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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현미경으로 본 인간의 조건 (Ⅱ)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4-11-01

 

현미경으로 본 인간의 조건 (Ⅱ)

시스템생물학과 김응빈 교수

 

많은 위대한 발견이 사소하고 우연한 사건으로 시작했듯이, 어느 날 파스퇴르를 찾아온 양조업자가 미생물과 질병 사이의 관계 규명이라는 큰 과학적 발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정작 당사자 자신은 몰랐겠지만 말이다. 빚은 술을 오랫동안 보관하고 먼 지역에도 공급해서 팔고 싶었던 그 양조업자는 파스퇴르에게 와인과 맥주가 상해서 시큼해지는 이유를 알아내 달라고 부탁했다. 이때까지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공기가 와인이나 맥주에 들어 있는 당분을 알코올로 전환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파스퇴르는 공기가 아니라 효모(이스트)라는 미생물이 공기가 없는 상태에서 당을 알코올로 전환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발효 과정이 생물학적 과정이라는 사실이 밝혀낸 것이다. 1857년의 일이다. 이때부터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약 60년간 미생물과 관련된 굵직한 발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미생물학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이 기간 동안 미생물학이 독립된 과학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많은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틀도 잡혔다.

 

미생물 병원설

파스퇴르 시대 이전에도 여러 질병 치료 방법이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발견되기는 하였지만, 정작 그 병의 원인은 몰랐다. 파스퇴르가 와인과 맥주 같은 술의 발효가 미생물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자연발생설을 사멸시키자, 사람들은 그 동안 저절로 일어나는 줄로 생각했던 주변의 변화들과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연결시키기 시작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질병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여, 미생물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미생물 병원설(germ theory of disease)’을 제안하였다.

2000년이 넘게 질병은 개인이 저지른 죄악과 악행의 대가로 받는 천벌이라고 믿었기에 그 당시 사람들 대부분은 미생물 병원설은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한 동네에 아픈 환자들이 갑자기 많이 생기면 보통 사람들은 악마가 시궁창이나 습지에서 악취의 형태로 나와서 병을 일으킨다고 믿을 정도였으니,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공기를 떠다니며 동식물을 감염시키고 옷과 음식 등에 남아 있다가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전달된다는 이야기에 어떻게 수긍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조롱 섞인 의심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미생물 병원설이라는 신 개념을 뒷받침할 정보를 차츰 쌓아가고 있었다.

미생물이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임을 확실하게 밝힌 사람은 독일의 코흐(Robert Koch, 1843~1910)였다. 의사였던 코흐는 유럽에서 소와 양에게 치명적인 탄저병의 원인을 밝히는 경쟁에서 프랑스의 파스퇴르와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1876년, 탄저병으로 죽은 가축의 피에서 막대 모양의 세균(탄저균, Bacillus anthracis)을 발견한 코흐는, 그 이듬해에 이 막대균이 탄저병에 걸린 동물의 피에서는 항상 관찰되지만 건강한 동물의 혈액에는 없다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특정 세균의 존재는 그 병으로 인한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세균이 질병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코흐는 좀 더 적극적인 실험을 했다. 즉 탄저병에 걸려 죽은 동물의 피를 뽑아서 건강한 동물에 주사한 것이다. 코흐의 예상대로 그 동물은 탄저병으로 죽었다. 그는 이 실험을 여러 번 반복했고, 항상 같은 결과를 얻었다. 과학적 증명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가 해당 실험 결과의 반복성(재현성)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코흐는 병들어 죽은 동물의 피에 있는 막대균을 동물의 몸이 아닌 인공배지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키우는 데 성공하였고, 이렇게 배양된 세균이 여전히 동일한 탄저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코흐 원칙

코흐가 발견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1) 특정 질병에 걸린 모든 동물의 몸에는 동일한 병원체가 발견되어야 하고, 2) 병에 걸린 동물에서 원인 미생물을 분리하여 순수하게 배양할 수 있어야 하며, 3) 배양된 미생물을 건강한 실험동물에 주입하면 같은 질병을 일으켜야 하고, 4) 그 미생물이 감염된 실험동물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그림 1). 이를 ‘코흐 원칙(Koch’s postulates)’이라고 부르는데, 감염성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연구의 기본 틀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역학 조사에서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원칙을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병원성 미생물은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맞추어 주어야만 자란다. 어떤 것들은 아예 인공배지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맹독성의 매독균과 한센병(나병)의 원인균 등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또한 절대기생성 세균류와 바이러스 병원체들도, 숙주 세포 내에서만 증식하기 때문에 인공배지에서 배양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런 병원성 미생물의 배양이 어렵다는 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키우기 쉽다는 것은 아무 데에서나 잘 자랄 수 있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무심코 뱉은 침 속에 있는 맹독성 병원균이 길바닥에서 마구 자란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또한 일부 감염성 질병은 몇 가지 다른 병원체에 의해 생길 수 있으며 그 증상도 모두 같다. 그리고 결핵균처럼 여러 기관(폐, 피부, 뼈, 내장 등)에 병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성 미생물도 코흐 원칙에서 벗어난다. 무엇보다도 코흐 원칙을 논할 때 윤리적인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처럼, 어떤 병원체는 사람에게만 병을 일으키고, 그 밖에 다른 알려진 동물 숙주가 없다. 감염된 혈액의 수혈과 같은 의료 사고로 인해 코흐 원칙의 세 번째를 확인시켜 주는 안타까운 일이 생기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코흐 원칙을 확인하겠다고 HIV를 건강한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감염시키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전쟁의 시작

