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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연세 통합의 의미를 돌아보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7-04-05

 

연세 통합의 의미를 돌아보다 

 

통합 1기 입학생 김우식 전 총장(화학공학 57), 박기일 명예교수(의과대학 57) 

 

 

 

김우식 

2000.8 ~ 2004.2 연세대학교 총장 

2004.2 ~ 2005.8 제27대 대통령비서실장 

2006.2 ~ 2008.2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장관 

2009.2 ~ 현재 (사)창의공학연구원 이사장 

2009.4 ~ 현재 (사)과학문화융합Forum 이사장

 

박기일 

1974.2 연세의대 졸업 및 同대학원 의학박사 

1995.2 ~ 2001.2 연세의대 외과학교실 주임교수 및 세브란스병원 외과부장 

2001.9 ~ 2002.2 세브란스병원 및 분당차병원 장기이식센터 소장 

1995 ~ 2001 대한이식학회 및 아시아이식학회 회장 

2001.10 ~ 현재 대한이식학회 명예회장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7년,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는 마침내 ‘연세대학교’라는 새로운 교명으로 재탄생한다. 당시 연세에 입학한 57학번 동문들이야말로 그 역사의 현장을 온몸으로 경험한 산증인일 것이다. <연세소식>에서는 연·세 통합 60주년이라는 뜻깊은 날을 맞아 그 의미를 조명하고자 사회의 귀감이되는 두 명의 57학번 연세인 김우식 전 총장과 박기일 명예교수를 만났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과학기술인으로 꼽히는 김우식 전 총장 은 대통령비서실장,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장관을 등을 지내며 오늘날까지 과학기술 발전에 힘쓰고 있다. 신장이식의 선구자로 불리는 박기일 명예교수는 국내 신장이식을 활성화하고 수십 명의 이식전문가를 양성해 학문 발전을 이끄는 등 의학 분야의 귀감이 되고 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교육 및 사회 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이들은 대담을 통해 연세 통합 60주년을 돌아보며 연세의 과거와 오늘, 나아가 미래를 함께 논의했다. 

 

 

Q. 통합 당시 시대상과 전반적인 캠퍼스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김: 당시는 전쟁이 끝난지 몇 년 되지 않은 때라 참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신촌로터리가 버스 종점이었는데 먼지가 풀풀 나고 비가 올 때는 진흙밭이었죠. 굴다리 옆에는 개천이 흐르고 공과대학을 넘어서는 목장길이라 소가 있었습니다. 당시 연세대학교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자연환경이었어요. 숲이 특히 아름다웠습니다.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수업을 들을 정도였으니까요. 

 

박: 정말 좋았죠. 신촌로터리에서부터 캠퍼스 건물이 빤히 보여요. 그런데 지금과 마찬가지로 눈으로 보이긴 하지만 거리가 정말 멀었죠. 늦었을 때 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특히 시험이 있는 날은 어찌나 멀던지요. 처음에는 좀 뛰어봤지만, 뛰어도 안 되는구나 하고 포기를 하곤 했습니다.(웃음) 지금은 너무 커져서 옛날같은 운치는 없어요. 

 

고등학교라는 별명은 있었지만 캠퍼스 분위기는 아주 좋았습니다. 그때 연세대학교는 이른바 ‘연희고등학교’라고 불렸어요. 대학에 들어가면 자유로울 것 같았지만 실상 들어와 보니 그게 아니었지요. 교복을 입고 가슴에는 연세대학교 배지를 달고 다녔죠. 학점이 안 나오면 그 다음 학기에 다시 딸 수 있는 게 아니라 낙제였어요. 실상 고등학교였죠. 장기원 선생님 등 특히 유명한 선생님들이 계셨지요. 

 

김: 장기원 선생님, 저도 참 생각이 납니다. 어찌나 엄격하시고 꼼꼼하셨던지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장석두’라는 별명으로 불렸지요. 당시 등교 시간에 건물 앞에 지켜서고 계셨는데 교복을 입지 않으면 수업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들어간 친구가 건물 뒤 유리창으로 교복을 던져주면 그걸 입고 들어가기도 했어요. 구두 조사를 하기도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굽이 닳지 말라고 쇠(징)을 박고 다녔는데 그 쇠가 건물에 닿는다고 징을 빼라고 할 정도로 애교심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그밖에도 최현배, 김윤경, 강필승 교수님 등 깐깐하기로 유명한 교수님들이 많았습니다. 

 

Q. 학창시절 특별히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 말씀해주 세요. 

 

박: 뭐니뭐니해도 연고전이죠. 이기고 지고는 둘째 문제였 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양교가 스크럼을 짜서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연대가 종로로 가면 고대는 을지로로 나오는 식이었어요. 진짜 낭만이었죠.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였을 겁니다. 지금도 연고전을 하긴 하지만 옛날 같진 않지요. 

