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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강영우 동문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3-09-18

시각장애를 딛고 미국 백악관 정책차관보에 오른 강영우 동문

시각장애를 극복한 자랑스런 한국인 강영우 박사. 그는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자문 차관보로 직함 앞에 Honorable이라는 칭호가 붙는 미국 행정부의 최고위 공직자 중 한명이다.
중학교 시절 시력을 잃고, 부모와 누이마저 잃어 '맹인 고아'로 성장했던 그가 우리대학교 문과대를 차석으로 졸업했고, 미국으로 가서는 피츠버그대에서 한국인 최초 맹인박사가 되었다.
실명으로 문자생활이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맹인이 되어 공장 직공도 될 수 없는 운명에 처했다고 믿었던 그가 세계명사 인명사전에 수록되는 세계적인 저명인사가 되었다.
또한, 강영우 박사의 장남은 듀크대 의대 안과 교수로, 차남은 최연소 미국 상원의원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는 등 가정적으로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지난 8월 29일 2002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강영우 박사를 만났다.


~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신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연세대학교를 떠난지 한세대만에 돌아와 명예박사학위를 받게되어 아주 기쁘고 감회가 깊습니다. 특히, 제가 유학을 떠난 1972년 당시만 해도 한국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장애가 해외유학에 결격조항으로 규정되어 있었거든요. 제가 유학을 떠날 수 있도록 박대선 당시 총장께서 청원서를 내고 민관식 당시 문교부장관이 큰 결정을 내려 청원을 받아들여주신 덕분에 유학을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미국으로 떠났던 제가 이제 한국의 교육과 사회 발전에 공헌을 한 것을 인정받아 모교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게 되니 다른 사람보다 감개가 더 무량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제가 미국에서 연방정부 고위공직자로 있는 동안 모교와 모국의 발전에 더욱 기여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 어떻게 장애를 입게 되셨습니까
중학교 시절 축구공에 눈을 맞아서 망막 박리가 시작됐고, 몇 년 후에는 실명을 하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굉장히 실망하고 좌절했습니다. 때문에 방황의 세월로 5년 간을 보내고 또래보다 5년이나 늦은 지각생으로 다시 바닥에서 인생을 시작을 했습니다.
처음엔 실명한 것을 고난의 십자가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서 저에게 모든 복을 다 주셨어요. '실명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실명을 통해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게 됐습니다.

~ 대학 시절 이야기를 좀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만해도 점자책이나 녹음도서 같은 것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만들어서 공부했어야 됐습니다. 친구들과 서로 도와야 했죠. 친구들이 책을 읽어 녹음해주면 저는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을 골라서 노트하고 친구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대학시절 체육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고, 제가 시험예상 문제로 골라 가르쳐준 것들이 시험에 꼭 나오곤 했기 때문에 친구들이 모두 저랑 같이 공부하려고 했습니다.
눈으로 책을 읽을 수 없는 제가 독서서클을 창립했던 것과, 여행을 좋아해 안창규라는 친구하고 완행열차를 이용해 전국을 여행도 했던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 학교발전기금을 전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문자생활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글을 쓰거나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절망적이었어요. 그랬던 제가 오늘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거든요. 제가 쓴 일곱권의 책들이 각각 5만권 이상씩 판매됐고,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라는 책은 10만권 이상 팔렸어요. 오늘 제가 학교에 기부한 2천만원도 출판물 인세의 일부입니다. 시각장애가 있는 제가 책을 써서 학교에 기부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일반인들과는 감회가 참 다르고, 또한 제 글이 젊은이들의 의식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보람입니다.

