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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다양한 경험의 음표들로 아름다운 영향력을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3-12-26

다양한 경험의 음표들로 아름다운 영향력을

국내 정상의 뮤지컬 작곡가·음악 감독, 하남문화재단 장소영 대표(작곡 90)



지난 5월 하남문화재단은 새로운 대표 이사로 장소영 음악 감독의 선임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뮤지컬 작곡가이자 스타 음악 감독, 2018 평창 동계 올림픽과 2012 여수 세계 박람회 등 국제 행사의 음악 감독으로 유명한 그가 지역 자치 단체 산하 문화 예술 재단의 수장으로 새롭게 도전하는 행보는 문화 예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전해 줬다. 우리 대학교 작곡과 졸업 후 국내 정상의 뮤지컬 작곡가와 음악 감독이 되기까지의 여정과 하남에서 그가 꾸는 꿈에 대해 듣고자 송년 공연 준비가 한창인 하남문화재단에서 장소영 대표를 만났다.



방송국과 연극판을 누비던 아르바이트생


“어렸을 때 피아노를 조금 잘 쳤나 봐요. 부모님과 주위에서 ‘이 아이는 피아니스트가 될 거다’라고 확신하셨고, 저도 자연스럽게 예중과 예고에 진학하며 피아니스트를 준비했죠. 그런데 고3에 올라갈 즈음, 한 콩쿠르에서 연주를 들어가면서 첫 음을 잘못 치고 말았어요.”


시작도 하기 전에 연주가 실패한 셈이었지만, 그는 그 상황을 모면해 보고자 곡 전체를 잘못 친 첫 음에 맞춰 전조를 하며 연주했다. 순식간에 즉흥 변주곡을 치게 된 상황이었다.


“심사 위원들이 제발 그냥 지나가 주시기만을 바랐지만 심사 위원들께서 모르실 리 없었죠. 그런데 한 분께서 제게 혹시 작곡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어요. 저는 잘 만들어진 곡을 충실하게 연주하는 것보다 제 스스로 만들고 표현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는 작곡으로 진로를 바꿨다. 뒤늦게 바뀐 전공으로 입시 준비도 완전히 달라지고 작곡 이론에 대해 다시 배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지만 작곡의 세계가 너무 흥미로워 힘든 줄 모르고 공부에 몰두했다. 우리 대학교 작곡과에 입학한 후로도 다른 음대 학생들과 조금은 다른 캠퍼스 생활을 했다.


“등록금은 내 손으로 벌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침 <열린음악회> 등 세미클래식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방송국에 클래식 작곡 전공자가 필요한 아르바이트 일감이 많았어요.”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이전, 복잡한 오케스트라 악보에서 악기별 파트를 손으로 일일이 옮겨 쓰는 ‘사보’ 작업부터 마감이 급한 편곡 작업 등 방송국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일들을 도맡아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바로 방송국으로 달려갔어요. 방송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점차 연극 등 공연계에서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히든 작곡가’에서 작곡가 장소영으로


그렇다고 바로 스타 작곡가로 부상한 것은 아니었다. 졸업 후 10년 동안 그는 방송은 물론, 연극과 영화계를 넘나들며 일했지만, 메인 음악 감독의 뒤에서 이름 없이 활동하는 ‘히든 작곡가’였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작업하는 가운데 천만 영화가 탄생하기도 했지만, 엔딩 크레딧에는 가장 유명하거나 대표적인 음악 감독의 이름만 들어가고 ‘장소영’이라는 이름은 구석 말미에 나오거나 그마저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 그가 공연계에서 크게 이름을 알린 계기는 창작 뮤지컬 <하드록 카페>의 재연 공연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음악 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창작 뮤지컬의 재연 공연이었는데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저작권 이슈로 초연 때 사용한 음악을 거의 못 쓰게 됐어요. 공연이 취소될 위기였는데 제가 곡을 쓰겠다고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어요. 다들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저는 ‘모르면 용감하다’라는 말처럼 무조건 뛰어들어 며칠 밤을 새워서 노래들을 만들었어요.”


모두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말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뮤지컬 <하드록 카페>는 무사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랐고 객석의 반응도 뜨거웠다. 작품 무산의 위기에서 새내기 음악 감독이 이뤄 낸 기적에 다들 감탄과 박수를 보냈다. 마침내 음악 감독, 작곡가 장소영의 이름이 공연계에 회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가수다>와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의 음악까지


“제가 작곡한 곡을 제 이름으로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했습니다.” 