 

김: 저도 연고전의 추억을 잊지 못합니다. 그 날은 다 미치는 날이에요.(웃음) 명동에서 스크럼을 짜고 몰려 있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분이 선배라며 박수를 쳐주고 데려가서 술을 사주기도 했어요. 당시 ‘열차집’이라는 빈대떡집에 우리들을 20명씩 데려가셨어요. 지금도 연고전이면 동문회장이 학교 정문에서 맥주를 나눠주곤 하는데 당시의 선배사랑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1957년 연고전

 

또 기억에 남는 건 1학년 당시 신입생 환영회입니다. 입학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선배들이 신입생 환영회를 해준다며 음식점이 아니라 루스채플 아래에 있던 수경원이라는 능으로 모이라고 하더군요. 선배들이랑 선생님들이 다 와서 사이다 한 병과 손가락 과자를 나눠줬습니다. 그게 60년 전 신입생 환영회였어요. 

 

제1회 교내체육대회

 

박: 개인적으로는 연세대학교에 두 가지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의과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성적장학금 수혜를 받아 6년 내내 등록금을 내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의과대학의 신세를 많이 졌지요. 또 하나는 우리 집사람을 연대에서 만났습니다. 의대 동기였는데 65년에 결혼해 지금까지 그 사람과 살고 있어요.(웃음) 이렇게 학교에 많은 신세를 져서 늘 이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당시 의과대학에서는 다소 취약했던 장기이식 분야를 선택해 열심히 연구해온 것 역시 나를 키워준 학교를 위해 뭔가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Q. 입학 후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연세대학교가 지켜오고 있는 전통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 무엇보다 연세대학교는 기독교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지켜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바탕이 학생들에게 기독교대학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는 채플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노천극장에서 전교생이 모여 채플을 들었는데 서로 누군지 모르지만 함께 지내며 유명한 선생님들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당시 채플에서 들었던 “연세는 연세인의 연세요, 이 나라의 연세다. 그리고 세계의 연세이어야 한다.”는 백낙준 선생님의 말씀은 감명깊이 남아, 제가 총장시절 연설 등에서 많이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전교생 채플

 

이밖에도 5월마다 하는 재상봉행사는 연세대학교만의 자랑이자 전통일 것입니다. 특히 총장공관 오찬에는 1,000명 이상의 25주년, 50주년 동문들이 오는데 교내 구성원들이 온 힘을 모아 식사를 대접하지요. 연세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75주년 행사도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박: 김 전 총장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역시 연세의 전통이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나눔의 전통일 것입니다. 예컨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아프리카 등 오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우리 졸업생이라 그런지 별난 구석이 많지요. 선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더불어 다른 대학과 차별화되는 연세만의 ‘풍’을 잘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연·세 통합 60주년이 오늘날 우리 대학사회, 혹은 사회 전반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박: 어느덧 연세가 통합된 지 60년이 지났습니다. 그 당시 백낙준, 김명선 선생님 두 분의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죠. 두 기관이 통합하면서 시너지 효과가 생겼습니다. 연세대학교는 의료원이 빠지면 이빨 빠진 종합대학이요, 세브란스도 연대라는 큰 틀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 자체로 발전의 한계가 있었을 겁니다. 당시의 통합이 오늘날 크게 발전한 기틀이 된 것이지요. 

 

그 통합의 중요성은 오늘날에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바이오산업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기간산업으로 클 가능성이 있는 분야이지요. 이는 나아가 임상과 기초를 합쳐서 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 연세대 역시 바이오산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태동이 되면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중요한 산업으로 발전할 것이며, 앞으로 60년의 시너지가 붙으면 연세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김: 그렇습니다. 그 당시 통합은 지금 보면 시대의 흐름을 앞서간 것이었습니다. 지금 시대의 흐름을 보면 융합과 통섭을 통한 경쟁력 도출이 중요해졌습니다. 연세대학교는 과거 통합을 바탕으로 오늘날 의생명융합연구를 비롯해 융합연구를 하기에 가장 좋은 여건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에는 4년제 대학이 200개 이상 되는데 연세 통합이 미래 대학 사회의 모델이 되리라 봅니다. 연세대학교의 통합이 한국 대학사회 발전의 시금석이 되길 기대합니다. 

 

Q. 대학 선배, 인생의 선배로서 연세의 청년들에게 조언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박: 그동안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분야에 가든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남보다 한 시간 일찍 나오고 한 시간 늦게 나오라”는 말이 있는데 단순한 것 같지만 이 말에는 진리가 숨어있습니다. 요즘은 정말 살기가 힘들고 사회적으로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자기 분야에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결국 극심한 경쟁에서도 승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좌절하지 말고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정진하기를 바랍니다. 

 

김: 저는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보다 성숙한 자아를 만들기 위해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기’를 당부드립니다. 건강 관리, 실력 배양, 인격 수양 등 다양한 방면에서 자신을 아껴주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타인과 더불어 사는 데 있어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먼저 베풀고 봉사한다면 이 세상의 갈등도 많이 해소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취업난 등으로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 생각하고 철저히 자기관리를 해보세요. 나아가 여유가 생긴다면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공헌하는 우리 연세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vol. 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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