~ 성공 스토리도 간단하게 말씀해 주세요.
저는 하나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 주지 않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사고 후 점차 시력을 잃어가면서 눈을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어요. 어머니마저 제가 실명한 것에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어요. 또 부모를 대신해 공장에 다니면서 동생들을 돌보던 누나마저 과로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만약 하나님께서 제눈을 고쳐주셨다면 제가 공장에 다니면서 두 동생들을 돌봐야할 차례였어요. 하지만 시력을 잃었기 때문에 저는 맹학교로 공부하러 가게되었고,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남동생은 남의 집 철물점으로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식구들과 헤어지게 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1976년 박사학위를 따고 나서는 고국에서 대학강단에 서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고국에서 직장을 주겠다는 대학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정착을 하게 된 겁니다.
그 기도를 그 당시 들어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미국에 살면서 교수도 될 수 있었고 교육행정관도 되고, 대구대학교 초청교수가 되어서 고국의 특수 교육 발전에도 기여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유엔 세계장애 위원회 부의장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고, 공헌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2001년부터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이 인준하는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라는 고위직에까지 오르게 된거죠. 450만명의 미국에 공무원 중에서 Honorable 칭호 부여되는 5백명 밖에 안되는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한국에 돌아와 대학 강단에 서고싶다는 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다면 이러한 것들은 모두 안 이뤄졌겠죠. 굉장히 역설적입니다만, 저는 하나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 주지 않으신 것을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 자녀들도 모두 사회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남다른 자녀교육방법이 있으셨는지
교육에는 지력, 심력, 체력의 3대영역이 있습니다. 지력은 지능이 지배하는 것으로 유전이 되는 것입니다. 심력은 태도와 가치관이 지배하는 것으로 지능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아들들에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인생을 살도록 그렇게 교육을 했고, 아들들도 따라 주었습니다. 그 결과 두 아들 모두 미국의 최고의 명문 고교인 필립스 아카데미를 나왔고, 큰아들의 경우 하버드대학 나와 지금은 듀크대 안과 교수로 있습니다. 둘째 아들도 미국 상원의원의 최연소 고문 변호사예요. 굉장히 출세를 했지만 제 아들들이 머리가 비상한 것은 아닙니다. 인생을 남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살겠다는 태도와 가치관, 그리고 아버지의 눈을 고쳐주고, 아버지와 같이 불행에 있는 시각 장애자들은 고쳐주겠다는 꿈을 이뤄나간 겁니다. 태도와 가치관을 길러주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본보기가 되는 거죠.

~ 자녀 교육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신다면
큰아들이 3살 때 "아버지가 야구도 하고, 운전도 할 수 있도록 아버지 눈을 고쳐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더군요. 바꿔 말하면 '우리 아버지는 야구도, 운전도 못해요'라는 부정적인 관점이라 볼 수 있죠. 이 관점을 바꿔주기 위해서 "현대 의학으로는 아버지의 눈을 고칠 수 없다. 하지만 네가 어른이 된 후에는 의학이 발달 돼서 고칠 수 있을 지도 모른단다. 그러니까 네가 안과의사가 돼서 아버지 눈을 고쳐주렴"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들에게 의사가 되는 꿈을 심어주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또 한번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아버지가 엄마보다 더 잘하는 게 있다고 이야기했더니, 아들이 그게 뭐냐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불을 끄면 책을 읽을 수 없지만, 아버진 매일 저녁 불을 끄고 책을 읽어 주지 않니"라고 답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아이의 관점과 태도가 바꿨고 십수년이 지난 후 큰아이가 대학에 입학할 때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던 일을 쓰라고 하니까 어린시절 아버지가 어둠 속에서 책을 읽어준 이야기를 했더군요.
'아버지는 육신의 빛은 잃었지만, 인생을 보고, 세상을 보고, 미래를 보는 환한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눈뜬 내가 아버지를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눈먼 아버지가 눈뜬 내 인생을 안내하시고, 비전과 꿈을 심어 주십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책을 읽어 주셨기 때문에 쉽게 잠들 수 있었고, 나는 상상의 날개를 더 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겉으로 보기엔 장애인처럼 보이지만, 내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도 능력이 많은 분입니다. 그래서 나는 맹인 아버지를 가진 것을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럽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라는 내용의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찬 이야기를 쓰게 된 것입니다.

~ 미국 최고위 공직자가 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신 그 비결을 알려주신다면
성공의 비결을 묻는 젊은이들을 향해서 '3C로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3C란 Confidency(실력), Character(인격), Commitment(헌신)입니다.
우선 실력을 갖추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리고 인격 중에서도 특히 정직과 헌신을 갖춰야합니다. 헌신이라는 것은 내가 헌신적이다라고 스스로 평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헌신 정도를 인정하고 대변해줄 인맥의 깊이가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그 것을 헌신의 인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3C는 부시정부의 인사 정책이며, 승진 기준이기도 합니다.

~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젊은이들에게 비교 경쟁하지 말고, 인생의 선명한 비전과 큰 꿈을 가지고 앞만 보고 정진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절대평가로 인생을 살다보면, 상대평가에서도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vol.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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