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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연세 뉴스] 4·19 혁명 최정규 열사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4-05-01

우리대학교는 불의에 항거한 학생 운동의 역사를 가져

우리대학교는 민족이 어려움에 부닥치거나 불의를 보면 외면하지 않고 의연하게 일어난 자랑스러운 학생 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대학교 학생 운동의 역사는 3·1 독립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연희전문 사감이던 박희도와 세브란스 사무원 이갑성은 33인의 민족 대표로, 김원벽은 연희전문의 학생 대표로, 이용설은 세브란스의전 학생 대표로 각각 참가했다.

해방 전후의 학생 운동은 6·10 학생 만세운동과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있었으며, 1960년대에는 4·19 혁명과 한일협정 반대운동으로, 1970년대에는 유신 반대 운동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는 민주화 운동으로 계승되면서 학생 운동의 역사는 면면히 이어져 왔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연세 선배들의 고귀한 희생이 뒤 따랐다. 4·19 혁명 때 최정규 열사와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때 이한열 열사의 희생이 대표적이다.

올해는 4·19혁명이 일어난 지 54주년이 되는 해로서, 우리대학교 학생 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선배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되새겨 본다.

 

4·19 혁명 당시 우리대학교 시위 상황

4·19 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패 와중에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가 직접적인 발단이 되었다. 1960년 4월 19일 정오, 2,000여 명의 학생들이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기 위하여 우리대학교 대강당 앞 광장에 모여 「우리와 자손의 건전한 번영과 행복을 위하여 선두에 나설 것」을 결의하고, 전례 없는 학생시위에 참가했다.

학생들은 구호를 외치면서 아현동을 거쳐 서대문 로터리와 서울역, 남대문을 지나 오후 1시 20분에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의과대학생들과 합류했다. 약 30분간 연좌시위를 한 학생들은 다시 무교동과 화신 앞을 거쳐 종로 4가 돈화문 앞에 이르렀다. 이때 이미 사태가 긴박하여 경무대 앞에서는 발포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여기서 30분간 지체하다가 2시 50분에 안국동 로터리를 지나 시위를 계속하여 중앙청 방면으로 진행하려 할 때, 소총 사격으로 선두는 후퇴하고, 학생들은 보도에 주저앉아 사격 중지를 요구하며 무저항으로 농성했다.

중앙청 앞, 우리대학교 학생 1명이 순국하고, 2명이 부상하였는데, 유일하게 순국한 학생이 당시 우리대학교 의예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최정규 열사였다.

학생들은 다시 안국동, 종로, 남대문, 서울역, 서소문을 거쳐 5시 15분에 학교에 돌아와 대강당 앞에 다시 모였다. 이때 이사회를 주재하던 백낙준 총장은 학생들을 격려하며 3·1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한 시위라고 찬양하였다. 이날 백낙준 총장이 학생들을 격려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연세 아들, 딸들아! 너희들이 나아가서 행동으로 내 말을 다 하였거늘 내가 이제 무슨 말을 더 하랴! 너희들이 올바른 소신을 가졌고, 그 소신을 발표할 용기를 가진 것을 나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3·1 독립운동 때의 여러분의 선배인 김원벽 군의 혼이 살아서 다시 돌아온 줄로 안다.

금일 오인의 차거는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정신으로 일주하지 말라고 한 정신을 그대로 표현할 줄로 알고 있다. 너희들이 연세의 전통을 다시 세웠으니 후배에게 영원히 교훈이 될 줄 믿는다.                                    

* 연세대학교 백년사 4부(1985년 발행) 참조

 

한편, 최현배 부총장도 “함께 나갔다 같이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있음을 서러워하며 슬퍼한다. 그러나 자유는 값비싼 것이다. 이 같은 일은 학교의 자랑이요 나라의 자랑이다. 앞으로도 자유를 위하여 힘껏 싸워주기 바란다.”는 요지의 훈시를 하였다.

총장과 부총장의 감격스러운 격려에 학생들은 ‘백 총장 만세’, ‘연세대학교 만세’를 삼창하고, 교가를 제창한 후 오후 5시 40분경 해산하였다.

4·19혁명에서 순국한 최정규 열사는 수유리에 있는 국립 4·19 민주묘지에 안장되었다. 우리대학교는 최정규 열사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65년 2월 명예 졸업증서를 수여하였다.

올해로 최정규 열사의 54주기를 맞이하였다. 정갑영 총장은 4월 18일(금) 수유리 국립 4·19 민주묘지에 있는 최 열사의 묘역에 조화를 보내 불의에 항거한 고인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렸다.

   

 

 

vol.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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