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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국회의장 김원기 동문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4-08-02

원칙과 정도를 바탕으로 올바른 의회민주주의 정착 위해 노력할 것

지난 6월 온 국민의 기대 속에 제17대 국회가 출범했다. 기대가 큰 만큼 새로운 정치를 향한 국민들의 갈망도 크다.
싸움하지 않고 일하는 국회,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국회를 만들어 우리 의정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겠다는 다짐의 중심에 국회의장 김원기 동문(정치외교 55년 입학)이 있다.
김 의장은 제17대 국회의 수장으로서 국회를 민의의 전당이자, 국정논의의 중심무대로 국민통합의 산실의 공간인 국민의 국회로 만들어 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연세인으로서 한점 부끄럼 없이 살았던 윤동주 시인처럼 연세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새로운 정치의 시작을 여는 중심에 서 있는 김원기 국회의장을 찾았다.


* 늦었지만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들의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17대 국회의 의장을 맡으신 소감은 어떻습니까?
먼저 그동안 저에게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신 우리 연세 동문 여러분에게 감사 드립니다. 또 지난 4.15 총선이라는 위대한 역사를 창조해 낸 우리 국민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 17대 국회는 과거 국회의 연장선상에 있는 국회가 아닙니다. 우리 의장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17대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를 통해 당선된 의원들이고, 둘째 위에서 일방적으로 하는 공천이 아니라 국민의 뜻에 의해 실시된 공천에 의해 당선된, 진정으로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의미가 큰 17대 국회의 의장으로서의 소임을 맡게되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리 국회는 그동안 국민의 심한 불신을 받아왔습니다. 싸움하지 않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도록 국회의장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 국민의 기대가 큰 만큼 국회개혁을 바라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17대 국회를 어떻게 운영해 나갈 생각이십니까?
제일 중요한 문제가 국회를 정치의 중심으로 우뚝 서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우리 국회는 "행정부의 시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본래의 위상과 역할을 찾지 못했습니다.
실제 정치는 제왕적 대통령이나 총재 등 권력자 주변에서 이뤄지고, 국회는 형식적인 들러리 역할에 머물러 왔습니다.
이번 17대 국회에서는 정치의 변방에 있던 국회를 정치의 중심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랬을 때 이곳 국회의사당이 진정한 민의의 전당이자, 국정논의의 중심무대이며, 국민통합의 산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장에 취임하고 난 뒤 몇 번의 회의운영과 여야협의과정을 지켜본 결과, 각 당이 국민이 바라는 제대로된 국회를 구현하기 위한 의욕은 넘치지만, 새로운 관행과 제도를 만드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리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과거관행을 그냥 쫓아가려고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고 여야간 진통이 있더라도 새로운 국회운영의 관행을 정립해보자는 생각에 충실했으면 합니다. 언론도 이런 점에서는 다소간의 마찰은 국회가 자기 허물을 벗는 과정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 정치입문 이전 16년간 기자로 활동하셨습니다. 기자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저는 동아일보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러지만 당시에도 동아일보는 입사가 매우 어려웠지요. 그래서 기자들도 자존심이 대단했었습니다. 60년도에 입사했었는데 입사하고 6,7년쯤 되던 해에 원양어선을 탄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북양어로를 개척하기 위한 첫 항해여서 정부나 국민도 많은 관심을 가졌었고, 그래서 내가 특파원으로 따라 나간 것입니다. 그때 9척의 배가 같이 나갔었는데 출항한 계절이 8월 여름철이어서 태풍이 많이 불었어요. 다른 나라 배들은 태풍이 온다니까 다들 안전하게 귀항했었지만 우리 배들은 그냥 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한 짓이었지요. 결국 태풍에 두척이 조난당하고 30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때 나도 하마터면 태풍에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하느님이 도와주셔서 무사히 귀국했고 또 그때 쓴 기사로 상까지 받은 적이 있습니다.

