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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베풂은 메아리, 내게 돌아오는 기쁨의 원천”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9-03-01

이연배 서울 YWCA 회장 이연배 음악대학 동창회장(기악과 65학번)은 주식회사 오토젠의 대표이자 서울 YWCA의 새로운 회장이다. 학교를 졸업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이연배 회장은 학교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 박목월의 ‘시(詩)개론’을 들으며 낭만을 만끽하고, 박태준 박사의 ‘지휘법’을 들으며 열정을 키웠던 학창시절의 추억이 아직도 뜨겁다. 그리고 연세의 긍지를 갖고 사회 곳곳에 베풂의 길을 터온 이 회장은 여전히 발품을 파는 현역이다. 배움, 나 이외의 것을 포용하는 첫 걸음 1969년에 졸업한 이연배 회장은 졸업 후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우리학교 경영연구과정과 여성고위자과정을 마치며 시간이 되는대로 새로운 정보, 다양한 강의를 듣기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배움은 제게 새로운 충전이자 길잡이라고 느껴요. 내 것만 고집하지 않고 그 외의 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되거든요.” 그녀는 우리학교 기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교회 봉사활동으로 하는 오케스트라에선 지휘를 맡을 정도다. 토시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학생들을 지도했던 박태준 박사의 강의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배우는 것’은 어딜 가도, 나이가 들어도, 자신 있게 살 수 있는 긍지임을 느끼고 배움을 실천해왔다. 서울YWCA의 신임회장, 메아리치는 사회봉사를 실천하고파 서울YWCA는 서울여자 기독교 청년회다. 서울YWCA의 회원들만 1만 2천명에 이를 정도로 큰 단체로 87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이 회장은 올 2009년 서울YWCA의 새로운 회장을 맡게 됐다. 그녀가 처음 서울YWCA에 참여하게 된 건 YWCA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에서 즐거움을 찾으면서였다. 그리고 YWCA의 사회활동으로 교도소와 윤락여성들을 찾아 예배인도 등을 하기 시작했다. “14살 소녀가 있었어요. 당시 나는 40대였죠. 그런데 한 아이가 막 우는 거예요. 제가 그 아이를 보듬어 안아주자 펑펑 울더라고요. 윤락여성들 중 가장 어린아이였어요. 근데 그 아이가 떠나는 저를 쫓아오면서 말하더라고요. ‘오래 사세요’하고... 그 눈망울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 아이는 저를 어머니로 바라보고 그렇게 얘기 한 거였죠. 그 눈망울이 제가 오랫동안 YWCA활동을 하게 한 버팀목이었던 것 같아요.” 이처럼 우리사회 사각지대에 몰린 여성들의 인권을 찾아주고 그들을 감싸 안는 일은 YWCA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자식을 둔 ‘어머니’로서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과 청년들을 보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YWCA 활동을 30년 동안 하면서 행복할 수 있었던 건 ‘나눔과 공유’가 항상 그녀에게 기쁨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내 아이를 못 가르치잖아요. 남이 나의 아이를 가르치죠. 그럼 난 남의 아이를 또 가르치는 거예요. 내가 타인에게 베푼 건 그대로 또 나에게 돌아오죠. 마치 메아리 같은 거예요. 그러니 정말 귀한 일들이죠.” 올해 YWCA의 사업 주제는 ‘생명의 바람, 세상을 살리는 여성’이며 중점목표사업은 여성인권, 아동과 청소년의 성장을 위한 공동체 의식 확산, 생명살림 실천이다. 우리사회의 여성 리더, 어려움의 돌파구는 믿음과 소통 이연배 회장은 현재 주식회사 오토젠의 대표이사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여느 CEO들과 달리 회사를 단순한 이익추구의 집단이 아닌, 공동체의식을 가진 ‘가족’으로 정의한다. ‘노사’가 아닌 ‘가족’이란 생각을 심어주는 게 그녀의 가장 큰 역할이다. 오토젠은 소사장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모두가 가족으로, 책임을 갖고 돕는 게 회사경영의 원리이자 철학이다. 업무 외의 가족과 개인사도 함께 공유하고 이 회장이 먼저 챙겨준다. 교회를 갈 때마다 이들 가족의 화평이 기도의 맨 먼저를 차지하기도 한다. 물론 그녀에게도 어려운 때도 있었다. 1997년 IMF 때는 밤잠을 못잘 정도로 어려움이 겹쳤었다. 보너스 삭감 등 임금조정이 불가피한 상황. 결국 이 회장은 170여 명의 직원들을 매일같이 일일이 만나는 길을 택했다. 그녀가 가족인 직원들에게 한 말은 이 한 마디다. “나를 믿어주면 계속 할 거고, 나를 믿지 못한다면 할 수 없다. 나 개인의 안위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안 할 수 있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해온 시간 그리고 가족들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러자 당시 반장이던 한 직원이 “세상은 못 믿고 대기업도 못 믿지만, 사장님은 믿겠다”고 응답해줬고 모두가 혼신을 다해 극복할 수 있었다. 어려움을 스스로 보고 느끼며 서로 도왔기 때문에 지금의 경기한파도 이겨낼 수 있다. IMF때부터 해온 새벽 국민체조도 원동력 중 하나다. 공동체 의식을 갖고 다들 신바람 나게 일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국민체조는 지금의 어려움을 씩씩하게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모두의 의지기도 하다. 오늘, 현재에 행복할 수 있다면 내일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 “혹시 제가 필요한 곳이 있어 제가 도울 수 있다면…….” 이 회장의 끊임없는 바람이자 소망이다. 특히 작년부터는 회사가 있는 경기도 시화공단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한 장학활동도 시작했다. 하나님이 그녀에게 준 모든 것을 쓰고 갈 수 있다면 그보다 보람 있는 일도 없다는 그녀에겐 매일이 축복이었다. “작년 음대 재학생들이 무대에 올린 ‘박쥐’ 오페라를 봤어요. 정말 잘해요! 과거에는 하고 싶어도 못했는데 직접 무대에 올라 꿈을 펼칠 수 있으니 정말 좋은 일이에요. 다들 잘한다고 박수쳐줬어요. 서로 돕고 도우니 또 함께 웃을 수 있어요. ‘같이 함께 간다’는 생각을 후배들이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오늘의 행복에 만족한다면 내일도 행복할 수 있잖아요.” 음악대학 동창회장인 이연배 회장은 매년 5월 셋째 주를 ‘음대 동문회날’로 정했다. 학교에 관심을 갖고 유익한 도움을 베풀기 위해서다. 이 회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과 성을 다하는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얻는 기쁨이 더 크다고 말한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다시 또 그들이 커서 사회에 환원하지 않겠어요?” 이 회장은 학교에서 남편과 함께 혜택을 두 배로 받은 만큼 항상 두 배로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넉넉한 베풂의 성정이 우리학교 울타리를 넘어 우리사회 모든 곳에서 메아리쳐 돌아오기를 기대해본다.

 

vol. 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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