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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생명과학 대사전’ 개정판을 펴낸 강영희 명예교수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4-12-16

 

“천천히 오래 달리라고 하지만 저는 빨리 오래 달리라고 하고 싶습니다”

‘생명과학 대사전’ 개정판을 펴낸 강영희 명예교수 (생물학과 50학번)

 

85세에 11권의 책에 62,000여 학술용어가 수록된 대역작 ‘생명과학 대사전’ 개정판을 펴낸 연세인이 있다. 시간은 ‘황금’이라며 시간을 아끼고, 특유의 노력과 정신력으로 평생 부지런한 삶을 살아온 한국 생물학계 거장 강영희 명예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유지하며 왕성한 연구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해서 지난 12월 2일, 강 명예교수의 자택을 방문해서 그를 만났다.

 

생애의 대작 ‘생명과학 대사전’, 생명과학의 바이블

강 명예교수는 연세대 생물학과 교수로 30년 이상 재직하며 생물학 강의와 연구를 하였고, 정년퇴직 후에는 재직 후반기부터 구상해 왔던 생명과학 대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했다. 하루 5시간 이상은 잠을 자지 않고, 식사와 체력단련 시간을 제외한 하루 15시간 이상을 대사전 편집 작업에 전념했다. 그 10여 년 대장정의 결과가 지난 2008년 2월에 25,000여 어휘가 수록된 ‘생명과학 대사전’으로 탄생했다. 

초판을 발행한 후 강 명예교수는 “사전은 생명체와 같아서 계속적으로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죽어요. 특히 첨단과학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그 속도도 예측이 안 될 정도입니다. 그 만큼 새로운 용어와 내용이 방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라면서 개정판을 약속했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2014년 11월에 그 약속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번 개정 증보판에는 초판의 25,000 어휘에 37,000 어휘를 추가하여 총 62,000여 어휘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초판에서 나왔던 여러 건의사항을 반영하였다. 초판의 건의사항으로는 ‘책이 너무 무거워 다루기 어렵다. 글씨가 너무 작다. 용지가 너무 얇다. 그림이 흑백이다’ 등이었는데, 개정 증보판에는 이를 모두 개선해서 다루기 쉽도록 책을 10권(부록은 별권)으로 나누었고, 글씨는 더욱 크게 하였으며, 용지의 품질도 최고로 하고, 그림은 칼라로 바꾸었다. 강 명예교수는 85년을 살아오면서 그 어떤 기쁨과 성취감과도 견줄 수 없는 벅찬 행복을 느끼며 개정 증보판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거실에 펼쳐놓은 ‘생명과학 대사전’은 실로 엄청난 분량이었다. 10권의 책에 목차만 따로 1권이 있는데,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6년 만에 이 방대한 사전의 개정증보판을 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강 명예교수는 “내가 재직중에 60여권의 생물학 책을 저술, 번역 출판하였는데, 그것을 위한 내용과 시간을 몇 십 배 합친 것과도 비교가 안될 정도의 대작업이었다”고 밝혔다.

강 명예교수는 사전의 중요성을 재미있는 비유로 설명했다.

“사전은 반찬이 아니고 밥입니다. 밥은 생명 유지를 위한 에너지의 근원이 되므로 모두에게 꼭 필요합니다. 골라먹을 수 있는 반찬과 달리 밥은 꼭 먹어야 하듯이 사전은 학문에 있어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제가 시작한 이상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이 사전을 편찬하고 개정하며 후학들을 위한 가장 기초적이고 탄탄한 길을 닦았다.

 

일본에서 대학원 박사과정 때 은사님의 권유가 집필 계기

강 명예교수는 이 역작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었다.

“대학원 박사과정을 일본에서 할 때, 지도교수였던 후지와라 아키오 교수님이 ‘한국에는 이런 책이 없으니 네가 만들어야하지 않겠느냐’고 한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강 명예교수는 한일국교 정상화가 되던 해인 1965년 일본 정부초청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동북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생물학과 조교수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자료가 적었고, 연구 인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국 강 교수는 해냈다. 한국의 자료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의 자료도 참고했다. 그 결과는 분자생물학, 생화학, 토양비료학, 생물학, 면역학, 미생물학, 영양학, 병리학, 초지학, 수산학, 어류학 등 모든 생명과학 분야를 망라하는 대작으로 이어졌다.