* 어떤 계기로 정치권에 몸담게 되었습니까?
집안 어르신 중에 정치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정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대학교도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었습니다. 16년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도 정치에 대한 꿈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우연히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아니라 일찌감치 정치 준비를 한 셈이지요. 내가 정치에 입문하던 시절은 유신독재 말기였습니다. 정치를 편하게 하려면 얼마든지 여당을 선택했겠지만 나는 4.19와 5.16을 지켜보면서 그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힘든 줄 알면서도 야당인 신민당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정치를 하면서 가급적 원칙과 정도를 지키려 노력했다고 자부합니다. 95년도에 김대중 당시 총재께서 신당을 창당했을 때에 내가 따라가지 않은 것도 비록 이 일 때문에 정치를 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 그 선택이 올바른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낙선을 했지만 지금도 그 당시의 선택을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 연세동산에서 보는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일 또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내 성격이 활달하질 못해서 대학생활도 특별히 재미있다거나 그렇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기억할 만한 에피소드가 있지 못합니다. 한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기는 합니다. 대학교를 같이 다니던 아주 가난한 고향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가 정말 어렵게 마련한 등록금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나하고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보기에 너무 안되어서 앞 뒤 생각 없이 내 등록금을 그 친구에게 등록하라고 빌려줘 버렸어요. 그때는 우리 집안도 형편이 매우 힘들었던 때였습니다. 별수 없이 휴학을 하기로 마음먹고 시골집에 내려가 사실대로 말씀드렸더니 아버님이 펄쩍 뛰시는 거예요. 그때 할아버님께서 옆에서 듣고 계시다가 무릎을 탁 치시면서 "손자 교육 하나는 잘 시켰다"며 기분 좋게 웃으시더라고요. 다음날, 할아버지가 온 동네를 돌아다니시면서 정말 어렵게 빚을 내서 다시 등록금을 마련해 가지고 겨우 등록을 한 적이 있습니다.

* 김 의장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거나, 힘이 되는 연세인이 있습니까?
글쎄요. 연세 동문 중에 가깝게 지내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만,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내 할아버님이십니다. 그 분한테 배운 것이 참 많아요. 당신은 돌아가실 때까지 상투와 갓을 벗지 않으실 정도로 완고하셔서 동네 사람들이 다 어려워했어요. 하지만 나한테만큼은 참 잘해주셨고, 내가 부탁하는 것은 많이 들어주셨습니다. 할아버님께서는 무엇보다도 큰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늘 여유와 측은지심 그리고 책임감을 말씀하셨어요. 최고가 된다든지 높은 자리에 오른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하는 사람, 덕을 베풀어서 주위 사람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신 거지요. 내가 정치를 하면서도 이런 할아버님의 가르치심 덕택에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의장님께 있어서 "연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연세 하면 떠오르는 것은 진리와 자유 아닙니까? 옳은 길을 가되 진취적 기상을 가지라는 뜻이겠지요. 연세인 중에 연세의 긍지를 세운 훌륭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난 그 중에서도 윤동주 시인을 가장 존경합니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겠다는 그 자긍심, 나도 연세인의 한 사람으로써 늘 연세인의 이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고, 또 노력할 것입니다.

* 후세에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길 원하십니까?
무엇보다도 원칙과 정도를 지킨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또 올바른 의회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노력한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 연세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언제나 세상은 변화해 왔고, 또 그 변화 속에서 세대간 계층간에 대립과 갈등이 있어 왔지만 요즘이 특히 심한 것 같습니다. 참 걱정됩니다. 아무리 생각이 달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대화하면서 타협하는 이런 분위기가 아쉽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예전과 다르게 공부도 열심히 해서 실력들도 뛰어나고 또 자기 의사도 적극적으로 밝혀 나가는 것이 참 보기 좋습니다. 그러나 배려할 줄 아는 마음, 즉 측은지심과 여유가 조금 부족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1년, 5년이 아니라 10년, 50년을 내다보는 그런 원대한 자세로 살아가기를 강력히 권합니다.

 

 

vol.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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