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를 위해 더욱 자유롭고 창의적인 공간으로

백양누리 리브랜딩 프로젝트를 이끈 디자인센터 전수진 센터장

2023년, 우리 대학교는 연세의 랜드마크, ‘백양누리’의 리브랜딩 사업을 마쳤다. 백양누리가 탄생한 2015년부터 지금까지, 연세를 오가는 모든 이들의 나들목으로 자리 잡은 백양누리는 리브랜딩 이후 ‘휴식하며 영감을 떠올릴 수 있는 창의적인 환경’까지 갖춘 공간이 됐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한 우리 대학교 디자인센터의 센터장인 전수진 교수(커뮤니케이션대학원 커뮤니케이션디자인전공)를 만나 이번 사업의 기획 의도와 더불어 백양누리에 대한 앞으로의 기대를 들어 봤다.

백양누리의 새로운 ‘얼굴’ 만들기

전수진 교수는 2022년 3월부터 디자인센터장을 맡고 있다. 디자인센터는 우리 대학교 UI의 시행과 관리 업무, 그리고 교내 안내 사인물 설치 및 보수 작업을 담당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디자인이 가장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는 커뮤니케이션 매체로 꼽힙니다. 말과 글이 주는 표현을 넘어 감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디자인의 역할은 점점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전의 디자인은 심미적 측면만을 부각했지만, 이제는 디자인으로 사용자의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디자인센터 역시 캠퍼스 곳곳을 디자인할 때 미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경험적 측면을 고루 생각하며 작업합니다.”

(사진 제공: 디자인센터)

백양누리 리브랜딩 사업에서는 일차적으로 브랜딩과 사이니지(signage) 작업,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문화 공간 조성 작업이 진행됐다. 백양누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핵심 상징 중 하나는 ‘계단’이다. 잠시 머물러 가는 쉼터, 그리고 한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의 연결을 의미하는 ‘계단’은 백양누리의 자음인 ‘ㅂㅇㄴㄹ’와 만나 새로운 브랜드 로고가 됐다. 계단을 형상화한 디자인은 다양한 세대와의 공감을 지향하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백양누리를 모던하고 심플한 형태로 나타낸다.

또한 백양누리에서는 학회, 연주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가 수시로 열리기 때문에, 오랜만에 방문한 동문이나 방문객이 길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사용자 편의성을 갖추는 것도 중요했다. 이러한 1차 브랜딩과 사이니지 작업 이후에는 더욱 자유로운 소통 공간을 마련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백양누리에 여러 공간들이 있는데 입구 쪽에는 자유롭게 쉴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간이 테이블이 있었지만, 더 편안하게 쉴 수 있고 이 공간에 대한 경험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자리로 만들어 보자고 의견을 모았죠. 그래서 입구를 중심으로 안과 밖 공간까지 공간 조성 사업으로 확장하게 됐습니다. 따뜻한 봄이 되면 학생들이 삼삼오오 앉아 자유롭게 소통하며 무엇이든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죠. 새로운 아이디어와 콘텐츠가 탄생하는 소통의 장이 되길 기대합니다.”

백양누리 입구 바깥쪽에는 지상과 연결되는 기존의 선큰(Sunken) 계단을 재구성했다. 중간중간 테이블을 놓아 계단 자체가 의자 역할을 하면서 누구든 혼자서, 혹은 친구와 함께 앉아 휴식과 소통을 경험할 수 있다. 백양나무 잎사귀가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패턴도 보다 자유로운 상상과 영감을 돕는다. 입구 안쪽에는 새로운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했다.

지난여름 본격적으로 시작된 리브랜딩 작업은 3개월의 작업을 거쳐 2023년 11월 말에 완료됐다. 탁 트인 널찍한 공간에 비해 앉을 곳이 부족했던 백양누리에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테이블과 의자가 생기자, 연세인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특히 테이블은 직사각형이 아닌 유연한 곡선이 더욱 눈에 띄는데 이 역시 의도된 디자인이었다.

“테이블 높이에 따라 앉거나 설 수 있고, 테이블과 의자에 앉을 때 어디에 어떻게 앉느냐에 따라서 멀리 앉을 수도 있고 가까이 앉을 수도 있죠. 다양한 소통 방식과 관계를 탐색할 수 있어서 재미있다는 해석을 해 주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백양누리는 연세의 새로운 ‘부캐’

디자인센터와 전수진 센터장이 백양누리의 리브랜딩을 추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전 센터장은 백양누리는 이미 그 자체로 정말 좋은 문화 공간이지만, 그에 걸맞은 ‘얼굴’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백양누리는 편의 시설뿐 아니라 콘서트홀과 전시홀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굉장히 흥미로운 곳인데, ‘얼굴’이 없더라고요. 물론 학교의 공식 UI에 맞춘 안내판은 있었지만, 공식적이고 전통적인 느낌이라 백양누리의 자유로운 문화를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학교의 고유한 전통과 역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유로움과 창의성이라는 연세의 또 다른 아이덴티티를 제한 없이 나타낼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여러 미디어에서 부상한 ‘부캐(부캐릭터)’의 개념을 떠올리게 됐다.

