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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기타 소식] 이달의 연세역사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3-11-17

연희전문 학생회 극연구부 제1회 공연 「어둠의 힘」
-1931년 11월 27일-


예전에는 크게 성행되다가 지금은 잊혀져 버린 「반일회班日會」 또는 「반우회班友會」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아마 미국에서 박래(舶來)한 듯한 「class day」라는 것으로 학생들이 졸업할 때에 그 졸업을 축하하는 행사로 졸업한 후 사회에 진출하여 자기의 소망과 포부를 촌극으로 꾸며 연출하던 것이 점차 변하여 본격적인 연극활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예전 연희에서도 1922년 제 4회 졸업생의 「반일회」 연극 「민중전 전」이 당시의 중앙기독교 청년회관(YMCA)에서 첫선을 보였다고 하였다. 이어서 1926년에도 YMCA에서 이윤재 각색 「바보 온달」 극이 최봉칙(1926년 3월 문과 졸업)주연으로 공연하여 한때 장안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후 1928년에 「반일회」행사 연극이 아닌 「연희 연극구락부」라는 이름으로 연극 콩쿨을 개최한 바 있으며 1929년 5월에는 학생회 지육부 산하에 「연희전문학교 학생회 극연구부」가 정식으로 조직되었다. 그리하여 1930년에는 본격적인 연극공연을 위하여 당시 문과 2학년이던 박영준의 작품 「삭발削髮」을 공연하기 위해 연습에 들어 갔으나 일본 경찰의 공연금지 명령으로 본격적인 연극 공연은 일단 좌절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학생극 공연의 최대 난관은 남녀공학을 꿈도 꿀 수 없던 시절이라 남자 학교에서는 여자 배역을, 여자 학교에서는 남자 배역을 구할 길 없다는 일이였다. 그러기에 궁여지책으로 조의설(1931년 문과 졸업) 신동욱(1932년 문과 졸업)같은 떠꺼머리 여배우가 출연하여 연극은 요절복통으로 끝나게 되어 이 점이 학생극 발전의 최대 장애요인으로 보아 기성 연극계에서 남녀 학교 연극반원의 교류를 권할 정도였다.

이러하던 중 1931년 연희에는 배은수(1936년 문과 졸업)의 입학으로 극연구부가 단연 활기를 띠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용모나 체격으로 조금도 여성에 손색이 없는 명연기를 보여 장안의 인기를 불러 모았던 인물이었다. 이에 힘입어 연희전문학교 학생회 극연구부는 조선일보 학예부 후원으로 1931년 11월 27일 드디어 역사적인 제1회 공연의 막을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이 역사적 제1회 공연을 알리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연일 보도하였다.

「연전 학생회 극부 제1회 공연; 톨스토이의 「어둠의 힘」 상연」
시외 연희전문학교 학생회 극연구부에서는 벌써부터 여러 가지로 극에 대한 연구를 열심히 해 오던 바 이번에 그 연구발표로서 본사 학예부 후원으로 오는 27일 금요일 오후 일곱시에 장곡천정(長谷川町) 공회당에서 처녀 공연을 하리라는데 상연 각본은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역작 「어둠의 힘」 4막5장이라는 바 순전히 학생의 힘으로서 극예술에 대한 연구와 아울러 공연까지 있음을 기뻐할 바인데 또한 조선 신극운동에 대한 한 봉화로도 볼 수 있는고로 기대되는 바이며 방금 제반준비가 진행중에 있으므로 학생극으로 전에 없는 좋은 효과를 보여 줄 것이라 하겠다. - 1931년 11월 17일/ 조선일보

그리고 11월 27일 기사에는 공연의 무대와 배역까지 소개하면서 여주인공 역에 배은수가 출연함을 광고하고 있었다. 이때의 공연장소 「장곡천정」은 제2대 조선총독 하세가와(長谷川장곡천)의 이름을 붙인 오늘의 소공동으로 공회당은 상공회의소 자리였다. 그리고 당시 대중공연 장소로 두군데가 있는데 하나는 조선인 거리로 북촌에 있는 YMCA 강당으로 그곳에는 3백명 정도를, 또 하나는 일본인 거리로 불리던 남촌에 있는 공회당으로 약 5백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입장료는 1원, 5십전, 3십전이었으며 이 금액은 당시 학생극 입장료로는 최고액의 입장료였다. 그럼에도 그날의 입장객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던 것 같았다.

이날 직접 연극을 관람한 김윤경(1922년 문과졸업, 연희대학 총장대리, 연세 대학원장 역임)은 다음과 같이 관람 소감을 적어 두었다.

「밤 일곱시에 공회당으로 연희전문 학생의 연극 「어둠의 힘-The Power of Darkness by Tolstoi」을 구경하러 갔다. 그 줄거리는 러시아의 한 부호 「표틀」이 젊은 후실 「아니샤」를 두었으나 「아니샤」는 그 늙은이를 싫어하고 몰래 그집 머슴 「아키다」-쾌활하나 불량하여 하녀 「앙카」까지 버려준 이-와 눈이 맞았다. 그러하나 「이키다」는 또 그도 버리고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하였다. 그리하여 불량자가 되어 그 부친에게 많은 책망을 들었으나 종내 듣지 않다가 나중 「아그리나」의 혼인날 만좌중에서 여러 여자를 버리고 죽이고 부모를 거역한 것을 자백하여 참사람으로 돌아가면서 몸은 순사에게 잡혀가는 광경이었다. 사람은 자리가 차고 밀짚처럼 서게 되었다. 처음은 똑똑한 인상을 주지 못하였으나 최후의 막은 잘 되었다. 구경온 이는 여자가 반 이상임에 놀랐다. 시대는 바뀜이 사실이었다. 열한시에 끝났다.」- 김윤경 일기/ 1931년 1월 27일

이렇듯 첫 공연부터 장안의 화제를 불러 모았던 연희 연극은 여장배우 배은수의 인기와 더불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학생극의 단초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후 「바다의 부인」 「정의」 「아라비아인의 천막」 「여로의 끝」 「작은 아이 욜프」등 계속되던 정기공연이 1936년 총독부의 학생극 금지로 연희 극연구회 정기공연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후 8·15광복과 함께 연희 연극도 광복을 맞이하게 되어 1947년 6월 2일부터 사흘간 국제극장에서 연희대학교 연극부 제1회 공연「지평선 저건너」가 공연되기까지 하였으나 또다시 6·25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1953년에 부산 피난학교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환도한 기념으로 「연희극예술연구회」가 다시 발족하여 그해 10월 17일(토)에 「포경선」 공연을 시작으로 오늘의 연세 연극까지 맥이 이어져 왔다.

 

 

vol.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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