비로소 이름을 알린 그는 대학로에서 전무후무한 히트를 일으킨 뮤지컬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했다>, <싱글즈> 등 작품을 잇따라 성공시키면서 대학로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음악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투란도트>, <라카지>, <피맛골 연가> 등을 거치며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음악 감독으로 꼽히게 되고, 더 뮤지컬 어워즈, 한국뮤지컬대상, 문화체육부 장관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지만, 그는 ‘잘 모르던 시절 그저 열심히 하던 일들이 신기하게 어우러져 좋은 결과를 냈다’며 겸허한 목소리로 말했다.


“돌이켜보면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각종 돌발 상황이나 긴급 상황에서도 마감 일정을 칼같이 지키기 위한 순발력과 집중력을 쌓는 훈련이 저절로 됐어요. 각종 연극의 음악을 수십 곡씩 만들어야 했던 아르바이트 경험은 말할 것도 없죠. 그 와중에 학교 수업과 과제도 소홀히 할 수는 없었어요. 그때의 경험과 훈련들이 저도 모르게 조각처럼 맞춰져서 음악 감독 일을 할 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큰 화제를 모았던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의 자문 위원으로도 이름이 알려졌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보컬리스트들과 경계를 나누지 않고 자유롭게 교감하며 신선한 선곡과 편곡으로 가수들의 알려지지 않은 매력들을 세상에 드러냈다. 이후 멀티미디어의 역할이 크게 부각된 2012 여수 세계 박람회의 음악 감독으로 세계인과 소통한 그는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선수들 입촌식부터 모든 퍼레이드, 이후 패럴림픽까지 수많은 음악을 진두지휘했다(이 곡들은 장소영 대표의 유튜브 채널 ‘장소영의 음악저장소’에 일목요연하게 저장돼 있다). 이렇게 큰 국제 행사는 소통해야 하는 상대만 수백 명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지만, <열린음악회>에서 편곡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부터 성실하게 쌓아온 그의 경험이 이번에도 큰 힘이 됐다.



하남에서 꿈을 꾸다


TV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 위원, 음악 회사 TMM의 대표를 맡으며 바쁜 와중에도 뮤지컬 <인간의 법정> 작곡 등 한국 창작 뮤지컬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보였다. 중국 무대에 진출해 한국 창작 뮤지컬의 중국어 버전 공연은 물론, 중국 창작 뮤지컬에 작곡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력적인 음악 활동을 펼치던 그가 새로운 길로 하남문화재단의 대표직을 맡자 많은 사람이 놀랐다고 한다.


“친한 배우들, 공연 관계자들로부터 연락이 많이 왔어요. ‘작곡가님, 어디 문화 센터 가셨어요?’라는 전화도 받았죠. 공연계에 몸담은 사람들에게도 <하남문화재단>이라는 이름은 조금 낯설었나 봐요.” 


하남문화재단은 ‘하남문화예술회관’과 ‘하남역사박물관’을 운영하며, 지역민의 문화 예술 향유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문화 기관이다.


“제 자신에게도 뜻밖의 도전이지만,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이 시기에 이런 공적인 일을 한다면 이 지역에는 저의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또 제게도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이 경험이 중요한 거름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술에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고용 창출의 기회도 만들 수 있고, 지역의 공공 영역에서 좀 더 큰 의미의 프로듀서와 같은 일을 한다고 볼 수도 있죠. 공연과 방송에서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지금, 공공의 영역에 들어와서 지역의 문화 예술 부흥에 기여하는 것도 뜻깊은 일이라는 생각으로 결심했습니다.”



뮤지컬과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보다 조금은 더 진지하고 조심스러워진 목소리로 그는 하남문화재단에서의 포부를 밝혔다.


