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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현미경으로 본 인간의 조건 (Ⅲ)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4-11-16

 

현미경으로 본 인간의 조건 (Ⅲ)

시스템생물학과 김응빈 교수

 

전통적으로 생물을 크게 세 가지, 즉 동물과 식물, 미생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혹자는 왜 미생물만 세 글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언뜻 우문 같지만 뼈가 있는 질문이다. ‘생’자를 빼보자. ‘동물, 식물, 미물’… 확인할 공식 자료는 없지만, ‘microorganism’을 처음 번역했던 사람이 말맛이 좋지 않아 미생물로 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어찌 불리든 더럽고 해롭고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기는 마찬가지인데, 그것이 무슨 대수랴? 미생물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알려서 오해를 풀고 대화합(?)의 물꼬를 트는 것이 급선무이지. 사실 말이지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겉모습만으로 무언가를 평가하는 것은, 이를 경계하는 뜻을 담고 있는 속담이 여러 나라에 있을 만큼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미생물은 보통 너무 작아서 개별적으로는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생명체들이다. 여기에는 세균(박테리아)과 균류(효모와 곰팡이), 원생동물(아메바, 짚신벌레 등), 미세 조류(藻類)가 포함된다. 또한 바이러스도 미생물에 포함되는데, 이런 비세포성 존재는 때때로 생명체과 비생명체의 경계에 걸쳐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미생물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몸은 거대한 서식지다. 평소에 도움을 주거나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우리 몸에 거의 영구적으로 사는 미생물들을 정상 미생물상(normal microbiota)이라 한다. 우리 몸에는 인간의 세포 수보다 최소한 10배 더 많은 미생물(대부분 세균)들이 살고 있다. 보통 성인이 약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면 우리는 최소한 1,000조에 달하는 미생물 세포를 함께 가지고 있는데, 그 무게가 2~3kg에 달한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스트레스를 받고 계신 분에게는 자동 체중 감량에 해당하니, 희소식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상 미생물 없이는 채 일주일을 버티기 어려우니 이들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지 남으로 여길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한다.

 

체질 개선의 숨은 주역

사람의 몸에 살고 있는 전체 미생물을 분석하는 인체 미생물 군집 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가 2007년에 시작되었다. 그 목표는, 미생물군집의 변화가 사람의 건강 및 질병과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의 미생물군집은 예상보다 더 다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사람의 대장에만 최소한 1,000종 이상의 미생물이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서 자랄 때에는 무균 상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미생물들이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미생물은 우리가 세상 데뷔 무대에 나설 때, 제일 먼저 나와 환영해 준다. 분만 과정에서 산모가 엄청난 산고를 치르는 동안 아이는 산도(産道)를 지나며 거기에 살고 있는 미생물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세상에 나온 다음부터는 자기를 보듬어 주는 사람과 음식 등을 통해 주변 환경으로부터 다양한 미생물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여러 환경에 따라 접하는 미생물이 달라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와 자연 분만된 아이는 처음부터 다른 미생물을 접하게 된다. 그 밖에도 수유 방법이나 탄생 직후에 접하는 환경 요인이 아기의 초기 미생물 집단 형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최근에는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가 자연 분만된 아기에 비해 감염 등에 훨씬 더 취약하다는 연구보고가 잇따르고 있고, 모유수유를 통해서 엄마는 아기에게 좋은 모유뿐만 아니라 좋은 미생물을 전달한다는 사실도 밝혀진 상태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자연분만과 모유수유, 엄마와 아기의 살갗 닿기 등을 통해 만들어지는 착한 미생물 집단이 아기가 건강한 성장발육을 할 수 있는 몸바탕, 즉 체질 형성에 중요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몸의 생리적 성질이나 건강상의 특질’이라는 국어사전의 체질 정의가 새삼스레 과학적으로 이해가 된다. 날 때부터 우리가 지니게 되는 것은 부모에게서 받은 유전자와 미생물이니 결국 체질은 유전자와 미생물의 합작품이라 재정의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체질이란 것이 일단 타고난 후에는 교환 불가능한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었다면 이의 개선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을 뻔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미생물을 통한 체질 개선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우리 조상의 지혜

장을 튼튼히 하는 것이 건강의 기본이라고 한다. 섭취한 음식물의 소화를 완결하고 각종 영양분을 혈액 내로 흡수하여 온몸으로 퍼질 수 있게 하는 기관임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찬가지로 여기는 미생물에게도 고온다습하고 먹이가 풍부한 것이 흡사 지구의 열대우림과도 같아 아주 좋은 서식지이여서 우리 몸에서 미생물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중요한 사실은 장내세균 집단의 구성과 우리의 장 건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구용 항생제를 장기간 복용하면 병원균뿐만 아니라 정상 장내세균 집단에도 손상을 주게 되는데, 이들이 제대로 복원되지 않으면 다른 잡균들이 빈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해로운 변화를 초래하고 질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즉 장내 세균들이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지켜내는 것이 우리 장 건강의 선결조건이라는 얘기다.

