우리대학교의 모체인 연희전문을 설립한 언더우드 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언더우드가(家) 기념관의 운영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언더우드가(家) 연구자인 서정민 교수로부터 세계 속에 자랑스러운 연세로 발돋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섬김의 리더십과 연세정신에 대해 들어본다. * 요즘 근황은 어떠십니까? 교수의 본분인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한 언더우드가(家)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언더우드가가 우리대학교의 모체인 연희전문을 설립하고 육성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언더우드 선교사가 연세의 정신을 구축하기 위하여 얼마나 특별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 전공분야가 한국의 기독교 역사, 한국의 종교사이다 보니 언더우드가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되어 언더우드 선교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 언더우드가 연구자로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업적을 평가하신다면? 언더우드가 가진 원대한 꿈은 크게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한국인들에게 세계적 수준의 고등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꿈입니다. 이 꿈의 규모나 비전은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Global Standard, '세계 속에 자랑스러운 연세', 세계 100대 대학 진입 등과 일맥상통합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연희전문 설립을 구상했던 당시의 서양문화를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매우 낙후된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세계적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든지 세계 문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고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만으로도 언더우드라는 작은 체구의 서양인이 얼마나 원대한 꿈을 가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꿈은 연세공동체가 항상 유념하고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대개 우리대학교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으므로 서양문화를 한국에 이식하여 서양 근대문명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언더우드 선교사는 한국인들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잘 알고, 스스로 발전시킬 수 있는 그런 교육을 원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언더우드 선교사가 가장 귀중하게 여긴 것이 한국의 문화였고, 그 중에서도 한글이었습니다. 그 예로 그의 초기 저서로서 한어문법, 조선어문법을 꼽을 수 있고, 한영사전을 가장 먼저 편찬한 것도 언더우드 선교사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연세 안에서 한국의 역사와 가치, 문화적 정체감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대학교는 아직 언더우드 선교사의 원대한 꿈을 실현하고 있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속에 자랑스러운 연세(Yonsei Standing Proud)"가 바로 언더우드 선교사의 이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연세는 세계화되어야 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꽃피워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언더우드 선교사의 정신, 사상, 신앙을 구현하는 길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발전시킬 학문적, 교육적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 우리대학교가 이러한 언더우드 정신을 이어받아 걸어온 길을 평가하신다면? 우리대학교는 항상 한국사회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구한말, 일제 강점기, 6.25 등 격변의 역사를 함께하며 연세도 역경과 고난의 길을 헤쳐왔습니다. 상징적인 예로 지금 서 있는 언더우드 동상이 세 번째라는 것입니다. 언더우드 동상은 일제에 의해 또 6.25 당시 인민군에 의해 두 번이나 철거된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힘든 길을 함께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연세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한국 중심의 이념을 이어받아 우리대학교는 1910년부터 계속해서 한국학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외솔 최현배, 한결 김윤경, 위당 정인보, 용재 백낙준 등 한국학 그 자체이신 분들이 우리대학교의 큰 자산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서양문화를 무조건 이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화를 바탕으로 하고자 했으며, 이를 2대 언더우드인 원한경 박사가 계승함으로써 우리대학교는 한국학의 메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한국학의 전통을 세계적인 학문의 수준으로 이끌어 가야합니다. * 장애를 극복하고 지금의 위치에 서기까지 많은 산을 넘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학창시절은 어떠하셨는지요? 제 학번은 7655031입니다. 당시 신학과 정원이 30명이었으니 31로 끝나는 제 학번은 정원 외 입학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976년 입학 시험 당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신체검사에서 고배를 마셨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제가 선택한 방법은 함께 떨어진 12명의 학우와 함께 단식투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지요. 그 때 "기어서라도 공부할 테니 입학만 시켜달라"고 말했고, 결국 정원 외 입학을 허용해 주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입학통지서를 받은 날이 바로 입학식 하루 전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입학한 후 동기들이 저의 다리가 되어 준 덕택에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양어깨를 부축해 주고, 때로는 업어 주어서 강의실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그 예가 종합관 6층에서의 수업입니다. 연세인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종합관은 매우 경사가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건물 내의 계단 역시 매우 높습니다. 거기서 굴러 떨어지고 넘어져서 생긴 영광의 상처가 아직도 흉터로 남아있습니다. * 우리대학교의 장애인 복지수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 장애 학생들이 해외에 나가서 공부할 때 느끼는 자괴감은 대단합니다. 저의 경우도 일본의 도시샤 대학에 입학 당시 학교측에서 주로 사용할 건물입구에 경사로를 새로 설치해 주었습니다. 그 건물은 계단의 경사도 낮고 수도 적어서 경사로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이야기했을 때, 장애의 정도에 상관없이 학교에서 해야 할 도리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우리대학교는 국내 최고의 수준이지만 아직 형식적인 면이 많아 아쉽습니다. 우리대학교의 모든 건물입구에는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높은 계단으로 막혀 움직이기 불편합니다. 이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진심으로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신축한 신학관의 경우, 진정으로 장애인을 배려하는 건물로 완공하였습니다. 신학관을 시작으로 우리대학교 건물 전체가 점점 바뀔 것이라 믿습니다. 장애인을 존중하고 함께 가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세계 일류대학으로 가는 마지막 평가기준입니다. 물론 지금도 국내 최고의 수준이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수준을 이뤄야 합니다. 이는 제가 나설 일이 아니라 일반 교수님들과 모든 연세구성원들의 몫입니다. 현재 우리대학교의 장애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훌륭합니다. 이제 행동으로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 교수로 재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말씀해 주신다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장애인에 대한 우리 학생들의 따뜻하고 열린 마음에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대대로 가보로 간직할 선물을 학생들로부터 받은 적이 있습니다. 2003년 공과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기독교의 이해'를 강의할 때였습니다. 제가 지나는 말로 "눈이 오면 미끄러져서 잘 넘어진다"고 하자 몇몇 학생들이 한 달 넘게 연구해서 개발한 선물을 저에게 주더군요. 그 선물은 목발 끝 부분에 등산용 아이젠처럼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탈부착이 가능한 팁을 설치한 미끄럼 방지용 고무 클러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앞으로는 눈길에서 넘어지지 않으시는 것이 소원입니다"라는 카드와 함께 선물은 받는 순간 눈물이 날 만큼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개발하기 위해 수백 개의 고무 클러치를 사서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습니까? 그 선물은 학생들이 몇 날 몇 밤을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대학교의 미래는 밝습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마인드를 가진 연세인들이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장애 학우들에게는 불만만을 표현하지 말고 상호 이해적인 자세를 가지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 투쟁이 아닌 실현 가능한 것부터 의논하는 완충기간이 필요합니다. 또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장애를 가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따뜻하고 편안합니다. 여기서 머물지 않고 이런 연세정신을 교문 밖에서도 빛내 주시길 바랍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봉사적 정신을 이어받아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고 소외가 있는 곳에 함께하길 바랍니다. 지금도 오지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연세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대학교의 힘입니다. - 인터뷰 정리 : 황혜현(경영학 석사과정 3학기)

 

vol.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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