이 역작은 강 교수의 근면함 없이는 애초에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세계적인 학자인 후지와라 아키오 교수가 대사전의 집필을 맡긴 것도 강영희 교수의 성실성을 눈여겨 보았기 때문이다. 유학시절 그는 매일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연구실을 지켰다. 퇴임을 한 지금도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연구에 매진한다고 한다. 경이할만한 근면함이다.

동년배의 어르신들처럼 골프나 여행을 즐기진 않느냐는 질문에 강 교수는 그런 것들이 재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선물 받은 골프채를 한 번도 쓰지 않고 묵히고 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간 유럽 여행은 힘들기만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런 그가 생명과학대사전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유독 눈을 반짝였다. “학문이라는 게 더 이상 안 쓰는 용어도 생기고 새로운 용어도 생겨서 항상 그 변화를 좇아가야 해요. 예전에야 최신 자료들을 보려면 미국, 일본에서 학술지를 받아 보느라 한참 걸렸지만 요즘엔 얼마나 편해요.”

그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뒷받침하는 것은 체력이었다. 강 교수는 지금도 자택근처에 있는 우면산에 오르고, 아파트 내에 있는 헬스장을 찾아 꾸준히 운동을 한다고 한다. 그에게 85세라는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한 것 같았다.

 

한국 생물학계의 거장

강영희 명예교수는 1930년 제주에서 출생하여 초등학교를 제주에서 마친 후, 광주서중(6년제, 현재 광주일고)을 졸업했다. 1950년 연세대 생물학과에 입학(생물학과 1회 졸업)하여 1962년부터 연세대에 부임한 후 34년간 봉직하고, 1995년 8월 정년퇴임하였다. 교내에서 사회교육원장, 교학부총장 등을 역임하고, 대외적으로는 한국식물학회 회장, 국제식물학회 부회장(International Botanical Congress, Tokyo Japan: Vice President), 3rd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plant Tissue and Cell Culture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재직 중에 60여 권의 저서, 100여 편 이상의 전공논문, 43편의 정책과제 연구 등을 통하여 한국의 자연과학 및 식물학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또, 2010년도 연세총동문회 총회와 2011년 재경 광주일고(서중) 총동문회에서 각각 ‘모교를 빛낸 동문상’을 받았다.

 

3대가 연세 가족

강 명예교수 가족은 거의 연세 동문회였다. 본인과 자녀와 손주까지 3대에 걸쳐 연세대 출신이 10명에 이른다. 2010년에는 학교로부터 자랑스러운 연세가족 패를 받았다. 특히 올해 과학공학인재 전형으로 막내 손주가 연세대 정보산업공학부에 합격한 것이 요즈음 강 교수의 자랑이다. 서울대 출신인 그의 아내 역시 “연세대학교가 참 좋다”며 남편과 자녀, 손주들의 학교인 연세대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소장도서 4,000여 권, 임야 5,000여 평 모교에 기증하기도

강 명예교수는 정년 이후에 소장하고 있던 장서 4,000여 권을 학교 도서관에 기증했다. 지난 2010년에는 대학발전기금 조성을 위해 임야 5,000여 평을 모교에 기증했다. 일본 유학시절 지도교수가 소장하던 학술도서 약 2만권을 강 교수가 기증받아 그 중 1만 2천 권은 우리 대학교에, 나머지는 강 교수 제자가 근무하는 조선대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다들 천천히 오래 달리라고 하지만 저는 빨리 오래 달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달리다보면, 그 다음에는 앞서가는 희열에 지치지 않게 되거든요.” 시작부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강 명예교수의 말은 그가 어떤 자세로 살아왔는지 짐작하게 한다. 강영희 교수는 그가 살아온 궤적으로 이 말을 증명한다. 팔순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불구하고 생명과학의 바이블을 탄생시킨 강 명예교수의 부지런함과 삶에 대한 열정은 모든 후배 연세인들이 본받아야할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vol. 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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