장내세균의 구성은 개인이 먹는 음식에 따라 달라진다.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은 야채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단백질 분해능력이 강한 장내세균을 많이 가지고 있다. 유산균이 풍부한 음식은 일차적으로는 건전한 장내세균 집단의 복원 및 유지를 도와서, 이차적으로는 우리의 건강에도 이로움을 주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아서였을까? 다양한 발효 음식을 개발하여 후손들에게 남겨주신 우리 조상들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은 튼튼한 장을 유지시켜 주는 건강식을 매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각종 김치와 젓갈류, 된장, 고추장에다 식혜와 막걸리까지 발효음식을 빼고 나면 우리 고유 음식 중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런 맥락에서 패스트푸드와 서구식을 즐기는 우리의 변화된 식습관과 염증성 장질환 환자의 증가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미생물을 이용한 첨단(?) 치료

복통과 설사, 혈변 등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나는 염증성 장질환은 발병 원인이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난치성 질환으로 정확한 진단과 그에 따른 적절한 내·외과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를 치료하기 위하여 미생물생태학적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첨단(?) 치료법의 핵심은 마치 정상적인 음식물 섭취가 어려운 환자에게 영양주사를 놓는 것처럼 좋은 미생물을 대장에 직접 넣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재의 기술로 배양할 수 있는 미생물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의 1%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좋은 장내 미생물의 선별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기발한 대안이 건강한 사람의 장내 물질, 즉 ‘똥’ 이식이다. 기존의 모든 치료법이 실패한 경우, 당사자들의 동의하에 사전 검사를 통해 선택된 건강한 공여자(일반적으로 친지나 배우자)의 변을 내시경을 이용하여 이식한다고 한다.

상당히 혐오스러운 방법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치료 효과가 좋다고 하니, 더럽다고 얼굴을 찌푸리기보다는 앞서가는 생각으로 만약을 대비해서 건강할 때 내 것을 좀 받아 잘 보관해 두는 것이 현명할 선택일 수도 있겠다. 그냥 웃자고 하는 실없는 얘기가 아니다. 2014년 3월에 미국 보스턴에 정자은행, 혈액은행 등에 이어 드디어 ‘똥’ 은행이 공식 출범했다.

OpenBiome(www.openbiome.org)은 만성 염증성 장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하려는 친지들의 열망에 과학자들의 호기심이 합쳐져 만들어진 비영리기관이다. 의료 현장에서 직면하는 장애 요소를 줄여 안전한 분변 미생물상 이식(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FMT) 치료 확대와 장내 정상 미생물상 연구 지원을 위하여, FMT에 필요한 최적의 분별을 선별하여 이를 필요로 하는 의료 및 연구진에게 공급하는 것이 OpenBiome의 중요한 역할이다. 2014년 6월까지 바로 사용이 가능한 냉동 분변 시료 300여 개를 39개의 병원에 공급하였다.

 

비만 세균

지난 568호 <연세소식> Academia 칸에서 소개했던 코흐 원칙에 의거하여 ‘비만’이라는 질병의 원인 세균을 최초로 규명한 연구 성과를 알리는 논문이 2013년에 유명 학술지에 실렸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뚱뚱한 사람의 대장에서 분리한 특정 세균을 무균쥐에 주입하였더니 그 쥐도 살이 쪘다는 것이다. 무균쥐란 태어나면서부터 사육되는 전 기간 동안 미생물과의 접촉을 완전히 통제하여 장을 비롯한 몸 전체에 미생물이 전혀 없는 쥐를 말한다. 이 연구진은 체중이 무려 174.8kg인 남성의 장내 미생물을 조사하여 비만을 유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특정 세균이 전체 장내 미생물의 약 35%나 차지하고 있음을 알아냈다. 이어서 연구진은 통곡물과 프리바이오틱스[prebiotics, 장내 유용 미생물의 성장 및 활성을 촉진하여 숙주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식품성분: 우리의 건강에 유익한 효과를 나타내는 미생물을 일컫는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와 혼동하지 말자]를 조합한 식단을 23주간에 동안 이 남성에게 제공하였는데, 그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23주 후에 이 남성의 몸무게는 무려 51.4kg이나 줄었고, 비만 원인균으로 지목된 세균은 감지되지 않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이 환자를 괴롭혔던 고혈당과 고혈압도 거의 정상 수치로 회복되었다. 특정 질병에 걸린 환자의 몸에서 병원체가 발견되어야 한다는 코흐 원칙 첫 번째를 만족시킨 것이다. 연구진은 이 세균만을 분리, 배양하였고(코흐 원칙 두 번째), 이 원칙의 세 번째를 만족 여부를 확인하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코흐 원칙대로라면 건강한 사람에게 이 세균을 투여해야 하는데, 이것은 절대로 불가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균을 섞은 사료를 무균쥐에게 주었고, 그랬더니 그 쥐가 비만해졌다. 그리고 이 쥐의 장에서는 이 세균이 검출되었다(코흐 원칙 네 번째). 세균과 비만 사이의 인과 관계가 확인된 것이다. 결국 장내 미생물 집단을 잘 조절하면 비만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예방 또는 치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인간의 조건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했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인간 세포와 이보다 최소한 10배나 많은 다양한 미생물들이 이루는 세포의 사회가 우리 몸의 본 모습이다. 유전자로 따지면 정상 미생물상의 유전자가 인간 유전자의 100배를 넘어선다. 한마디로 우리는 ‘초개체(superorganism)’다. 초개체는 약 100년 전에 미국의 곤충학자 휠러(William M. Wheeler)가 개개의 흰개미 능력의 총합보다 훨씬 탁월한 흰개미 집단의 능력을 지칭하기 위해 만든 용어다.

결혼한 세 쌍 중 한 쌍 꼴로 이혼을 한다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슬픈 통계 수치 앞에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영원한 사랑의 서약 문구가 공허하게 들리면서 오히려 이 문구는 미생물과 우리의 관계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미생물 없이 우리는 채 일주일도 버틸 수 없다. 우리에게 진정한 인생의 반려자이자 조력자인 미생물과 함께 조화 속에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아름다운(美생물), 맛있는(味생물) 또는 귀찮고 하찮은(微생물) 존재로 다가오게 된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자세히 살펴볼 때 미생물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하며 지난 3회에 걸쳐 연재한 글을 마무리하려는데,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 태 주 , [ ‘풀꽃’ ]

글_김응빈 교수(시스템생물학과)

 

 

vol. 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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