미생물과 질병 사이의 관계가 확립되자, 그 다음 목표는 감염된 동물이나 사람에게 손상을 주지 않고 병원성 미생물을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를 알리는 신호탄은 독일의 세균학자인 에를리히(Paul Ehrlich, 1854~1915 )가 쏘아 올렸다. 의대생 시절부터 환자에게는 해가 없고 병원균만을 죽일 수 있는 ‘마법 탄환(magic bullet)’에 대해 생각했던 에를리히는 수백 개의 물질을 조사하다가, 1910년 606번째 실험에서 마침내 매독을 치료할 수 있는 약물 합성에 성공했다. 살바르산(Salvarsan; 사람을 구한다는 뜻의 salvation과 비소를 뜻하는 arsenic의 합성어)이라고 명명된 이 약물은 한 순간 쾌락의 대가로 받았던 잔혹한 형벌에서 인류를 구해냈고, 페니실린이 나올 때까지 약 30년간 매독 치료제로 사용되었다.

살바르산과는 대조적으로 최초의 항생제3는 우연히 발견되었다. 1929년 스코틀랜드 의사이자 세균학자인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은 연구를 위해 세균을 배양하던 배지에 곰팡이가 자란 것을 보고 버리려다가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푸른 곰팡이로 오염된 주위로는 세균이 자라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에 이 곰팡이에는 페니실리움 크리소게눔(Penicillium chrysogenum) 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1928년 플레밍은 이 곰팡이가 분비하는 세균 성장 저해제를 페니실린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질병의 치료가 아니라, 그의 연구에서 세균의 성장 조절에 사용할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페니실린은 발견된 지 1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실용화되었고, 대량 생산은 1941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성공했다. 그리고 페니실린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처음으로 투입되어 부상당한 연합군 장병들이 세균에 감염되는 것을 막아줌으로써 연합군의 전쟁 승리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그림 2). 이것뿐만 아니라 페니실린은 매독을 비롯한 많은 전염성 질병 치료에도 탁월한 효능을 보였다.

페니실린의 뒤를 이어 수많은 마법 탄환이 줄지어 발견되면서, 곧 인류는 병원성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완승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감과 자만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미생물은 생각처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불의의 일격을 받았던 그들이 전열을 정비하여 ‘항생제 내성’이라는 엄청난 무기로 무장을 하고 반격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이들에 맞서 싸울 탄환이 점점 소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생물이 내성을 획득하는 속도가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던 것이다. 급기야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는 슈퍼박테리아(Super Bacteria)까지 등장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시름은 깊어지고 머리는 복잡해진다. 분명한 사실은 미생물에 맞서는 우리의 전략과 자세를 획기적으로 바꾸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잊고 있었던 사실

현재까지 발견된 최고(最古)의 생명체 화석은 35억 년 전쯤의 세균의 것이다. 최초의 생명체가 정확하게 언제 탄생했는지는 모르지만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들이 적어도 35억년 동안 생명의 진화를 주도해왔다는 것은 확실하다. 가장 혁신적인 사건은 산소를 발생하는 광합성 미생물의 출현이다. 이로 말미암아 산소를 이용하여 호흡하는 생물의 진화가 가능해졌다. 화석 기록 증거에 의하면 지구 대기 중에 산소가 대기에 축적되는 시점부터 다양한 생물체들이 급속도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즉 미생물이 없었다면 지구상의 다양한 삶은 애당초 시작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확증된 셈이다.

생각해 보면 미생물학은 미생물과의 전쟁을 통해서 발전해온 학문이다. 그리고 이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생물을 전염병과 연관시켜 우리의 생명을 호시탐탐 노리는 살인마로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세상에도 선한 사람만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듯이 미생물의 세계에도 못된 것(병원성 미생물)들이 있고, 이들이 인류의 보건에 위협이 된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극소수 병원성 미생물의 해악이 너무 부각되어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대다수의 미생물이 함께 매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는 속담처럼 몇 종류의 병원성 미생물 때문에 모든 미생물을 병원체로 오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양한 대사 능력 덕분에 심해의 화산 분화구에서 동물의 소화관에 이르기까지 미생물은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 중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미생물의 다양성은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의 다양성을 합친 것보다도 크다. 그러나 이 많은 미생물 중에 현재의 기술로 배양할 수 있는 것은 약 1퍼센트에 불과하다. 자연계에는 아직 우리가 접하지 못한 무수한 미지의 미생물들이 있다. 인간이 환경을 침범해 나가면서 더 많은 생물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고 또한 이를 파괴하게 되며, 나아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미생물 세상의 균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미생물의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면 그들은 변화하고, 그러면 다시 우리가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미생물과의 조화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미생물 없는 삶은 곧 종말이라는 것이다. 미생물은 우리가 함께 할 수 없는 적이 아니라 함께 해야만 하는 동반자다. 이것이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의 주제다.

<다음호에 3부가 계속 연재됩니다>

 

vol. 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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