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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기관 탐방] 창간 70주년 맞은 우리나라 대학신문의 효시 「연세춘추」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5-09-15

국내 최초 한글 가로쓰기 신문 「연세춘추」의 시작은 1935년 9월 1일 창간된 「연전(延專)타임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배대판 신문형 8쪽으로 창간된 연전타임스는 연세학원에서 간행한 최초의 대학신문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사회에서 가장 먼저 간행된 대학신문의 효시이다. 일제의 가혹한 식민정책 이겨 내고 자주의 횃불 밝혀 1935년은 일제가 우리문화를 말살하려는 폭압이 절정에 달했던 때이다. 이러한 식민지 정책의 강압 속에서 자주의식을 갖고 대학신문을 창간한 것은 연세인의 용기와 시대적 사명을 입증하는 사건이었다. 연전타임스는 배대판 4면으로 발행되었는데, 당시의 일간 신문과 동일한 체제를 갖춘 것이었다. 당시는 일간 신문이라고 해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밖에 없던 시절이었으니 대학에서, 그것도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신문을 발행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일제 치하에 우리말로 발행한 연전타임스는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당시 학생기자들의 원고는 학감의 검열과 총독부의 검열을 받아야 했고 몇 차례 발행한 다음 중지될 수밖에 없었다. 해방 후 연전타임스를 뒤이어 「연희타임스」가 속간되었으나 당시 사상적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10여 호를 내는 데 그치고 말았다.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연희춘추 발간 한국전쟁 중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1953년 6월 15일 「연희춘추」가 창간되었다. 창간호는 타블로이드판 10면으로 발행되었고, 가로짜기, 국한문 혼용에 반월간의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제호는 고려대장경에서 집자했는데, 이는 고려가 몽고의 침략을 받았을 때 강화에 피난한 선인들이 대장경을 각조하여 민족적이고 세계적인 문화를 전수한 정신을 이어받기 위함이었다. 511돌 한글날, 한글전용 신문으로 재탄생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과대학의 합병으로 교명을 연세대학교로 제정함에 따라 1957년 4월 1일 98호부터 제호를 「연세춘추」로 바꾸게 되었다. 4월 25일에는 지령 100호를 기념하여 판형을 배대판 8면의 가로짜기로 바꾸어 새로운 면모를 선보였는데, 배대판형의 도입으로 가로쓰기 신문 체제가 본격화되었다. 연세춘추의 한글 전용은 1957년 10월 9일자 110호, 511돌을 맞는 한글날 기념호에서 시작되었다. 1958년 1월 1일 신년호인 118호부터는 제호도 한글로 바꾸었다. 한글 제호는 용비어천가와 월인석보의 서체를 본떠서 일중 김충현이 휘호한 것이며, 제호 바탕의 도안은 윤세붕의 작품이었다. 역사의식, 사회의식 일깨워 1960년 4.19 혁명 이후 연세춘추는 비판적인 대학신문으로서의 자세를 확립하고 대학인의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일깨우기 위하여 4월 27일자 201호부터 203호까지 모두 4.19 혁명과 관련된 기사로 지면을 장식했다. 특히 201호에 실린 김윤경의 '민주주의 혁명운동', 이길상의 '짓밟힌 권리를 되찾은 원동력', 204호에 실린 홍이섭의 '4.19 정신혼' 등의 논문은 당시 학생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창간 70주년 맞아 인터넷 판 강화 연세춘추는 진리와 자유를 바탕으로 아카데미즘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우리대학교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교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학술, 연구, 봉사 활동의 보도를 토대로 학문 발전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교수, 학생, 직원, 동문 및 사회와의 연계를 도모코자 하고 있다. 2005년 9월 창간 70주년을 맞은 연세춘추는 인터넷 판을 강화하는 등 시대의 조류에 따라 변화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70년 동안 최고의 대학언론으로서 역할을 다해 온 연세춘추가 이제 "세계 속에 자랑스러운 연세"를 성취해 내는 일에 큰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한다.

 

vol.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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