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세소식

[시네마, 필름, 무비] 목적지에 해답은 없고요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4-03-22

목적지에 해답은 없고요:

<미스 리틀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 2006)

글로벌인재대학 김유미 교수



한 남자아이가 달리던 봉고차 안에서 몸을 뒤틀며 괴로워합니다. 차 좌석을 발로 차고 흔들고 천장을 치고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듯이 난동을 부리던 그는, 차가 멈추자마자 뛰쳐나와 한참을 달리다 주저앉아 울부짖습니다.

“Fuck!”


이 남자아이의 이름은 드웨인이고, 9개월 동안이나 가족들과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드웨인의 침묵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전투기 조종사 후보가 될 때까지는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는 침묵의 맹세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차 안에서 우연히 자신이 색맹이며, 색맹인 사람은 조종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벼락같은 소식에 드웨인은 차에서 뛰쳐나가고 멀리서 바라보는 아버지, 어머니, 삼촌에게 차례차례 패배자라고 욕설을 퍼부으며 소리칩니다. 사실 이 가족은 지금 7살 먹은 딸 올리버를 어린이 미인대회에 참가시키기 위해 리돈도 비치(Redondo Beach)까지 먼 길을 가는 도중입니다. 대회 접수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야 하는데, 중간에 드웨인이 차에서 달아나 버린 겁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조종사가 되기를 바랐는데, 알고 보니 학교에 들어갈 자격조차 없었던 거죠.


이 가족에서 안타까운 사람은 드웨인 혼자가 아닙니다. 아버지는 자신만의 논리가 담긴 <9단계 성공법>이라는 책을 내려고 부단히 애쓰지만, 곧 연락하겠다던 편집자는 감감무소식입니다. 안타까운 사람으로는 드웨인의 삼촌도 뺄 수 없죠. 삼촌은 본인의 학문적 성과가 경쟁자에게 뒤쳐지고, 사랑했던 애인이 변심해 경쟁자에게  떠나버리자 크게 절망하며 자살을 시도합니다. 자살이  실패로 끝나자, 그는 갈 곳이 없어져 누나의 집에 얹혀살게 됩니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모두 자신만의 목표를 갖고 최선을 다하지만, 일은 좀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감독이 이 영화를 쉽게 만들고자 했다면, 이들의 간절한 목표를 달성하게 해 줄 수 있었겠죠. 드웨인은 조종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아버지의 책은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삼촌을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나게 해 주면요. 하지만 이 영화는 안이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들은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서 현실에 직면하는 쓰라린 순간을 맞이합니다. 몰골이 엉망진창인 삼촌은 휴게소에서 변심한 전 애인을 만나고, 그가 자신의 경쟁자와  다정히 차를 타고 가는 것을 바라봅니다. 자살로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려고 했던 삼촌은 끔찍한 만남을 통해 초라한 자신의 모습과, 사랑했지만 마음이 떠난 전 애인이라는 현재를 정말 ‘보게’ 됩니다.


참으로 씁쓸한 경험을 하는 것은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행 도중 아버지는 그토록 기다리던 편집자를 찾아내게 되는데, 편집자는 전혀 바쁘지 않고 동행들과 노닥거리고 있었죠. 아버지가 따져 묻자 편집자는 “너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 아무도 너의 책을 사지 않을 거다. 네 책은 끝났다”고 대답하고, 아버지는 울다시피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노력했으니 절대 실패하지 않으리라고 믿었는데, 결국 실패로 돌아간 상황은 그들에게 확실한 좌절을 줍니다. 그러나 좌절이 그들을 파괴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목적지를 향한 과정에서 자신들이 옳다고 믿었던 방향이 잘못되었고, 미련이 남아도 몸을 돌려 새로운 방향을 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미국 영화에서 가족은 종종 해체된 상태로 나타납니다. 이 가족도 예외는 아닙니다.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드웨인, 변변한 수입도 없이 전망 없는 책의 출판에만 매달리는 아버지와 이런 남편을 의심쩍어하는 어머니, 마약을 하며 걸핏하면 화를 내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가족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해하거나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러한 기대에 돌을 던집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가족 구성원이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가족이 굴러가지 않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영화의 장치가 바로 그들이 탄 봉고차입니다. 이 봉고차는 수동기어로 작동하는 고물인데,  결국 얼마 못 가서 길에서 퍼져버립니다. 이 차를 움직이게 하려면 차에 일정한 속도가 붙어야 합니다. 가족들은 차가 정차하고 다시 출발할 때마다 모두 내려 함께 차를 밀다가 하나하나 차에 올라타는 방식으로 간신히 차를 몰고 갑니다. 로드 무비에서 교통수단이 상징적 의미가 있듯이, <미스 리틀 선샤인>에 등장하는 폐차 직전의 봉고차는 붕괴의 위험에 처한 가족의 비유입니다. 그냥 있으면 가족은 굴러가지 않습니다. 유지되지도 못하죠. 모든 사람이 같이 힘주어 밀고, 체력이 약한 사람을 배려해 먼저 차에 타게 하고, 멈출 때 힘껏 잡아당겨야 합니다. 그것도 최선을 다해서요. 가족을 유지하려면 개개인이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희생할 때도 있어야 합니다. 어린 올리버부터 자살 시도로 손목을 다친 삼촌까지 함께 몸으로 차를 미는 것처럼요. 








한국에 이 영화가 소개될 때, 제가 인상 깊게 본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가족 하나하나를 문제 인물로 소개한 부분인데, 영화는 어머니에 대해 “저녁 식사로 2주 동안 닭튀김(치킨)만 내놓는” 점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내용상 어머니는 문제 인물로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 인물’이라고 한다면 가족 구성원 대부분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쳐야 할 텐데, 어머니는 식사를 챙겨주고, 아들과 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며, 절망에 빠진 남동생을 돌보아주는 등 다정하고 살뜰한 사람입니다. 저녁 식탁에 올라온 치킨은 매사 불평만 일삼는 할아버지에게만 문제가 될 뿐, 다른 가족들은 그러려니 합니다. 어머니는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샐러드도 만들어주고 조금이라도 샐러드를 먹으라고 권유도 합니다. 다정한 어머니가 문제가 아니라면 치킨에게 죄를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건강식 재료로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을 손수 준비해야 좋은 어머니라는 한국 사회의 은근한 시선에 죄를 물을 수도 있겠지요. 







<미스 리틀 선샤인>은 억지스럽지 않아서 즐거운 영화입니다. 다루는 내용은 가끔 무겁고 시선은 종종 냉소적이지만, 배우의 연기력이 뛰어나고 각본도 적절합니다. 괴팍한 할아버지가 마음을 돌려 아들을 따듯하게 위로했다고 해서 다른 가족들도 무능한 남편이자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지는 않습니다. 가족 사랑을 다룬 영화가 흔히 보여주는 과도한 정서적 자극이나 눈물 없이 자연스럽게 가족의 화합을 끌어내는 점이 돋보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가족은 리돈도 비치에 도착하고 올리버는 미인대회의 무대에 서게 됩니다. 동그란 눈과 오동통한 배에 각오를 단단히 다져 넣은 올리버가 대회에서 수상할 수 있을지는 영화에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 네이버 오디오클립으로 듣기

 

vol. 635

연세소식 신청방법

아래 신청서를 작성 후 news@yonsei.ac.kr로 보내주세요
신청서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