“하남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독특한 개성과 가치를 가진 도시입니다. 신도시 주민으로 주된 활동을 서울에서 하고 하남을 베드타운으로만 사용하는 주민들도 계시고, 하남에서 오랫동안 뿌리내리고 살아오신 원도심 주민들도 계시죠. 두 그룹은 하남에 대한 경험과 기대가 달라요. 이 두 그룹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우선 서울에 뒤지지 않게 문화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려야 해요. 가까운 서울에 가면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하남에서도 충분히 자족이 된다는 생각이 들도록 말이죠. 또 원도심에서 3대, 4대째 사시는 주민들을 위해서 외적으로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이 안에 있는 지역 예술가들의 지원에도 더욱 힘써야 합니다.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니, 모든 시민에게 더 나은 생활을 드려야죠. 또 신도시에는 과밀 학급이 문제가 될 정도로 초등학생들이 굉장히 많아요. 이 어린이들을 위한 콘텐츠 개발, 그리고 누구나 쉽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지난가을, 장소영 대표와 하남문화재단은 <뮤직 인 더 하남(뮤직 人 더 하남)>이라는 타이틀의 축제를 열었다. 유명한 뮤지컬 배우와 트로트 가수 등 게스트 라인업도 화려했지만, 하남시 내 어린이 합창단, 성인 합창단 등 시민 문화 단체들의 무대도 다양하게 준비된 시민 중심형 축제였다.


“하남에 있는 어린이 합창단, 성인 합창단, 지역의 버스킹 뮤지션 등 하남 시민이 중심이 되는 축제를 꾸미려 노력했어요. 그랬더니 관객이 5천 명 넘게 모였어요. 다 같이 무대에 서고 함께 즐기는 축제였는데 기대보다도 더 반응이 좋았어요. 무대에 오른 뮤지컬 배우들이 ‘하남 시민분들 덕분에 더 좋은 에너지를 받아 간다’며 행복해할 정도였거든요. 앞으로도 이런 축제를 많이 열어서 더 많은 시민이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좋은 콘텐츠를 만들 예정입니다.”



연세라는 좋은 울타리


그는 우리 대학교에 대해 ‘학창 시절 이후로도 살아가며 굉장히 큰 힘이 되는 둥지이자 참 좋은 울타리’라고 말한다.


“우리 대학교에서 공부했다는 것만으로 잘 모르는 사람들도 저를 어느 정도 믿어 주는 게 있어요. 그게 얼마나 큰 힘이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말씀드렸듯 저는 정작 학창 시절에는 수업만 끝나면 일하러 달려가느라 연세를 충분히 누리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졸업 25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면서 연결돼 총동문회 문화예술분과에 가게 됐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연세 선배님들을 뵈면서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물질적인 것들을 아낌없이 내어놓으며 연세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애쓰시는 분들을 보면서 굉장히 놀랐어요. 거액을 기부하시면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과시나 가식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며 저를 돌아보게 됐죠.”


그는 우리 대학교를 생각하면 드라마 <미생>에 나왔던 명대사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 드라마에서 제일 멋있다고 생각했던 말이 ‘잊지 말자. 나는 엄마의 자부심이다’라는 대사였어요. ‘뭐 이렇게 멋있는 말이 있어?’ 하면서 제가 울컥했었죠(웃음). 그런데 연세대학교에 대해서도 그래요. 배타적인 우월감이 아니라, 내가 우리 엄마의 자식이기 때문에 행동도 더 조심하고, 또 자존감과 자존심을 놓지 않듯, 우리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자긍심은 내가 헛된 일, 잘못된 일을 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행동이 달라지는 그런 계기가 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경험들이 음표가 돼 완성하는 작품


“뮤지컬 배우는 자신의 역에 집중하고 매달리지만, 작곡가는 모든 배역이 직접 돼 봐야 해요. 주인공의 입장에서도 노래하고, 때론 담배 파는 할아버지 단역의 입장에도 서 보죠. 그래야 그 역의 곡을 쓸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해 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또 음악 감독은 작가와 연출가, 그리고 배우들뿐 아니라 연주자, 또 뮤지컬 컴퍼니, 스태프 등 모두와 소통해야 하는 자리예요. 그렇게 지내 온 제 일들을 떠올리면, 어쩌면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소통과 이해가 제가 하남문화재단에 오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제가 여기에서 있었던 경험을 가지고 또 뭔가 다른 일을 찾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죠. 제 경험이 조각조각 맞춰져서 여기 하남시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참 좋겠죠?”


장소영 대표는 이날 인터뷰에서 ‘다양한 경험이 조각조각 맞춰지는’이라는 표현을 연거푸 사용했다. 열정과 열심으로 그가 걸어온 음악가의 길에서 모인 경험의 조각들이 하남시의 문화 예술을 책임지는 행정가의 자리에서도 더욱 빛나는 결과로 맞춰지길 응원한다.

 

vol. 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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