“처음에는 ‘부캐’가 왜 필요한지 의문스러웠지만(웃음), 점점 그 개념이 참 유용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저는 우리 대학교 동문들이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곤 해요. 학계, 법조계, 경제계, 산업계는 물론이고, 음악, 영화, 미술 등 다양한 문화 산업 전반에서 활동하는 동문들을 보며 우리 대학교에는 정말 훌륭한 문화 콘텐츠가 많다는 것을 느끼죠. 자유롭고 창의적인 학생들과 동문들의 다양한 활동을 담아내려면 전통적인 로고 외에 또 다른 얼굴, 그야말로 ‘부캐’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대학교에도 많은 ‘부캐’들이 생겨나면 좋겠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백양누리는 자유와 창의, 소통을 극대화하는 연세대학교의 ‘부캐’ 중 하나가 아닐까요?”

백양누리가 연세인과 더 감성적이고도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이번 백양누리 리브랜딩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학생들과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에 초점을 맞췄다. 전 센터장에게 이 여정은 연세만의 고유한 가치, 의미, 브랜딩에 대해 숙고하며, 앞으로 이 가치들이 어떻게 확장할 것이고, 어떤 경험으로 진화할 것인지 깊이 생각하는 기회였다.

“이번 리브랜딩이 단순히 시각적인 로고나 장식물로서의 디자인으로만 끝나지 않고 더 적극적인 활용과 변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백양누리 브랜드를 적용한 기념품이나 굿즈를 제작해도 좋고, 공간을 활용한 새로운 액티비티나 이벤트를 기획할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 대학교에는 백양누리뿐 아니라 알뜰샘, 고를샘 등 연세인들만의 소중한 브랜드로서의 공간들이 있어요. 이런 공간들의 브랜드 가치도 여러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양누리 선큰 계단에 숨겨진 비밀?

마지막으로 전수진 센터장은 백양누리 선큰 계단에 작은 비밀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백양누리 입구의 선큰 계단에 공간 전체의 하이라이트를 숨겨 놨어요. 비밀은 축광석과 축광 페인트인데요. 축광석과 축광 페인트는 낮에는 빛을 담았다가 밤에 발광을 해요. 저기 대리석처럼 보이는 돌이 사실은 빛을 담아 저축하는 축광석이죠. 선큰 계단과 조형물에 사용한 축광 페인트도 어둠이 깊어지면 반짝반짝 빛이 나죠. 지금은 추운 겨울이라 보기 힘들지만, 계절이 바뀌고 학생들이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스스로 발견하게 될 거예요. 단번에 드러나지 않지만, 점차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놀라움이 공간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한 번에 다 보여 주는 것보다 탐색을 통해 드러나는 요소가 많을 때, 그 공간이 훨씬 더 재미있거든요.”

용기와 도전, 자유의 창의가 만나는 공간이 되길

전 센터장이 생각하는 연세의 브랜드는 자유로움과 창의성이다. 그는 똑똑할 뿐 아니라 톡톡 튀는 학생들, 보수성에 갇혀 있지 않은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연세다움을 느낀다고 한다. 백양누리 프로젝트에는 이 창의적인 학생들이 더 큰 도전을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리브랜딩을 시작하며 ‘백양나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사하니, 불이 나더라도 잘 타지 않고, 타더라도 재생이 잘 되는 생명력 강한 수종이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쭉쭉 승승장구하는 것보다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는 회복 탄력성이야말로 훨씬 더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백양누리가 자유와 창의성, 도전과 용기가 만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 공간에서 교내 구성원뿐 아니라 동문과 방문객들까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교류와 소통이 활성화됐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동문들께서 방문하셔서 연세의 새로운 공간을 기억해 주시고, 경험해 주시길 바랍니다.”

백양누리 리브랜딩 사업과 더불어 디자인센터는 작년 봄, ‘조구만 스튜디오’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공룡 캐릭터 설치물로 캠퍼스 곳곳에 밝고 따뜻한 생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연세인들의 호응에 힘입어, 전수진 센터장은 계속 우리 대학교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시각화하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연세다움의 가치를 널리 알릴 예정이다.

“‘조구만 스튜디오’와 진행한 작업을 많은 연세인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단순히 캐릭터가 귀엽고 예뻐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위로와 격려, 공감의 메시지에 반응해 주신 것이죠. 디자인센터는 앞으로도 여러 방식으로 구성원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