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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연세 뉴스] 특별 기고: 윤동주 느낌의 진화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6-03-05

윤동주 느낌의 진화

 

정 명 교(국어국문학과 교수)

 

 

작년은 윤동주 순사 70주년이었고 내년은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다. 시기가 무르익어서인지 윤동주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 한 단계 도약하는 듯하다. 예전에 윤동주를 둘러 싼 해묵은 논쟁은 그의 시를 순수시로 볼 것인가, 저항시로 볼 것인가에 대한 시시비비였다. 그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옥사했다는 점에 주목한 사람들은 그를 ‘저항시인’으로 규정하였고, 섬세한 내면에 주목한 사람들은 그를 ‘순수 시인’으로 보았다.

 

그의 시에는 분명 피식민지인의 고뇌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내재되어 있었다. ‘십자가’, ‘쉽게 씌어진 시’는 그러한 심경을 아슬아슬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대체로 그런 생각들을 직정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 수양이라는 문제로 치환하였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분노의 외침이나 신랄한 풍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순결한 내성(內省)이 그 자체로서 파시스트 권력에 대한 저항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게 그의 시의 중요한 통찰이었다. 그런 깨달음에 근거하면 순수시/저항시의 이분법 자체가 도시 무의미한 것이 된다. 참된 삶에 대한 생각은 어떤 양태로 나타나든 최소한의 삿된 삶도 거부하게끔 한다. 중요한 것은 참됨이 정말 참될 수 있도록 자신의 삶 하나하나에 대해 샅샅이 살피고 다듬어서 그 행동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것이다. ‘서시’의 시구,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의 ‘한 점’과 “잎새에 이는 바람”이 가리키는 것이 바로 그 철저성과 진정성이라 할 것이다.

 

윤동주에 대한 최근의 새로운 이해는 바로 그러한 깨달음의 여파로서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가령 개봉 영화 <동주>만 해도 그렇다. 윤동주의 고뇌를 부각시키기 위해 친구 송몽규를 함께 조명하였다. 둘의 대조를 통해 영화는 두 가지 효과를 노린다. 한편으론 친구들 사이의 경쟁심을 보게 하여, 윤동주가 미리 점지된 무구한 영혼이 아니라 질투·호승심·연정·수치 등 보통 사람들의 감성을 공유하면서도 그런 감정들을 끊임없이 반추하면서 마음을 다스린 사람임을 알게 해준다. 보통 사람 윤동주의 고뇌는 관객에게 그대로 전이되면서 우리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보게 한다. 다른 한편으론 윤동주의 내면주의와 송몽규의 행동주의를 대비시킴으로써 부당한 시대와 싸우는 기본적인 두 자세를 성찰하게 한다. 이 태도들은 유사 이래 끊임없이 비교된 모본적 행위 유형으로서 둘을 한 자리에 놓으면 아주 다양하고 중층적인 궁리가 가능해진다. 내성과 행동은 서로를 제어하여 각각의 장단점을 부각시키며 동시에 둘이 융합된 행위들의 스펙트럼을 헤아리게 한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대립들이 윤곽만 제시되었을 뿐 깊이 있게 탐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동주의 내면도 송몽규의 행동도 필연적인 근거가 질문되지 않는다. 제대로 물어졌더라면 윤동주의 내면이 뻗어나가는 수직적 지향과 송몽규의 행동이 퍼져 나가는 평등주의적 지평이 제시하는 세계관들의 갈등과 대화를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깊은 탐색이 포기됨으로써 두 인물의 마음과 태도, 그리고 동주의 시들조차도 모두 액서서리로 전락해 버린다. 결국 영화는 지적 인간으로서의 윤동주의 가치를 활용해 전형적인 한국 영화식 친구 스펙타클을 포장만 바꾸어 신상품으로 만들어내는 둔갑술을 연출해 낸 것이다. 아마도 그 덕분에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영화가 그 화려한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세계 영화 평단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한계는 여전히 돌파되지 않고 덧쌓이기만 한 듯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술에 포만을 욕심낼 수는 없다. 우리는 아직 문화 신생국이다. 한 귀인의 먼 세계를 막연히 바라보다가 이제 두 사람의 일상에 다가감으로써 그를 우리 옆 자리까지 끌어당긴 것만 해도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윤동주에 대한 우리의 느낌은 이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가 아쉬워하는 많은 것들이 다시 충족될 날이 오리라.

 

vol.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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